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시여> 2탄이 되어가는 <행복한 여자>

[드라마는 내 인생4] 낡은 전개 방식으로 이루어진 <행복한 여자>

등록 2007.04.09 11:34수정 2007.04.0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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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말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온갖 설움과 역경을 딛는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오지게 강인한 여성들이다.

a 극 중 지연은 착하지만 늘 공격을 받으며 상처를 입는다.

극 중 지연은 착하지만 늘 공격을 받으며 상처를 입는다. ⓒ KBS

특히 그중에서도 KBS <행복한 여자>는 제목과는 달리 너무나도 불행한 삶을 사는 여자다. <행복한 여자>의 지연(윤정희)은 전생에 무슨 죄를 그토록 지었는지, 신혼의 달콤함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남편이 외도를 하고 남편의 자식임을 숨긴 채 홀로 살아간다. 그러던 중 행복을 되찾고자 만난 남자(태섭)는 자신의 아버지의 아들이다.

물론 여기서 그들을 연결시키고자 지연은 아버지가 밖에서 나온 딸이며, 동시에 아버지의 현재 아내의 아들인 태섭(김석훈) 또한 양자로 삼은 자식이다. 즉 호적상의 문제만 해결하면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아 둘의 행복이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지연은 불행한 여자에서 행복한 여자로 끝을 맺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하늘이시여∼ 어찌 이토록 잔인한 것이오∼

그런데 어디선가 이러한 드라마의 내용을 본 듯하다. 그렇다. <하늘이시여>와 참으로 비슷하다. 자신의 딸을 버린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찾아 며느리로 맞이한다는 아주 극단적인 사례로 통하는 전대미문의 인기드라마 <하늘이시여>. 아직도 그 화려함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행복한 여자>는 성만 바뀌었을 뿐 자신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할 가능성이 짙은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다. 물론 <하늘이시여>처럼 대놓고 혈연관계에만 목을 매지 않는다. 오히려 박정란 작가는 자신의 전작 <노란손수건>에서 호주제 폐지를 거론했던 경력을 살려 혈연관계가 가족관계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을 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래서 죽은 선배의 아들인 태섭을 친아들로 삼는 지연의 생부 종민(장용)과 밖에서 나온 딸이지만 자신의 딸로 여기며 살아가는 원희(고두심). 그리고 그녀를 친자매처럼 대하는 두 딸 지숙(문정희)과 지선(김윤정). 이 관계만 놓고 보면 보기 드문 따뜻한 드라마다. 피붙이를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의 가족 개념에서 항거하는 일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가족 구성은 단지 주인공 지연과 태섭을 연결시키고자 만든, 즉 행복한 여자로 만들고자 하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애초부터 이혼으로 해체되어가는 가족의 문제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그러한 사실에 기거하여 100만 분의 1이라 할 수 있을 법한 만남을 필연으로 운명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아무리 이혼으로 인해 생이별하는 가족이 많다지만 인연을 엮어도 저리 엮을 수 있으리라. 이러한 불행을 딛고 일어나야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반문할 수밖에 없다.


낡은 전개방식은 총망라 백과사전!

a 태섭은 아버지의 딸 지연을 사랑하게 된다.

태섭은 아버지의 딸 지연을 사랑하게 된다. ⓒ KBS

앞서 이야기한 모티브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극적인 부분이 있어야만 재미있고,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행복한 여자>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내용의 전개가 낡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역시 주인공 지연으로부터 출발한다. 지연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인 종민이 바람을 펴 데리고 온 자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웃 방송사에서 문희랑 똑같은 처지지만 가족들에게 구박을 받는 신데렐라는 아니다. 엄청나게 가족들이 자신의 딸로 동생으로 생각하며 돌봐주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 운명은 늘 불행하다. 얄궂게도 결혼을 하고 나서 이상한 조짐을 보이기 때문. 남편인 준호(정겨운)가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이 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내하려 애쓰지만 결국 이혼에 이른다.

두 가지다. 출생이 불행한 운명은 <문희>처럼 대놓고 멸시를 받거나, <행복한 여자>의 지연처럼 가족들로부터는 인정을 받지만 결혼해서 순탄치 않는 길을 걷게 된다. 이것은 어느 드라마에서나 쉽게 나오던 스토리로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의 주인공은 무수한 공격으로부터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그러한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주 착한 품성으로 인내하여 공격하는 이들을 모두 악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묘한 능력을 갖췄다. 역시나 지연도 착하지만 이상하게도 사생아라는 타이틀 하나로 무수한 공격을 받는다.

a 준호는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적반하장의 나쁜 남편이다.

준호는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적반하장의 나쁜 남편이다. ⓒ KBS

결혼 중에도 홀대하던 준호 어머니(사미자)는 이혼 후에도 못마땅했는지 사무실을 습격해 난데없이 따귀를 때리며 "나쁜년!"이라고 외친다. 그리고 뺨을 맞은 지연은 인내한다. 그러면서 슬쩍 준호 모를 악인으로 몰아간다.

이뿐이 아니다. 늘 우려먹던 소재인 이혼 후에 알게 되는 임신! 역시나 지연도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통보받는 그날 임신임을 알게 된다. <행복한 여자>를 보는 무수한 시청자들은 다 아는데, 준호만 자신의 자식임을 이제 알게 되고 분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분노다. 미안해해도 용서가 될까 말까인데 남편은 으레 분노한다.

이것은 마치 시청률 견인차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자 특별 프로젝트처럼 모든 드라마에서 즐기던 소재인데 이것을 다시 한 번 차용하는 <행복한 여자>다. 그리고 또다시 사랑에 빠진 남자도 자신의 아버지 아들이다.

어찌 사생아로 태어난 이들은 이토록 불행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자책하고 싶을 정도다.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역시나 타이틀이 <행복한 여자>이기 때문에 <하늘이시여>의 자경이처럼 언젠가는 행복해 질 것이다.

이처럼 낡은 구조와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주말드라마 시청률 톱이다. 이웃 방송사 <문희>도 낡을 대로 낡은 전개방식으로 인기몰이를 하려고 하지만 <행복한 여자> 때문에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 그걸 볼 때 정말 행복한 여자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시점에서 출생의 비밀도, 이혼 후에 임신도, 자신의 아버지가 시아버지가 되는 내용이 없던 이웃방송사 <누나>가 생각난다. 아련한 추억처럼 말이다. 적어도 공영방송이라 울부짖는 KBS에서 주말드라마는 늘 같은 패턴의 내용으로 나아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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