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 포 콜럼바인>을 찍은 마이클 무어 감독
더 이상한 건 총기 문제엔 그렇게도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하면서 낙태 문제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총기 소지의 자유를 원하는 건 백인 남성 중산층이고, 낙태 문제는 여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강자의 자유만 중요한 것이다.
미국은 강자인 투자자, 즉 자산가의 자유는 중시하면서 노동자, 민중이 누려야 할 자유에 대해선 인색하다.
투자자에게 국가제소권을 주면서 노동자에겐 국가제소권을 주지 않는 것이다. 또 강자인 자신의 이익극대화를 당연시하면서 약자인 후진국의 경제개발노력을 거세한다. 자신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게 만들어 멕시코를 영구적으로 착취하려는 것이다.
낙태 문제는 종교와 결부되어 있다. 미국식 자유화는 곧 보수화다. 보수는 결국 종교적 근본주의와 만난다.
미국은 지금 근본주의가 창궐하고 있다. 신정체제라는 말까지 나온다. 생명을 절대시하는 종교는 낙태를 금지한다. 그리하여 공화당은 낙태를 거부한다. 그런데 낙태보다 더 생명을 위협하는 총기 소지의 자유나 전쟁엔 적극적이다. 종교도 이것에 대해 낙태만큼 강하게 제동을 걸지 않는다.
결국 미국식 사회는 강자제일주의의 사회진화론의 산물일 뿐이고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총인 셈이다. 아무리 아이들이 죽어나가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총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1999년 콜럼바인, 2007년 버지니아
1999년에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화씨911>로 유명한 마이클 무어는 이 사건을 소재로 <볼링 포 콜럼바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연간 총기 피살자수. 일본 39명, 호주 65명, 영국 68명, 캐나다 165명, 프랑스 255명, 독일 381명…. 미국 1만1127명.
도대체 미국만 왜 이런 것인가? 마이클 무어는 질문한다. 그가 이 다큐멘터리에서 제시하는 답은 일단 "미국의 호전적 기질"이다. 남을 침략하길 밥 먹듯 하는 나라의 백성이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건 당연한 일일 터.
그다음 마이클 무어의 관심은 빈민사회로 향한다. 미국에서 최연소 총기사건을 일으킨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방치하고 생계를 위해 두 개의 직장에서 낮이나 밤이나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마이클 무어는 이렇게 질문한다.
"두 직장을 다녀야 하는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미국은 두 개의 직장을 다니며 열심히 일해도 빈곤을 대물림하는 나라가 됐을까? 그것은 미국이 자유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총기소유의 자유란 개인의 보호는 개인 스스로 하라는 사고방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것은 각 개인의 삶은 각자의 자업자득이란 생각과 통한다. 이것이 연대의 정신에 입각한 국가단위의 복지체제를 형성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에게도 개인에게 총기소유의 자유를 인정하듯, 투자자의 자유를 인정해 국가규제를 최소화한다. 그 결과 미국은 총기사고가 범람하는 양극화 사회가 됐다.
지금처럼 '공포로 정신이 나간 미국인'들에게 총기를 쥐어줘선 안 된다고 생각한 무어 감독은 미국총기협회(NRA) '찰톤 헤스톤' 회장을 찾아간다.(<벤허>의 그 배우다) 찰톤 헤스톤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내게 주어진 권리를 즐기는 거야. 이 나라를 건설한 현명한 백인들이 내게 그런 권리를 물려줬으니까. 난 장전하는 쪽을 '선택'했어."
미국식 자유, 우리도 따라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