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 심청에 대한 색다른 해석

<서평> 정출헌 <어두운 눈을 뜨니 온세상이 장관이라>

등록 2007.04.07 13:29수정 2007.04.0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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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나라말

눈 먼 아비를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극한 효녀일까, 아니면 '효'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희생된 가련한 여인일까. 작가 정출헌은 효녀도 맹목적 희생물도 아닌 '바보 심청'이란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심청전>의 세계로 빠져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심청이는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바다에 자신의 몸을 던지고 말았으니까요. 산목숨을 눈과 바꾸는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요? 아니겠지요. 게다가 인당수에 바칠 제물로 몸이 팔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승상댁 부인이 심청이를 불렀답니다. 삼백 석을 줄 테니, 남경 상인에게 받은 쌀을 돌려주라고, 하지만 심청이는 거절했지요. 심청이는 도움의 손길을 마다한 채 인당수로 갔으니 바보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 대부분 장승상댁 부인의 도움에 감사하며 쌀 삼백 석을 받았을 겁니다(10쪽)


고전읽기의 감칠맛이 새록새록 느껴져

수업 시간에 간혹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등 고전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그 줄거리를 물어보면 대략의 줄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있는 질문을 해보면 눈만 멀뚱거리는 녀석들이 많다. 전해들은 이야기로 대충만 알고 실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고전을 쉽게 읽을 수는 없다. 줄거리 중심으로 요약된 것이나 일부만 발췌된 형태의 고전을 읽은 것이 대부분이고, 제대로 풀이된 고전을 온전하게 읽은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게 되면서 고전의 감칠맛을 새록새록 느껴볼 수 있었다. 원본 <심청전>의 내용을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해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더구나 책의 중간중간마다 부록처럼 소개된 내용들이 그 맛을 더해주었다.

시각 장애인의 삶을 보여주는 '소리로 보는 세상에 나서다', 효자나 효녀의 의미를 되새기는 '하늘이 내린 효자? 불효자?', 세계의 인신공양의 사례를 보여주는 '잔혹한 신성의 세계를 찾아서, 유적 탐사', 인당수는 어디인가?' 등등…. 심청전을 읽으면서 들 수 있는 궁금증들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재미있게 풀어주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심청에 대한 색다른 해석이다. 자신의 앞에 놓인 운명 앞에서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맞선다는 점이 심청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해석한다. 심청은 장승상댁 도움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운명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 결과 아비 뿐 아니라 천하의 모든 맹인들이 눈을 뜨게 된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진한 감동이 느껴졌다.

심봉사가 눈을 떠서 춤추고 노래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니 천하의 봉사들도 그 소리를 듣고 일시에 눈을 뜬다. 사흘 동안 잔치에 먼저 왔다가 돌아가는 봉사들은 집에서 눈을 뜨고 길 위에서도 눈을 뜬다.
일어서다 눈 뜬 사람, 주저앉다 눈 뜬 사람, 울다 웃다 눈 뜬 사람, 일하다가 눈 뜬 사람, 놀다가 눈 뜬 사람, 자다 깨서 눈 뜬 사람, 하품하다 눈 뜬 사람, 기침하다 눈 뜬 사람, 코 풀다가 눈 뜬 사람, 방귀 뀌다 눈 뜬 사람, 온 나라의 봉사들이 제각각 눈을 뜨니 온 나라에 놀라는 소리가 또 한번 떠들썩하다.

잔치에 온 소경, 잔치에 못 온 소경, 두 눈 감은 소경, 한 눈만 감은 소경, 젊은 소경, 늙은 소경, 어린 소경, 어미 뱃속에 든 소경까지, 마치 오뉴월 장마에 둑 터지는 소리처럼 쩍쩍 소리를 내며 모두 다 눈을 뜨는데, 뺑덕 어미 꾀어내어 도망친 황 봉사만 눈 못 뜨고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앉았구나. (150쪽)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보다 아름다운 건 없다. 바보스런 심청이 시대를 초월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진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바보스런 행동은 어느 순간 사람들을,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 책은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심청전 : 어두운 눈을 뜨니 온세상이 장관이라

정출헌 지음, 김은미 그림,
나라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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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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