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72회

등록 2007.04.12 08:23수정 2007.04.1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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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아주 사나운 미친개 말이오. 나야 뭐 한 번 물린 것으로 끝났지만…."

모가두의 시선이 좌등에게 향했다.


"그 미친개가 좌 총관을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실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이오."

"……?"
"……?"

모두들 무슨 영문인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들 쳐다보자 좌등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 일도 아니오. 와룡장께서도 그런 마음 가지실 필요 없소. 미친개라는 표현이 조금 그렇지만 하여간 여기 오기 바로 전…."

좌등이 설명을 하려하자 궁금증을 더 이상 참지 못한 풍철한이 물었다.


"도대체 미친개가 누구요? 어떤 미친개가 감히 와룡장을 물고 좌 선배를 곤욕스럽게 한단 말이오?"

조금만 참고 있으면 어차피 다 설명들을 일을 그새 묻자 좌등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저런 모습이 풍철한의 단점 같기도 했지만 또한 인간적인 매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핫… 빨리 말씀드리려 했는데 너무 뜸을 들여 미안하오. 그 미친개는 바로 본보 수석교두인 광나한 철호를 말하는 것이오. 아무리 그래도 와룡장께서 한 그런 표현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뭐… 이미 그렇게 표현을 했으니 어쩔 수 없구려."

"수석교두인 광나한이 졸지에 미친개가 되어 버렸구려… 그럴 정도로 문제가 있었소?"

함곡도 흥미가 당기는지 호기심을 보였다.

"특별한 것은 아니오. 다만… 여러분들은 내일 사시 경 아주 흥미로운 일을 보시게 될 거요."

좌등이 간략하게 조금 전 광나한과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좌등의 설명에 고개를 끄떡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예리한 관찰력을 가진 몇 사람은 조금씩 그 말 안에 숨어있는 의미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윤석진이 말한 '보이지 않는 것'을 찾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되리란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허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함곡의 표정은 약간 어두워지면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79

"자신 있는가?"

광나한의 설명을 모두 들은 추산관 태감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니 물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잘했다는 칭찬으로 들리는 표정과 말투였다.

"승부에 있어 자신감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신이 없다면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피했을 겁니다."

광나한의 태도에 추 태감은 적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추태감은 옆에 있는 중의와 식사를 마치고 대충의 상황을 파악한 뒤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몇 사람을 더 만난 다음 결론을 내리고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광나한이 시키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괜찮은 일을 벌인 것이다. 이것은 한번쯤 상대의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 볼만한 일이었다. 추 태감에게 있어 두 사람 사이의 승부 결과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광나한이 이긴다면 좋겠지만 진다해도 추 태감에게 손해날 일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아주 명확하게 피아(彼我)를 구분 짓는 계기가 되리란 것이었다.

"좌등은 과거 무적신창의 외호에 어울렸던 인물임을 잊지 말게."

그럼에도 내심과는 달리 추 태감은 광나한이 다칠 것을 우려하는 기색을 보였다. 자신이 광나한을 믿고 있다는 인식을 충분히 심어주면서 용기를 북돋고 최선을 다하도록 충동질치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야 자신이 얻고자하는 것을 분명하게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철담 어른께 패한 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철담 어른께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고자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피를 보고자 함이 아니라 정당하게 평생 단 한 번 패배를 안겨준 철담 어른께 또 한 번의 가르침을 받고자하는 무인의 승부욕 때문이었습니다."

광나한 역시 개인적인 굴욕을 씻기 위해 철담에게 복수한다는 인식을 주지 않으려 겸손하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정말 철담의 죽음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해 아쉽다는 표정이 언뜻 스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상대는 철담 어른 정도이지 좌등 정도가 아니라는 자신감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말이기도 했다.

"본관은 반드시 자네가 승리할 것이라 믿네."

"감사합니다. 태감."

자신을 믿어주는 것 같아 광나한은 내심 흡족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운중보 내에서 자네의 역할은 매우 커지게 될 것이야. 본관은 자네와 같이 능력 있고 호탕한 사람을 좋아한다네."

듣기에 따라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사실 추 태감이 약속하지 않는다 해도 총관인 좌등을 꺾게 되면 운중보 내에서 누가 감히 광나한의 행보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기껏 보주를 포함해 동정오우 정도일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러한 권위를 추 태감이 부여한다는 아주 묘한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이것이 추산관 태감이 아랫사람을 다루는 독특한 능력이었다. 미리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허나 해야 할 일을 한다면 그 뒤에 약간의 도움을 주면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전제가 된 일을 완수해야 하고 지금 그 전제란 광나한이 좌등에게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허나 추 태감으로서는 이번 일은 미리 약간의 도움을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미 마음속에 굳히고 있었다.

"태감께 실망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야망이 있었고, 내일 좌등에게 승리를 한다면 철담의 뒤를 이어 회의 한 자리를 꿰찰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은 없었지만 여하튼 상당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회에서의 위치는 철담을 통한 불안정한 것이었지만 이제 추 태감과 상만천을 직접 상대하고 있는 이상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아주 믿음직스럽구먼… 헌데…."

추 태감은 고개를 끄떡이다가 말꼬리를 올리며 광나한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철담이 시해된 이유가 무어라고 생각하는가?"

화제를 돌려 불쑥 묻고 싶은 것을 묻는 것은 추 태감의 독특한 버릇이었다. 이런 질문은 상대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대는 가지고 있던 생각을 솔직하게 대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이번 질문도 역시 그런 것이었다. '누가 죽였다고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시해된 이유가 뭔가?'라는 질문은 대답하기 꽤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광나한으로서는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해준 추 태감에게 감사하고픈 마음이었다.

"작금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아주 중대하고 심각한 일들입니다. 흉수의 동기와 목적 역시 분명합니다. 물론 후계 문제와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문제는 표면적인 것이고 회를 겨냥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광나한의 자신 있는 말투에 추 태감의 눈썹이 약간 치켜지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계속해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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