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 달리기, 그 진정한 의미 생각해야

등록 2007.04.18 17:34수정 2007.04.1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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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행사를 위해 본관 앞에 모인 학생들.
4.18 행사를 위해 본관 앞에 모인 학생들.최재인
1960년 4월 18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구속된 동료 학우들의 석방과 학원 자유를 요구하는 고대생들의 평화시위에 정권은 무차별 폭력으로 진압했고, 이에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전국적 시위로 폭발했다. 즉, 4월 18일의 고려대 학생들의 궐기가 4.19혁명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런 만큼 매년 4월 18일이 되면 418달리기 행사를 할 정도로 고려대 학생들에게 4.18 궐기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4.18 달리기는 고대생들 사이에서 소위 '고대문화'라고 일컬어지는 3가지 공통의 행동양식 중 한가지이다. FM(큰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과 속한 단대 및 과를 소개하는 것), 사발식, 4.18 달리기가 그것인데, 4.18 달리기는 새내기들이 대학에 입학해서 마지막으로 경험하게 되는 고대문화인 셈이다. 하지만 4.18달리기를 알고 있는 사람에 비해 그것을 직접 경험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고대생들, 왜 달리는 겁니까

12시가 되자 붉은색 티셔츠를 차려입은 학생들이 속속 본관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점점 규모는 작아지고 있지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오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이곳에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계승하고자 하는 4.18 정신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현재적 의미는 무엇일까?

사범대 역사교육과 학생회장 윤형덕(22·이하 윤)씨를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역사교육과 학생회장 윤형덕
역사교육과 학생회장 윤형덕최재인
-역사교육과에서 오늘 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윤 "역사교육과는 해마다 4.18 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관행이 되어버린 경향도 없지 않아 있지만, 4.18 행사를 통해 대학사회가 처한 문제점과 잘못된 국가정책에 대해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피켓도 만들어 오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들고 뛰는 건 무리일 것 같아서 그냥 왔어요.(웃음)"

-새내기들 같은 경우, 4.18의 의미나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것 같은데, 참여하기 전 과에서 준비하는 것들이 있나요?
윤: "네. 저의 과 같은 경우는 지난주에 새내기들과 교양대회를 한차례 했습니다. 4.19 혁명과 관련된 영상물을 보고, 우리와 왜 그날을 기념하여 달리기를 하는지에 대해 짧게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오히려 새내기들한테 겁만 준 것 같아요."

-어떤 점에서요?
윤 "솔직히 그냥 달리기만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 과는 달리면서 구호 같은 걸 외치거든요. 등록금 인상 반대, 학생 자치 보장, 비정규직 철폐 같은 구호를 외치는데, 그런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아요."


-행사에 참여하는 다른 과들도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나요? 제가 보기에 여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씨 좋은 날, 소풍가는 기분으로 모인 것 같은데, 유독 역사교육과는 조금 다른 것 같네요.
윤 "고연전도 아닌데 오늘 같은 날에도 모여서 응원하고 노는 사람들 보면 저도 좀 어이가 없어요. 그런데 갈수록 그런 경향들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요. 몇 년 뒤엔 이 4.18달리기 행사마저 없어지지 않을까요?"

-오늘은 어떤 구호들을 외치면서 달릴 생각이신가요? 직접 선동도 하세요?
윤 "해야죠. 구호는 매년 비슷해요. 등록금문제, 학생자치문제 그런거요. 올해 같은 경우는 출교철회구호랑 한-미FTA 반대구호도 열심히 외치려고요."


작지만, 소중한 목소리들

최재인
4.18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소음과 교통체증도 그 이유지만, 고대생들만 4.19를 기념하듯 유난을 떠는 모습이 제 3자의 시각에서는 아니꼽고 불쾌하다. 허울만 남은 형식적인 행사에 불과하며, 더 이상 4.18행사를 통해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역시 고대생들의 4.18 달리기를 그들만의 '리틀(little) 고연전' 정도로 생각했었다. 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나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일반 학생들이나 내 눈에는 그저 ‘고대생’으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는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소중한 목소리들이 있었다. 해마다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올려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학교당국과, 그런 학교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처벌하는 데에만 급급할 뿐, 학생들과 소통하려는 의지는 조금도 없는 사립재단을 비판하는 목소리.

한-미 FTA를 졸속적으로 추진하고 자기들만의 협상을 높이평가하기에 정신이 팔린 정부와, 교육을 돈 주고도 사기 힘든 비싼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 그 속에 그들이 계승하고자 하는 4.19 정신이 있었다. 어쩌면 피켓을 치켜든 그들의 손에 이미 4.19 정신은 쥐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4.19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

최재인
4.18달리기를 완주해야만 4.19혁명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4.18 달리기를 완주한다고 해도 4.19 정신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을 비난할 수 없으며,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 역시 힘들게 완주한 학생들의 노력과 의지를 자신의 잣대로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퇴색되어버리고, 당위가 되어버린 4.18 기념행사에 현재의 숨을 불어넣고 새롭게 채색해 나가려는 소중한 노력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2~3년 동안 고려대학교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총장 논문표절 의혹으로 겨울 내내 시끄러웠고 학교의 부당함을 알리는데 앞장서다 출교조치를 당한 학생들은 무더운 여름을 나고,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견디며 또 다시 훨씬 더 무더울 것이라는 올해 여름을 천막 안에서 맞이하려 하고 있다.

어느 한 사람의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한 이유는 따로따로 인 것 처럼 보이는 우리 각자의 삶이 사실은 '관계'라는 이름으로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47년 전, 참된 자유와 정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피를 흘렸던 수많은 열사들이 있었기에 우리사회는 이만큼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4.18 달리기를 위해 내딛는 고대생 한명 한명의 발걸음이 진정한 대학민주화를 이룩하는데 보탬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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