한국의 철학 사상을 그려낸 지도책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국철학 스케치>

등록 2007.04.02 11:58수정 2007.04.0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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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빛
우리 정신의 지도를 새롭게 그린 아주 특별한 한국철학 이야기가 두 권의 책으로 나왔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펴낸 <한국철학 스케치1·2>(풀빛, 2007)가 그것이다.

이 특별한 책을 펴낸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철학 연구를 통해 과학적 세계관을 확립하고 이를 확산, 심화시킴으로써 한국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1989년에 창립되었다.


연구 활동을 위해 서양철학부와 동양철학부 산하에 여러 연구 모임을 두고 연구 발표회와 학술 심포지엄을 정기적으로 열며, 기관지 <시대와 철학>을 펴내고, 이 외에 여러 권의 학술 저작물과 철학 대중 교양서를 펴내고 있다.

<한국철학 스케치>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인 김교빈, 권인호, 이종란, 이현구, 김홍경, 이철승, 김형찬, 박정심 등 8명의 학자가 10년 전에 펴낸 <이야기 한국 철학>의 전면 개정판이다.

개정판을 내면서 김교빈과 박정심 두 명의 대표 필자가 글을 재정리하여 서술 방식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추었고, 지금의 실정에 맞지 않는 예화는 버리고 새로운 예화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한국 철학의 전체를 안내하는 좌표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본문 시작에 앞서 '도표로 보는 한국 철학의 흐름'과 '한국 철학 여행의 길잡이'를 실어 한국 철학 사상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나는 처음에 '스케치'라는 제목을 보고 무슨 그림 이야기 책인가 싶었다. 그림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 한국 철학의 흐름을 지도(地圖)처럼 일목요연하게 그려나간 것이어서 <한국철학 스케치>라는 제목이 참 적절하다 싶었다.


<한국철학 스케치>는 '한국인 너는 누구인가'라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단군부터 오늘날까지 5천년에 이르는 한국 철학 사상의 흐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또 글의 흐름과 내용에 맞는 그림과 사진 자료 등의 시각자료를 풍부하게 제시함으로써 철학 사상이라는 추상적인 내용을 독자들이 구체적으로 이해함과 동시에 재미와 흥미를 갖게 한 것도 이 책이 갖는 특징이다.


나는 이 책만큼 한국 철학의 전체적인 흐름과 각 시대를 반영하는 주요 쟁점과 내용을 충실하게 정리하면서도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쓴 책은 여태 본 적이 없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펴낸 <한국철학 스케치>는 우리 한민족은 무엇을 사유하고 어떻게 논쟁을 했는가를 태고적부터 지금까지의 그 복잡한 과정을 지도처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치·사회의 변동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바탕에 두면서 철학 사상의 유입과 변화, 그 충돌과 분화를 일목요연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국철학 스케치>는 모두 10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원시 시대와 고대의 철학 이야기', 2부 '불교 철학의 한국적 전통', 3부 '성리학의 수용과 전개', 4부 '성리학을 꽃피운 철학자들', 5부 '성리학의 한계와 그에 대한 도전', 6부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 7부 '문명과 야만의 두 얼굴에 맞선 한국 근대사상', 8부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지킨 위정척사', 9부 '평등 세상을 꿈꾼 민중 운동의 사상', 10부 '개화사상과 애국계몽사상'이 그 전체 내용이다. 나는 이 가운데 2부와 4부의 내용을 특별히 관심 있게 읽었고, 유익한 도움을 얻었다.

우리 역사에서 철학 사상의 화려한 꽃을 맨 처음 피워낸 인물은 승려 원효(617~686)이다. 원효는 한국 불교의 새벽을 연, 한국 불교의 토착화를 이뤄낸, 귀족 중심의 불교를 민중 중심의 불교를 만든, 한국 불교의 으뜸으로 손꼽히는 위대한 승려이다.

그의 사상은 이른바 '화쟁(和諍)' 사상으로 일컬어지는 바, 부처님의 경전(말씀)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핵심적인가를 두고 다투는 이 모든 다툼(諍)을 화해(和)시키는 통합(統合)과 원융(圓融)의 사상이다.

이 '합침의 불교'라는 원표 철학의 밑바탕에는 '하나가 곧 전부요, 전부가 곧 하나'라는 논리의 화엄 철학이 깔려 있다. 특히 이러한 원효의 '화쟁(和諍)' 및 '통합(統合)'의 사상은 삼국통일 후 전쟁으로 인한 백제와 고구려유민들의 상처나고 찢겨진 마음을 위무하고 우리 민족의 마음 바탕을 하나로 만드는데 크나큰 역할을 한 것이다.

고려시대 천태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하나로 합치고 다시 그 위에 선종을 합쳐 한국 불교의 맥을 이어간 대각국사 의천의 사상은 원효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불교의 맥(脈)을 이어 고려 후기 돈오점수와 선(禪)·교(敎)의 합일을 주장하며 조계종을 다시 일으켜 우리나라 선종의 전통을 세운 보조국사 지눌도 한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승려이다.

4부 '성리학을 꽃피운 철학자들'은 화담 서경덕,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 율곡 이이의 철학 사상을 다루고 있다. 세상 모든 만물은 기(氣)로 이루어져 있고 만물의 변화는 기(氣)의 변화임을 간파해낸 한국 기(氣) 철학의 시조 서경덕, 조한보와의 논쟁을 통해 조선 성리학의 뿌리를 내린 철학자 회재 이언적, 동시대 후배 학자 고봉 기대승과 8년에 걸친 편지 논쟁을 통해서 조선성리학 이념을 최고 수위로 끌어올린 퇴계 이황, 리(理)와 기(氣)를 나눠 살피면서 리(理)를 특히 강조한 이황과 달리 리(理)는 사물의 원리이고 기(氣)는 그 원리를 담는 그릇으로 그 둘을 함께 보면서 훗날 실학사상으로 정신의 맥을 잇게 한 율곡 이이.

나는 이들의 삶과 철학 사상을 접하면서 우리 한국 철학의 위대함과 그 자부심을 느꼈다. '실학사상의 배경'과 '사회 개혁을 주장한 실학자들의 삶과 사상' 그리고 '실학사상의 사상사적 의의'를 담고 있는 6부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도 좁은 내 철학적 안목(眼目)을 크게 키우게 한 유익한 글이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의욕적으로 새롭게 펴낸 우리 한국철학 입문서 <한국철학 스케치>에 내가 갖는 아쉬움은 딱 한 가지다. 망해가는 신라 말기를 개혁하고 우리 민족의 삶을 새롭게 열어보고자 의욕적으로 자신의 철학 사상을 펼쳐간 고운(孤雲) 최치원을 빼놓은 점이 그것이다.

우리 한문학의 시조(始祖)이자 불교와 유교 그리고 도교에까지 높은 철학적 안목을 가졌던 고운(孤雲) 최치원의 사상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잘못인 것 같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三敎)를 포함하는 '풍류도' 사상과 우주적 생명 사상인 '접화군생(接化群生)'은 우리 한국철학사에서는 도저히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독자적이고 세계적인 사상이다.

<한국철학 스케치>가 다시 개정판을 내놓을 때는 고운 최치원의 철학 사상이 중요한 위치로서 올바로 자리매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국 철학 스케치 1 - 이야기로 만나는 교양의 세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풀빛,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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