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웅 목사는 '교인 아닌 교인'들과 농촌 목회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내와 두 딸과 함께.주재일
대형 교회를 목회하는 어느 목사가 한 강연회에서 교회를 부흥시키지 못하는 시골 교회 목사를 질타하는 말을 한 적 있다. 이 목사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음식점이 어디에 있든지 사람이 찾게 마련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동료 목사들에게 장소 탓하지 말고 목회 실력을 키우라는 뜻이다.
문제는 교회가 사람들이 먹고 떠나는 식당이 아니라는 거다. 특히 시골 교회가 처한 절박한 현실은 도시 주변에 멋들어지게 꾸민 음식점 흉내를 낸다고 풀릴 게 아니다.
강원도 홍천 동면교회(목사 박순웅)도 현상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는 시골의 작은 교회다. 박 목사가 부임한 1993년 교인이 40명이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한때는 80명을 넘나들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지만 많은 교인들이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젊은이들은 도회지로 떠났다. 지금도 나이가 지긋한 교인들이 대다수다. 그렇지만 박 목사는 요란하지 않지만 다부지게 시골 목회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가고 있다.
"목사라면 누구나 농사해야지요"
박순웅 목사는 초기부터 이러한 교회 현실에서 새로운 목회 방향을 잡았다. 주일 저녁과 수요예배만 남기고 새벽기도와 철야 예배를 없앴다. 교인들에게는 예배 수를 줄이는 대신 한번 제대로 드리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남게 된 시간은 농사를 짓겠다고 말했다. 교인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한 권사는 박 목사에게 밭 1500평을 세금만 내고 쓰도록 빌려줬다. 이제 반은 농사꾼이 되었다.
이 밭에 고구마와 옥수수, 감자, 콩을 유기농으로 재배해 해마다 5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덕분에 본봉 60만원으로 시작한 목회자 사례비를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미술을 전공한 아내가 지역 학교에서 미술과 영어 과목을 특기적성 교육을 해서 버는 수입을 합쳐, 네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박 목사가 생활비를 어느 정도 벌면서 이웃과 나누는 삶도 가능했다. 배추를 재배해서 교인들과 함께 절여 서울 교회들에 팔아 얻은 수입으로는 마을 애경사비로 쓴다.
해를 거듭하면서 농사량도 늘려 여름에 찾는 손님들에게 옥수수 2000통을 찐다고 했다(믿기지 않으면 가서 확인해 보자). 고구마도 주변의 친구 목회자들과도 나눠 먹을 정도는 재배한다. 농활 오는 대학생들과 자매 맺은 도시 교회의 청년들이 쉴 새 없이 찾아오기에 그것으로도 부족하다고 한다.
박 목사는 목회자도 흙을 갈아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목사들도 할 수만 있으면 농사를 했으면 좋겠다. 다랑이 논이라도 지으면서 생명을 가꾸는 훈련을 몸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이해하는 깊이도 달라지지만, 우리 시대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심정까지 헤아릴 수 있는 도량이 생긴다"고 말한다.
또 그는 "대형 교회 목사가 솔선수범하면, 흔들리는 농촌의 많은 목사와 교인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시골은 도시 청년들의 수련 공간
박 목사에게 농사는 제2의 직업이기도 하지만 인연의 끈이 되기도 한다. 함께 유기농업을 하는 목회자들과 힘을 합쳐 서울 다섯 교회에 매장을 냈고, 도시의 청년들이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현장을 방문해 체험할 수 있는 장도 마련해주었다.
도시에서 젊은 손님들이 찾아올 때 처음엔 정말 농사꾼의 일정대로 일을 했다.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고 이제는 오후에 박 목사의 인맥을 가동해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한다.
박 목사는 한옥을 짓는 도편수, 목공소 사장, 한지 공방을 하는 이, 소나무 숯을 만드는 사람 등 주변에 나이가 비슷한 이들을 친구로 사귀고 있다. 이런 친구들로만 20여 명이 있어 2∼3일 일정으로 찾아오는 손님이라면 한 번에 두세 곳씩 세 해를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다.
박 목사는 홍천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이러한 이들과 사귀는 것을 자신의 제2의 목회라고 말한다. 비록 그들 가운데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서로 소중하다고 여기는 삶과 문화를 일궈가는 든든한 벗들이기에 교회 못지 않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자부한다. 특히 박 목사는 목회하는 심정으로 만나다 보니 그들도 '교인 아닌 교인'이 되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