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한미FTA 협상 타결 직후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청와대 앞에서 협상 원천 무효를 선언하고 나섰다.오마이뉴스 남소연
국민주권 탄핵과 지지율은 상관이 없다
1972년 11월 21일 91.5%의 국민이 유신헌법을 찬성했다. 히틀러는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국민이 고통과 혼란에 빠져있을 때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을 민주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난 한미FTA가 일종의 국민에 대한 탄핵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에 대해 첫째, 절차적 부당성을 들 수 있지만 이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이유이고, 둘째, 한미FTA는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앗아가 투자자에게 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본질적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공화국은 절대적 평등성의 주권 원리와 사적 재산권의 시장 원리 두 축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한미FTA는 사적 재산권 시장 원리만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반헌법적이라고 주장했다.
주권과 사적 재산권은 사람이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화국은 이것을 '천부의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만큼 이 두 가지는 공화국을 이루는 핵심 원리다. 이 중에서 사적 재산권은 양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주권은 양도 불가능하다. 공화국의 시민은 주권을 양도할 자유/권리가 없다.
사적 재산권의 경우에도 모든 물질적 부를 남김없이 양도해 남에게 예속될 만큼 가난해질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적극적인 공화국이다. 왜냐하면 남에게 예속될 만큼 가난한 사람은 주권을 온전히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에 빠진 시민은 종종 자신의 주권을 양도해버린다. 박정희, 히틀러. 이런 사태를 일컬어 '대중독재'라고 한다. 이건 국민이 국민을 탄핵한 경우다.
한미FTA는 공화국의 헌법과 상충되고, 주권 원리를 공격하면서 사적 재산권 원리만을 강화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공화국의 시민에겐 한미FTA를 반대할 자유/권리는 있어도, 한미FTA를 찬성할 자유/권리는 없다. 만약 국민의 100%가 한미FTA를 찬성한다면 국민이 국민을 탄핵한 것이고, 대중독재 상황이 도래한 셈이 된다.
그러므로 국민주권, 헌법 원리 등을 주장하는 한미FTA 반대 세력에게 한미FTA 추진자들이 국민의 높은 지지율을 들면서 반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공화국의 주권 원리는 다수결과 상관없이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코 다수결로 주권을 탄핵할 순 없다. 그 순간 공화국의 생명은 끝난다.
한미FTA 추진측은 '기대 이익'의 나열로 국민에게 미래가치를 주입하고, 그에 따라 급등한 지지율로 반대측을 누르려 하지 말고, 본질을 말해야 한다. 한미FTA와 주권 원리, 공화국의 헌법 원리가 서로 어떤 관계인지를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본질이다. 만약 한미FTA와 주권 원리가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을 추진측이 증명하면, 설사 국민 100%의 반대 속에 한미FTA를 강행한다 해도, 국민탄핵이라는 나의 주장을 철회할 용의가 있다.
사적 재산권 절대화의 전복이야말로 제2의 6.29
공화국은 시민에게 공공서비스를 책임진다. 공공서비스는 사적 재산권 원리에서 벗어난 영역이다. 절대적 평등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주권 원리에서 천부인권이 나오고, 기본권이 나온다. 시장 원리는 이익을 위한 거래의 영역이라서 기본권과는 상극이다. 왜냐하면 기본권은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공공영역'이라는 단어가 시장과 별개로 존재한다.
원리적인 차원에서 어느 국민도 기본권을 양도할 자유/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것을 보장해주기 위해 공화국은 공공영역을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으로부터 분리해, 공공서비스를 책임지는 것이다. 그런데 한미FTA는 투자자유화이면서 서비스부문 자유화를 목표로 한다. 여기서 '자유화'란 이익 추구의 자유를 뜻한다. 그러므로 서비스부문 자유화와 공공서비스는 근본적으로 서로 충돌한다.
한미FTA 추진자들은 이 부분을 설명해야 한다. 만약 한미FTA가 공공영역을 축소하고, 공공서비스를 자유화한다면 그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지지율과 상관없이 공화국을 탄핵하는 것이 된다.
공공영역뿐만이 아니라 사적 재산권영역의 서비스에도 기본권 원리는 구현되어 있다(각종 쿼터, 규제, 경쟁 제한, 보호, 조정 등). 한미FTA로 미디어 서비스 부문, 고등교육 서비스 부문(난 고등교육 서비스를 공공서비스라고 생각하나 이 정부는 사적 영역이라고 규정함) 등이 자유화된다는 것은 기본권의 후퇴를 의미하는 셈이다. 이런 것도 탄핵이다.
경쟁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서비스업을 개방하지만 미국은 이미 전 세계 최강의 서비스업 강대국이고 우리나라는 후발 약체국이다. 얻는다는 경쟁력은 구경도 못하고 기본권만 탄핵당할 위기에 처했다.
내 주장이 맞는다면 언젠가 진실이 드러났을 때 대통령 지지율의 추락, 아니 역사의 오명은 비극적인 수준일 것이다. 지금의 지지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비극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이 된다. 정부와 언론은 스포츠 중계 같은 이해득실 나열표로 국민을 혼란시킬 것이 아니라 본질을 말해야 한다. 이번 논란을 통해 만약 사적 재산권의 절대화라는 90년대 이후 자유화 개혁의 기조가 전복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제2의 6.29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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