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흐린 불빛 아래 주고 받는 말장난

[서평] 쉘 실버스타인의 <다락방의 불빛>

등록 2007.04.13 11:02수정 2007.04.1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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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불빛> 표지 입니다.
<다락방의 불빛> 표지 입니다.보물창고
<다락방의 불빛>의 저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작가 쉘 실버스타인이다. 그는 6·25 당시 한국전에 참전하여 국군 신문에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다락방의 불빛>은 미국 학교도서관협회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카툰풍의 간결함과 경쾌함이 유머와 재치, 상상력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읽는 이에게 하여금 상쾌한 웃음을 전한다.

다락방의 불빛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안온함, 감춰진 보물, 낡은 일기장이나 책, 빛바랜 앨범, 또 뭐가 있을까 생쥐, 옛날이야기, 랜턴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대체로 낡고 오래된 것에서 풍기는 따뜻함과 신비스러움. 그런 이미지와 이 책을 연결해 본다면 다락방 불빛에서 그려낸 보물 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처럼 쓴 카툰 한편은 동화 한편을 읽는 것 같다. 그 간결함이 동화처럼 느껴지는 것은 글에서 못 다한 말을 그림으로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그림 속에 늘려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림 역시 글처럼 간결하다. 그렇지만 작가는 간결한 글과 그림 속에 할 말을 다 하고 있다. 독자 역시 그가 하고자하는 말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또 이 책의 한편 한편의 글은 각각이 한 토막의 개그와 같다. 어쩌면 아이들 시선으로 세상을 그려내면 모든 게 개그가 될지 모르겠다.

저밖에 모르는 아이의 기도

하느님, 이제 잠자리에 들려고 하거든요.
제 영혼을 지켜 주시고
제가 만일 깨어나기 전에 죽거든
하느님, 제 장난감들을 모두 망가뜨려 주세요.
다른 애들이 갖고 놀지 못하게요.
아멘.

'무얼 빠뜨렸지' 삽화입니다.
'무얼 빠뜨렸지' 삽화입니다.보물창고
무얼 빠뜨렸지

분명히 양말을 신었는데,
분명히 신발을 신었는데.
예쁜 보라색과 하늘색 넥타이도
분명히 맸는데,
춤출 때 정말 멋져 보이려고
분명히 코트도 걸쳤는데,
아무래도 무언가 빠뜨린 것 같아,
그게 뭐지? 그게 뭐지?



그렇다고 작품 모두가 이처럼 웃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풍자적이고 또 어떤 것은 잔혹하다.

달달달 외우는 모 씨


모 씨는 달달 사전만 외웠대.
하지만 일자리를 찾지도 못했대.
결혼할 사람을 구하지도 못했대.
달달달 사전만 외운 모 씨는

'검게 탄 얼굴을 주문한 사람에게' 삽화입니다.
'검게 탄 얼굴을 주문한 사람에게' 삽화입니다.보물창고
검게 탄 얼굴을 주문한 사람에게

자, 여기 있어요.
당신이 주문한 거 맞지요.
검게 탄 얼굴에 버터 소스를 뿌리고
으깬 감자도 곁들였답니다.
아니, 뭐라고요? 기름이 튀기는 거 아니라
햇볕에 그을리려는 것이었다고요?


쉘 실버스타인의 무한한 상상력과 재담은 아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거침없이 펼쳐 놓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이들은 차마 말로 하거나 쓰지 못했던, 자신들의 상상과 속마음을 털어 놓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락방의 불빛이 주는 또 다른 재미는 말장난에 있다. 가락을 넣어 반복하는 말장난, 우리 옛이야기나 전래동요에서 들을 수 있는 말장난이 그 안에도 있다. 다락방 흐린 불빛 아래 누어 주고받는 말장난 같은 이야기. 누구라도 좋다. 세상 모든 걱정 다 잊고 키득거리며 주고받는 말장난 같은 이야기. 상상만으로 재미있어 죽겠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다락방 속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 다락방의 불빛/ 쉘 실버스타인 글.그림 / 신형건 옮김

이 기사는 리더스 가이드, 알라딘, 네이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락방의 불빛/ 쉘 실버스타인 글.그림 / 신형건 옮김

이 기사는 리더스 가이드, 알라딘, 네이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락방의 불빛 (양장)

셸 실버스타인 글.그림, 신형건 옮김,
보물창고,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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