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직원 직책도 모른다고?

문제에 문제가 얹어져도 나 몰라라 하는 사장

등록 2007.04.05 19:23수정 2007.04.06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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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상담을 하다가 보면, 문제를 갖고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한 가지 문제만을 갖고 오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문제를 얹어서 갖고 오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일하던 공장에서 직장 상사에게 손바닥으로 얼굴을, 주먹으로 복부를 맞다가 결국에는 몽둥이로 맞아 팔뚝에 검은 멍이 들어 쉼터를 찾아왔던 하디(Hadi)와 그 친구들의 경우가 그런 경우다.

지난 3월 중순 경기도 안성의 모 업체에서 일하던 하디는 임금 지급이 늦어지자, 회사 사무실에서 임금 지급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옆방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회사 대리가 갑자기 뛰어들어 하디를 구타했고, 하디는 사무실 밖으로 도망을 가야 했다.

그런데 회사 대리는 분이 안 풀렸는지 회사 대문 앞까지 따라나와서 각목으로 하디를 내리쳤고, 이 과정에서 태권도 품새에 나오듯 올려 막기를 하여 팔뚝에 멍이 들었다.

각목으로 맞은 부위에 멍이 들었다-사건 발생 후 사흘째 사진
각목으로 맞은 부위에 멍이 들었다-사건 발생 후 사흘째 사진고기복
이 일로 하디를 처음 만났을 때는 사고가 일어난 후 사흘이 지난 때였는데, 여전히 멍이 들어 있었고, 하디는 시무룩하게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결국 동행한 친구들의 입을 통해 사건 경위를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에 대해 회사 측과 전화통화를 시도했던 우리 쉼터 사무국장은 사측으로부터 오히려 구타를 당한 하디와 다른 두 친구를 힐난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다시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이어진 질문에 하디와 친구들은 분명한 구타 사건이 있었고, 유사한 구타 사건이 예전에도 종종 있어서 불법체류 상태로 일하던 친구들은 오래 일하지 못하고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빈번했다고 했다. 게다가 임금 계산이 최저임금을 따르지 않아, 자신들의 계산에 따르면 입사 후 6개월 동안 일인당 200만원 가량의 급여 차액이 생긴다고 했다.

이 일로 회사를 나온 하디와 그 친구들이 맨 처음 겪은 문제는 '불법체류'에 대한 위협이었다.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회사에서 내주지 않아, 팔뚝에 든 멍을 보여주며 노동부에 가서 자신들의 문제를 하소연했지만, 사장의 동의를 얻어 근무처 변경을 해야 한다는 답변뿐이었다.


처음엔 구타 사실에 대해 '직원들 사이에 생긴 사소한 문제 갖고 웬 시비냐?'는 투로 나왔던 업체 사장 H씨는 결국 사업장 내 폭행 문제로 노동부 진정을 들어가자, 조금씩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인데 폭행 건으로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것도 보기 안 좋으니, 진정을 취하해 달라. 미지급된 급여를 지급하겠다."

애초 구타 사실에 대해 별일 아니라며 노동부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던 태도는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사업장 내 폭행 사건은 검찰로 넘어가는 사건이다"는 말과 함께 "사건 관련 증빙 사진도 있고, 증인신문도 끝났다"고 하자 다소 누그러졌다.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문제 역시 돌려달라는 수차례 요구가 있자 퇴사 후 되돌려주었다. 하지만 급여 문제에 대해서는 3주 가까이 걸려서야 해결되었다.

H사장은 토요일과 휴일 잔업 근무에 대해 "한국 사람들도 그렇게 준다"며 잔업 계산을 제대로 해 주려 하지 않다가 이주노동자들이 꼼꼼히 적어 놓은 근무시간과 급여차액을 제시하자, 이번에는 차액 절반을 주겠다고 제시했다.

그런데 문제를 풀겠다는 H사장과 대화를 하며 느낀 것은 사장이 산업연수생을 활용하던 시기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H사장은 직원의 구타 문제나 급여 문제뿐만 아니라, 직원의 신분조차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

일단 외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는 사실에 대해 소리부터 질러놓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나면 목소리가 낮아지곤 했다.

과거 연수생을 고용하던 업체는 사내에서 내국인들에 의한 구타가 있어도 쉬쉬하고, 급여 문제가 있건, 인권침해가 있건 간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연수생의 연락을 받고 온 산업연수생 위탁관리회사를 통해 사건을 흐지부지하곤 하였다. 이처럼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행하는 H사장의 습관은 분명 과거 산업연수생을 쓰던 습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H사장은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하디를 늘 '연수생'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회사의 정직원과 산업연수를 온 학생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었다. 직원이 수백 여명이나 되고, 바깥 일이 너무 많아서 회사에서 직원들을 하나하나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모를까, 전체 직원을 손가락으로 셀 법한 회사에서 사장이 직원의 직책도 모른다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갈까?

H사장의 입장에서 보면 체류자격이나,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압류, 잔업시간 차액, 구타 등 문제에 문제가 얹어져도 나 몰라라 할 만큼 사소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었고, 하디와 그 친구들은 그 하소연을 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하디와 그 친구들은 노동부의 도움을 얻어 합법적으로 근무처변경을 했다.

덧붙이는 글 하디와 그 친구들은 노동부의 도움을 얻어 합법적으로 근무처변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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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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