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67회

등록 2007.04.05 08:16수정 2007.04.05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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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모가두는 몸을 빙글 돌리며 오히려 광나한 쪽으로 바싹 다가들었다. 동시에 그의 팔 역시 돌려지면서 주먹이 광나한의 안면을 노렸다. 투로에 어긋난 공격이었지만 임기응변치고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다리는 손보다 길고 일정한 공간이 있어야 그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광나한은 팔을 구부려 안면을 막으면서 팔꿈치로 다가든 모가두의 복부를 올려쳤다.


퍼퍽퍽---!

손과 손, 팔과 팔이 엉켜들고 짧은 순간이지만 십여 초의 교환이 오고갔다. 내력을 실은 팔과 손이라 마주치면 둔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승부였다. 단 한순간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치명적인 타격이 가해질 터였다.

공격하는 형태나 사용하는 부위도 다양해 손과 팔뚝, 뒤꿈치나 어깨를 가지고 밀고(推), 때리는가(打) 하면, 잡아채고((拿), 걸어 당겼다(鎖). 두 팔을 회전시키며 꺾는가(折) 하면 비틀고(拗), 잡아당기면서(引) 치는(毆) 동작이 현란하다고 할 만큼 빠르고 교묘하여 옆에 있는 인물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교두들의 시선이 엉켜있는 두 사람의 몸놀림을 제대로 쫓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정작 엉켜서 손속을 주고받는 두 사람은 정말 숨 돌릴 틈도 없는 상황이었다.

찌이익---


이십여 초를 주고받았을까? 한 순간 갑자기 두 사람의 신형이 한 몸이 된 듯 엉켜들었다가 떨어졌다. 모가두의 얼굴에 잠시 낭패한 기색이 흘렀는데 그의 어깨에는 옷자락이 찢겨나가고 핏물이 조금씩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허명(虛名)만 남았다고 하지만 소림의 나한십팔수(羅漢十八手)와 금룡십이해(金龍十二解)는 무시할 것이 못되는군."


모가두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우고 침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알고 있다는 사실과 실전(實戰)은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무공을 수련함에 있어 독문무공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파나 타인의 무공을 알고 있는 것도 중요했다. 그 안에 숨어있는 묘용까지는 완벽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떠한 형(形)과 격(格)을 취하고 그 위력이 어떠한지 정도는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다.

모가두 역시 육파일방(六派一幇)은 물론 명성을 날리는 문파의 무공 정도는 이미 웬만큼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광나한에게서 펼쳐진 금룡십이해나 나한십팔수는 예상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위력적이었다.

"오히려 내가 더 실망이다. 완벽히 익힌 두 가지 소림의 절기로도 너를 어쩌지 못했으니 말이다."

광나한은 정말 실망한 모습이었다. 득을 보았다고는 하나 그 역시 얼굴은 밝지 못했다. 자신이 노리던 치명적인 공격에 겨우 상대의 옷가지나 뜯어내고 피부나 긁어댄 정도라니 실망이라면 정말 실망이었다. 그만큼 모가두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좋소… 이제 몸도 풀었으니 본격적으로 붙어봅시다."

말과 함께 모가두는 발끝을 모으고 쌍수를 마주 대며 가슴 위로 끌어올리더니 다리를 쫙 벌려 기마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쌍수를 천천히 복부까지 내렸다가 양 옆구리에 대었다. 바로 전신의 기를 끌어올리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

파파팍팍--팍---

이어 그의 쌍수가 좌우로 펼쳐지고 그의 움직임에 따라 주위의 공기가 파열음을 질러댔다. 마치 소림오권(少林五拳) 중 호권연골(虎拳練骨)의 자세로 팔과 허리를 견고하게 하는 듯 하더니 표권연력(豹拳練力)의 자세처럼 몸을 낮추며 앞뒤로 뻗은 쌍권에 힘을 모으는 듯 했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 허나 소매 자락에서 일어나는 공기의 마찰음이 듣는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좋아… 오랜만에 괜찮은 상대를 만났군."

처음에는 무작정 때려죽이려 했었다. 하지만 손속을 나누다보니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승부욕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물론 지금도 광나한은 모가두가 자신의 맞상대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패한다거나 비길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오랜만에 정말 자신의 전력을 기울여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을 만났다는 것이 무인의 본능을 일깨워 주었고, 약간 흥분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또한 비록 산문 밖으로 쫓겨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소림인이 아니라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다. 아직까지 그는 소림의 무공이 허명만 남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다.

파팍---!

그 역시 팔을 휘두르면서 기를 단전(丹田)으로 몰았다. 언제나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는 수년 만에 실전을 앞두고 온몸에 퍼져나갔던 약간의 흥분을 심호흡으로 가라 앉혔다. 진기가 단전에 모였다가 다시 사지백배로 흘러나갔다.

"……!"

팽팽한 긴장감이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공간을 진공상태로 만든 것 같았다. 바람조차도 멈춘 것 같았다. 그것은 천을 팽팽하게 마주 잡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 칼끝이라도 살짝 갖다대면 순식간에 찢어져버리고 마는 바로 그런 상태였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적막을 깨고 광나한이 발을 지면에 끌며 왼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모가두가 앞뒤로 뻗은 팔을 바꾸었다.

"타핫----!"

고용하고 팽팽한 긴장감을 깬 것은 광나한이었다. 그의 신형이 빠르게 모가두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모가두가 기다렸다는 듯 마주쳐갔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듯한 그의 양 팔이 묵직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파파파파팍----

소매바람이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지만 정작 광나한과 모가두의 권(拳), 수(手), 각(脚)이 맹렬하게 부닥치는데도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그것은 진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상태에서 주고받는 것이라 부닥칠 때마다 그 충격은 적지 않은 것 같았다.

순식간에 십 여초를 주고받으며 치명적인 공수를 교환했고, 모가두의 신형이 돌려지며 그의 팔꿈치가 광나한의 옆구리를 노리는 순간 그 보다 먼저 광나한의 장(掌)이 모가두의 가슴을 때리고 있었다.

퍼퍽--!

모가두의 신형이 뒤로 물러났다. 그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비껴 맞은 것이기는 하지만 충격은 상당했고, 진력이 진탕되고 있었다. 숨을 불어낸 모가두가 진기를 가다듬었다.

"역시 수석교두답구려. 권각(拳脚)으로는 역시 내가 당해낼 수 없음을 인정하겠소. 허나 이제부터는 내 손이 맵다고 원망은 하지 마시오."

모든 공부의 기본이 소림의 권각법인 만큼 세월이 흐른다고 퇴색될 것이 아니다. 더구나 광나한은 소림의 보기 드문 기재로 이름이 났던 터. 모가두가 장(掌)을 익혔다고는 하나 권각으로 광나한을 상대하기는 누가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야 진신의 실력을 보여줄 모양이군. 허나 보주의 무공이 반드시 중원제일이 아님을 보여주지."

광나한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단 한 번 득을 보았다고 승부가 끝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충격이 적지 않았을 터인데도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정도의 충격은 흡수할 수 있는 강골을 가지고 있다.

모가두가 양발바닥을 끌면서 앞으로 느릿하게 다가들고 있었다. 광나한 역시 천천히 좌측으로 움직이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살폈다. 모가두의 몸에서 보주의 무공이 펼쳐질 터였다. 말은 가볍게 했지만 보주의 무공을 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팽팽한 긴장감을 깨버리는 발걸음이 들렸다. 그리고 곧 이어 하나의 신형이 장내에 내려섰다.

"자네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꾸짖듯 호통을 친 사람은 다름 아닌 좌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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