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늘 감사하고 살아야..."

서각(書刻)의 명인, 김해 대원금하사 영묵스님

등록 2007.04.05 13:54수정 2007.04.0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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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슴 따뜻한 얘기를 전하고 계시는 영묵스님

가슴 따뜻한 얘기를 전하고 계시는 영묵스님 ⓒ 강정호

경상남도 김해시의 생림면(生林面)은 면적 49.94㎢에 인구 5437명(2001년 집계)의 자그마한 동네이다. 면의 대부분을 무척산(無隻山)과 작약산(芍藥山)이 차지하며, 산지 사이를 소하천(小河川)이 북류하여 낙동강에 합류하고, 북부의 낙동강 연안에는 하안평야가 발달해 있어 쌀과 보리를 생산하며 배추와 복숭아도 생산된다. 산지가 많아서 한우(韓牛) 사육이 활발하고 부산광역시와 가깝기 때문에 양계와 양돈업이 성하다.


이런 김해 생림면에서 서각(書刻)의 명인으로 소문나 있는 대원금하사의 영묵스님을 지난 3월 27일 찾아가보았다. 친절히도 기자의 길안내를 하기 위해 가야컨트리클럽 정문 앞으로 직접 승용차를 몰고 나오셨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가야컨트리클럽을 지나 아직 닦여지지 않은 산고개 길에 들어서 굽이굽이 지나다 보니, '스님이 마중을 나오시길 천만다행'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산길을 따라 도착한 대원금하사는 공기도 좋고, 경치도 아주 좋은 곳에 있었다. 나무로 막 지은 듯한 암자는 영묵스님께서 지난 2년 반 동안 손수 직접 제작을 하셨다고.

"스님, 길도 험하고 간판도 없고 한 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잘 찾아옵니까?"

따뜻한 녹차 한 잔을 따르신 후 영묵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간판을 왜 붙여야 합니까? 내가 장사꾼도 아니고, 간판 안 붙여도 지금처럼 기자께서 나를 찾아왔듯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인연이 닿는 사람은 알아서 잘 찾아옵니다. 그리고 길은 운동 삼아 걸어오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등산한다고 생각하고 걸어서 오면 한 25분 정도 걸리려나? 운동도 되고 좋지 않습니까? 그리고 길이 험하다 해도 차가 사람을 데려다 주지 않습니까!"

기자와의 만남도 부처님의 뜻이고 인연임을 다시 한 번 말했다.


영묵스님은 호는 백운으로 우리 식 나이로는 50세. 입문한 지 20년이 되었고, 입적하게 된 계기는 출가 전 아주 절친했던 친구가 암으로 사망을 했을 때, 흔히들 '내가 죽고 난 뒤에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3명만 있으면 잘 산 인생'이라는 말이 있는데, 문상객들의 대부분이 형식적인 조의금만 내는 것으로 보여 충격을 받고,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진지한 물음 속에 답을 찾다 보니 부처님의 말씀 속에서 답을 찾게 되었다고 전했다.

a 2년 반동안 스님이 직접 제작한 법당

2년 반동안 스님이 직접 제작한 법당 ⓒ 강정호

"수행하는데 서각(書刻)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서각(書刻)이란? 글씨나 그림을 나무나 기타 재료에 새기는 것을 말하는데. 시(詩), 서(書), 화(畵) 에 병칭될 만큼의 높은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다.

영묵스님과 함께 자리한 방안 곳곳에도 스님의 손길이 스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벽에 걸린 것들을 보고 기자가 "아주 훌륭한 작품들입니다"라고 했더니 스님께서는 웃으시며 말했다.

"벽에 걸린 것들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제가 볼 땐 실패작들입니다. 그래서 벽에 걸어놓고 붙여 놓은 것입니다. 늘 보면서 반성하기도 하고, 어느 지점이, 어떤 부분이 내가 부족했는가를 늘 눈앞에서 보면서 찾기가 좋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이 저를 '명인이다'라고 하는데, 이런 조그마한 재주 가지고 그런 칭찬을 듣기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저는 예술인이 아니다 보니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행을 하기 위해서 서각을 합니다. 나무를 깎고 파내기 위해서는 칼을 써야 되잖아요. 근데 칼이란 것은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사고가 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사고가 안 나도록 모든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다 보니 집중력도 높아지고, 자연스레 수행이 되는 것이지요."

실제, 스님은 2006년 남도 서예·문인화 대전에서 서각에서 입선을 한 경력도 있었다. 그리고 활법과 침술 등 민간요법에도 탁월한 것으로 소문이 나있었는데, 정작 자신은 몸이 아픈 사람들이 종종 찾아오면 제일 먼저 상담을 해보고 병원으로 돌려보낸다고 했다.

"저를 찾아오는 불자들 중에 몸이 아픈 사람들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나누어 주기 위해 몸 아픈 곳도 많이 봐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뜻하지 않게도 병 치료만을 위해 찾아오는 환자들이 나날이 늘어나게 되고, 현재의 의료법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이젠 직접적인 병 치료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기 위해 노력은 합니다. 실제, 찾아오는 분들 대다수가 육체의 고통 뒤에는 마음에 병이 들어 있는 게 대부분이거든요."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든 것에 늘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영묵 스님은 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삶 자체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생 자체를 정말 소중히 여기게 될 때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다수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욕심 때문입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만족해할지 모르고 조금씩 조금씩 욕심을 내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느끼지 못한다고 봅니다.

상대방에 맞추지 말고 나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세요. 행복은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 가령, 오늘 찾아오신 기자분께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을 하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기자분은 무엇을 느낄 수 있게 되겠습니까? 돌맹이 하나, 공기 한 모금, 나무 한 그루도, 심지어 내가 불행하고 행복하다는 것조차도 느낄 수가 없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사물 또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까! 늘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늘 감사하고 살아야 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통해 생의 가치란 누가 알아주어야 빛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내 삶의 가치를 깨달아야지 빛날 수 있을 것이란 하나의 교훈을 가지고 돌아서 나오는 대원금하사. 꼭 다시 한 번 영묵스님과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a 2년 반동안 스님이 직접 제작한 법당

2년 반동안 스님이 직접 제작한 법당 ⓒ 강정호

덧붙이는 글 | 시사포커스에도 보냈습니다.

덧붙이는 글 시사포커스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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