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러나 이번 FTA 협상 타결로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있다.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이 바로 그것이다.
노 정부는 자주적, 때때로는 반미적 발언을 즐겨 사용했지만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에 한국을 가장 깊숙이 끌고 들어간 장본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노 정부는 침공의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곤 이라크 전쟁에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했다. '동북아 균형자'라는 정치적 수사의 장막 뒤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세계패권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던 해외주둔미군재배치(GPR)와 전략적 유연성을 가장 확실히 보장해주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 FTA를 통해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동북아에서 확대·강화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들어 주었다.
'반전평화'를 대선 슬로건으로 내세웠고,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에서 '동북아 균형자'를 추구하겠으며, '양극화 해소'와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를 임기 중 최대 목표로 내세웠던 정부에서 일어난 일들치곤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쯤 되면, 정부의 정치적 구호에 공허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제품과 경쟁하자더니, '한미 경제동맹'이라고?
FTA가 타결되면서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고 보수적 전문가들은 일제히 한미관계가 기존의 군사동맹에 경제동맹까지 더해져 '포괄동맹'으로 발전했다며, 그 의의를 부여하는데 바쁘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환영할만한 일인가?
이라크 파병 논란에서 그 위력이 여실히 입증되었듯이 한미동맹은 모든 이성과 실리를 마비시키는 논리로 작용했다. 여기에 경제동맹까지 부과되면 한국의 정책 자율성은 더욱 요원해지지 않을까? 가령 앞으로 이라크 파병과 같은 미국의 요구가 있을 때, '군사+경제' 동맹이 된 한국이 보편적 가치나 국익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을까?
정부와 보수진영은 한미FTA 체결을 계기로 악화일로를 걷던 한미관계가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게 되었다며 반색하고 있다. 특히 경제동맹을 체결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을 걱정을 덜게 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을 '망국의 지도자'라며 하루가 멀다하고 비난했던 보수언론은 그를 '구국의 지도자'로 칭송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FTA와 군사동맹은 그 기본전제부터 다른 개념이다. 군사동맹은 공동의 적에 기반을 둔 체결국간의 '결속'의 개념이라면, FTA는 무역장벽이라는 빗장을 풀고 각기 경제 이익을 극대화 해보겠다는 체결국간의 '경쟁'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조차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서 포괄동맹을 예찬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를 '미국의 범위'에 가둬두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주한미군에 약간의 변화만 생겨도 호들갑을 떨어왔던 한국의 현실을 볼 때, FTA 체결로 미국 경기 변동에 한국 경제가 더욱 종속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그저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