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뒤집힌 개헌 전망... 왜?

원내대표 합의 못 믿는 청와대 "한나라당 약속 없으면 예정대로"

등록 2007.04.12 19:33수정 2007.04.12 19:44
0
원고료로 응원
a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월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각 당이 당론으로 임기단축 등을 포함해 개헌을 '대국민 공약'한다면 개헌안 발의를 차기 정부로 넘기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월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각 당이 당론으로 임기단축 등을 포함해 개헌을 '대국민 공약'한다면 개헌안 발의를 차기 정부로 넘기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2일 오전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이 정례브리핑 시간도 아닌데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그러더니 "이렇게 달려온 이유가 있다"며 운을 뗐다. 개헌 관련, 보도 흐름을 잡기 위해서다.

전날 열린우리당을 포함해 각당 원내대표 6인이 '18대 초반 개헌 문제 처리'에 합의하고, 노 대통령에게 개헌안 발의를 유보해달라고 요청한 데 대해 청와대는 "조건부 유보"의 형태로 수용 의사를 나타냈다.

중요한 건 그 '전제'였다. 원내대표 간 합의를 당론으로 결정하는 등의 책임있는 절차가 진행된다면 당초 17일로 예정된 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를 유보하겠다는 의지였다.

"개헌 준비 완료, 정치권은 답하라"

하지만 이같은 상황을 다룬 언론은 그렇지 않았다.

'여론 계속 냉담... 퇴로 터주자 발빼기' '결국 거둬들인 정략 개헌' '퇴로 열어준 삼각 교감... 노 대통령 개헌 발의 포기 명분' 'FTA 효과 사라질라 우려도... 결국 철회 수순 밟을 것'

이날 조간들은 일제히 이같은 제목으로 "사실상 철회"로 논조를 잡았다. 이에 대해 윤승용 수석이 "청와대 흐름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문에 대한 당론 채택과 대국민약속 등의 진정성과 책임성이 담보된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며 "이같은 필요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예정된 날짜에 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다음주 17일 개헌안 발의에 따른 행정절차가 차질없이 추진되고 있다"며 "대통령의 국회 연설문도 작성이 끝나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퇴각의 수순을 밟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일축한 것이다. 이번 주말, 늦어도 내주 월요일(16일)까지는 정치권의 응답이 있어야 한다고 시한도 못박았다.

전날 원내대표 간 개헌 합의문이 나온 뒤 문재인 비서실장이 발표한 청와대의 '조건부 수용' 입장은 노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정리된 내용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윤 수석은 "오전 문재인 실장이 주재한 회의가 있었고, 그 뒤 오찬을 겸해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휘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다음날 언론보도가 본인의 의중과 달리 나오자 정무관계 회의에서 이를 지적했고, 윤 수석은 부랴부랴 기자실을 찾았던 것.

청와대가 원내대표 합의 못 믿는 까닭

a 강재섭 대표와 김형오 원내대표가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다(자료사진).

강재섭 대표와 김형오 원내대표가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청와대의 '조건부 유보'에 대한 입장이 이같이 강경하다면, 사실상 개헌안은 예정대로 발의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핵심 열쇠는 한나라당이 쥐고 있는데, 강재섭 대표는 "대통령과 개헌 문제로 협상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의 개헌 관련 '5대 원칙'이자 '당론'이라며 ▲18대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하여 국회가 논의를 주도한다 ▲4년 연임제를 비롯해 개헌에 필요한 사항을 폭넓게 논의한다 ▲다음 대통령의 임기 중에 완료한다 ▲한나라당의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다 ▲노 대통령은 임기 중에 개헌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노 대통령의 요구가 '과유불급'이라며 "다음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것이 당론"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것만 보면 한나라당 당론이 18대 국회 개헌 처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청와대는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원내대표 6인은 합의문의 위상에 대해 "대국민 약속"이라며 구속력을 지닌 합의임을 강변하지만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나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직권으로 협상문에 사인을 하고서도 어그러진 적은 숱하게 많았다. 이 때문에 의원총회 등을 열어 대표단이 가져온 협상안에 대해 의원들이 토론하고 추인하는 당론화 과정을 밟는다.

최재성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현재 어느 당도 개헌에 대해선 당론이 없는 상황"이라며 "'임기 내 원포인트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도 있고, 4년 중임제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의원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영달·김형오 원내대표가 다음 국회에서 평의원이라면 이번 합의문을 어떻게 담보해 낼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게다가 17대와 18대 국회는 법적·절차적 연결고리는 없다. 구성원도 바뀌고 당이 사라질 수도 있다. 대선을 앞두고 다양한 형태의 정계개편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또 개헌 저지선인 재적의원 1/3(98명)을 확보한 정당이 반대하면 처리는 불가능하다.

청와대가 다음 국회에서 생존이 확실한 한나라당을 상대로 책임있는 약속을 해달라고 압박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시간이 없다, 주말 주초가 고비

a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12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각 당이 참여하는 개헌 추진위 내지 개헌문제연구위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12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각 당이 참여하는 개헌 추진위 내지 개헌문제연구위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전망은 제각각이다. 청와대가 요구하는 "책임있고 진정성 있는 절차"에 대한 협상이 어느 수준까지 이뤄지느냐에 달렸다.

장영달 원내대표는 '헌법개정 연구위원회(가칭)'를 만들어 개헌 논의를 시작하자고 한나라당에 제안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18대 처리 사항을 17대에서 논의한들 실효성이 있겠냐"고 부정적으로 밝혔다. 대선을 앞두고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마당에 성의있는 논의가 되겠냐는 것.

열린우리당의 한 주요당직자는 "청와대가 반드시 '의원총회→당론추인'이라는 절차에 집착하는 것 같지는 않다"며 "원내대표간 합의를 당대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대국민을 상대로 약속하는 형식이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개헌에 '올인'해온 노 대통령에게 퇴각의 명분을 주는 '의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청와대가 정치권에 환기시킨 '17일 국무회의 의결, 18일 발의' 전까지, 주말 주초가 고비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정치권의 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재섭 대표의 '협상은 없다'는 말에 대해서도 "직접 들은 바 없다"고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움직이지 않으면, 정치권은 앞으로 개헌안 의결 시한인 두 달 동안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한번 대판 붙어볼 생각도 했다"는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의 말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