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흘릴 만큼 누군가 그리워한 게 언제였나?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성장하는 작은 애를 보며...

등록 2007.04.05 16:50수정 2007.04.0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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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양양 낙산사서 찍은 작은 애의 9살 때 모습.
지난 겨울 양양 낙산사서 찍은 작은 애의 9살 때 모습.김은주
춘천으로 이사 온 지 석 달밖에 안 됐다. 지난 토요일(3월 31일)에 갑자기 예전에 살던 곳으로 갈 일이 생겼다. 양양에 살다가 이곳 춘천으로 이사를 왔는데, 양양 옆 동네인 속초에 볼 일이 생긴 것이다.


양양을 떠나온 지 오래 됐다면 이사 오기 전에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러 가겠지만 이사 오면서 과분한 환송을 받고 온 터라 또 찾아가면 피해를 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명색이 손님이라고 가서 점심을 사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얻어먹자니 얼굴이 안 서고 이래저래 복잡하게 생각돼서 살짝 속초에서 볼일만 보고 돌아오고 싶었다.

애들한테는 강아지도 있고, 당일 갔다 오려면 양양까지 들어가는 건 무리라고 말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한발 늦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작은 애는 벌써 전화기에 대고 말을 하고 있었다.

"여진아, 나 양양 간다. 우리 만날 수 있어. 좋지?"

속초에 간다고밖에 하지 않았는데 작은 애는 속초 간다면 당연히 양양에 들러서 옛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작은 애는 춘천에 이사를 오고도 친구들한테 전화를 자주 했다. 3학년은 아직 어린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대화 거리를 찾지 못해 빙빙 도는 모양새가 좀 안돼 보여서 빨리 전화 끊으라고 재촉을 했다. 할 말이 없어 "여진아, 여진"만 부르다가 수화기를 놓으면서도 토요일 저녁이나 쉬는 날에 함께 놀던 친구가 생각나는지 어김없이 전화기를 돌리는 애다.


"여진이를 처음 만나면 어떨까 생각해 봤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아."

이런저런 복잡함을 감내하기로 한 내 마음을 바꾸게 한 말이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 눈물을 흘릴 만큼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좋아한다는 게 내 가슴에 성큼 꽂히면서 나의 양양행을 결심하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작은 애는 누군가를 보고 싶어하고 양양이 그토록 그리운 곳인데 반해 나에게 양양은 10번씩 이사 다니면서 거쳐 온 그런 곳 중 하나고, 내가 더불어 차를 마시고 함께 아침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쳐 지나간 인연을 다시 현실로, 과거를 현실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꽤 어색하고 복잡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감정이 없는 형식뿐인 관계가, 유효기간이 지난 관계를 다시 재생시키기 위해서는 전화를 걸어야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가게 됐다는 등의, 그리고 소심하게 점심이나 함께 먹자고 해야 했다.

작은 애의 진실한 마음에 감동 받은 난 이런 복잡한 절차를 해치우고, 마침내 양양에 도착했다. 그런데 작은 애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도서관에 친구들은 없었다. 10분 이상을 기다리면서 작은 애의 얼굴에는 점점 불안과 초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친구들이 아빠 차를 타고 당도했다. 좀 전까지 얼굴이 심하게 굳어지던 작은 애는 언제 그랬느냐 싶게 서로 껴안고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했다.

애들에게 돈가스 집에서 점심을 시켜주고, 나는 나대로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는 작은 애를 만나기로 한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작은 애와 다른 친구 두 명이 놀고 있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라며 작은 애를 차에 태웠다. 작은 애와 친구는 우리 차가 시동을 걸고 떠날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며 "잘가"를 반복했다. 둘 다 얼굴이 빨갛게 된 채 눈물을 글썽이면서. 작은 애 친구는 도로 가에 서서 우리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크게 두 손을 치켜들고 흔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도서관에서 큰 애가 친구들을 만나고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갑자기 작은 애가 없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네 집으로 갔다가 왔다. 좀 전에 그렇게 거창하게 작별했으면서, 우리라면 부끄러워서 못 갔을 텐데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친구네 집으로 또 찾아갔던 것이다.

나중에 과일을 한 봉지 들고 나타났다. 친구네 집은 과일가게를 하는데 거기 가서 또 친구와 '안녕', '잘가'를 계속 반복하며 울먹거리고 있으니까 친구 아버지께서 "과일 줄까?" 하시더니 고르고 골라 가장 싱싱하고 제일 좋은 과일로 골라서 싸주셨다고 했다.

자기가 얻어온 과일이니 자기 혼자 먹겠다고 하더니 온갖 생색을 다 내며 "아빠는 착하니까 한 개 먹어" 하면서 포도 알 하나를 주고, "엄마도 먹어" 하면서 딸기 한 개를 주어 얻어먹었다. 그런데 정말 지금까지 먹어본 과일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원래 딸기를 안 좋아하는데 딸기가 이렇게 맛있었나, 할 정도로 향기롭고 신선한 맛이 났다.

진실은 힘이 세다는 걸 이번 양양행을 통해 깨달았다. 어른에게만 진실한 마음이 있는 게 아니고, 아이들의 마음은 훨씬 순박하고 아름답고 형식이 없이 진실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정말 진실한 인간관계는 우리 애와 친구의 관계처럼 정말 보고 싶고 항상 그리운 그런 관계기에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형식이 필요 없는 관계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런 관계야말로 진정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주는 관계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도.

나의 작은 애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내 지금처럼 그렇게 순수하고 열정적인 인간관계를 가꾸어가는 그런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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