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는 '경제통합'을 넘어 '사회통합'을 지향한다. 사진은 지난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하고 있는 모습.
오마이뉴스 권우성
"점수를 매긴다면 '수'라고 생각한다." - 김종훈 수석대표
그런가? 평가 기준 자체가 틀렸다. 한미FTA에 대한 근본 성격 규정이 틀렸다. 성적도 너무 빨리 나왔다. 실패를 가리기 위한 알리바이는 '수'다.
좁은 의미의 통상협정으로만 이해한다면 그런 식의 평가도 가능할 수 있겠다. 나아가 더 좁은 의미, 즉 상품교역이라는 측면만을 놓고 손익비교를 한다면 성적표 제출도 가능하다. 물론 이것마저도 각종 비공식 합의문서와 구두합의, 양해 등 전면적 정보공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규정했다. "한·칠레FTA는 관세협상이고 한미FTA는 경제통합 협상이다." 전적으로 맞는 말씀이다.
한미FTA는 '경제통합' 넘어서는 '사회통합'
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한미FTA는 경제통합을 넘어 '사회통합'이라는 것이다. 왜냐고? 현대 국가는 법치국가이고, 이는 인치가 아닌 법과 제도의 통치를 의미한다. 이번 한미FTA는 단순한 경제관련 법과 제도의 변경이 아닌, 사회질서 전반에 걸친 미국식 법과 제도의 전면적 도입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1987년 헌법 체제의 핵심을 변경한다. 이건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개헌'이다.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법은 미국 법과 제도는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도록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의 한미FTA는 행정협정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의 한미FTA는 100여 가지가 넘는 법률 개정과 수백 가지의 제도변경을 당연시한다. 나아가 헌법까지도 맘껏 뜯어고친다. 그것도 관습헌법 수준이 아니라 성문헌법을 뜯어 고친다. 한미FTA는 대한민국 헌법 위에 군림하는 '초헌법'이다.
불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1900년까지는 '중국 모델', 다음은 '일본 모델'로 살아왔고, 1997년 이후 'IMF 모델'로 사회를 재편해왔다. 이제 주권자가 아닌 '통상독재권력'은 우리사회를 어느 누구의 동의 없이 전면적이고 근본적으로 '미국식 모델’를 도입하려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는 북유럽 모델을 선호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한미FTA는 좁은 의미의 '통상협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한미FTA 협정의 손익평가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수십 년을 두고 천천히 그 손익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수'라고 평가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미FTA라는 시험의 성격조차도 모르는, 의미조차도 모르는 그런 정부를 대표로 모시고 있었을까? 비극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진실은 저편에 있다. 실질적 민주주의가 와해되고 통치권자의 결단이 찬양되는 이 시대에 헌법이 정한 국민주권은 헌법전 속에 잠자고 있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피치자의 무지몽매함을 당연시하듯 1970년대로 회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