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씨 사건 다루는 언론들 보도 신중해야

<연합> '교포 1.5세대 부적응 스트레스 참극 불렀을 수도' 기사 비평

등록 2007.04.19 12:04수정 2007.04.1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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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버지니아텍(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한국계로 밝혀지면서 재미교포 사회를 중심으로 한 기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사건 직후 한국 언론은 범인으로 알려진 조승희씨의 신상명세와 국적, 학교생활, 개인 취향 등을 속보성 기사로 내보냈다.

조씨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알려지면서 우리 언론은 분주해졌다. 버지니아공대에 다니고 있는 재학생 반응과 한인학생회장과의 인터뷰, 재미교포 반응, 불안한 한인사회의 분위기 등을 보도하는 기사를 속속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의 눈과 귀가 미국과 우리나라 언론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관계가 확인이 되지 않은 분석기사는 큰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보도가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김재홍 <연합뉴스> 특파원이 18일 보도한 '교포 1.5세대 부적응 스트레스 참극 불렀을 수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자.

이 기사는 미 교민들과 주미 대사관 관계자의 인터뷰를 토대로 이번 총기난사 사건이 미 교포 1.5세대 부적응 스트레스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기사 첫 단락이다.

"미국 사회 전체를 큰 충격과 슬픔에 휩싸이게 만든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 재미교포 1.5세대 출신의 버지니아공대 재학생으로 드러나면서 1.5세대들의 부적응 스트레스가 참극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분석에 동조할 수 없다. 교포 1.5세대 자녀들의 부적응이 이 사건과 연관있을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는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기사 내용에는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높은 교육열 등 한국의 독특한 교육문화가 재미 1.5세대 학생들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고, 이번 사건도 그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참극이라고 진단한 변호사의 인터뷰가 실렸다.

또 주미 대사관 관계자의 말을 빌려 미국 내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가 비대해지면서 순수 유학생과 1.5세대 교포학생, 시민권자 출신 학생들 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도 생기고 있다며, 1.5세대 교포학생들에겐 대학 이런 문제들도 현실적인 갈등의 요인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함께 전했다.


반면 이와 상반된 인터뷰도 실렸는데, 한 교민은 여자친구 문제로 비롯된 미확인 보도가 나오는 만큼 이 사건을 1.5세대 자녀들의 부적응 사례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이었다.

서로 다른 인터뷰가 실렸지만, 이 기사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조씨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을 '1.5세대 부적응 스트레스'에서 찾고 있다.

나는 이 기사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교포 1.5세대가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시킬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언론들은 교포 학생들이 콩클 입상을 했거나 수석졸업 등 좋은 일을 수시로 보도했고, 이들의 성공은 미 사회에 잘 적응했으리라는 밑바탕이 깔려있다. 그렇지만 일개 사건이 전체집단의 문제로 연결짓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개인의 수석졸업을 교민학생 전체의 우수성으로 확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세한 수사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지금 미 수사당국은 외톨이로 살아온 조씨의 사회비관적 성향에서 사건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1.5세대 부적응 스트레스 참극 불렀을 수도' 기사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미 1.5세대와 조씨 사건의 어떤 상관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야 했지만 그렇질 못했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1.5세대 부적응과 관련된 여론조사나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번 사건을 연관지었다면 설득력이 높았을 것이다. 변호사와 교민 몇 명, 대사관관계자의 다소 개인적인 견해를 가지고 1.5세대 부적응이 이번 참사를 불렀을 수도 있다고 보도하는 것은 오버다.

궁금증이 점차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이 한인교포와 우리나라에 미치는 파문이 큰 상황이기에 언론보도가 신중하고 차분하게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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