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눈 프랑스 아가씨 "가야금 노무 힘드러요"

김해가야문화축제 수로왕 서울행차 진풍경

등록 2007.04.23 11:38수정 2007.04.2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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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문화축제가 3회째 열고 있는 수로왕서울행차 문화행사 일환으로 연 외국인가야금교실에서 외국인들이 가야금연주자 이혜진의 아리랑 연주를 지켜보고 있다
가야문화축제가 3회째 열고 있는 수로왕서울행차 문화행사 일환으로 연 외국인가야금교실에서 외국인들이 가야금연주자 이혜진의 아리랑 연주를 지켜보고 있다김기
아침 무렵 잠시 흐린 하늘이 정오를 향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한 봄날로 완벽하게 변신한 주말을 맞은 인사동.

주말이면 언제나 이런저런 문화행사로 행인의 발길을 잠시 붙들어 매는 곳이긴 해도 외국인들이 가야금을 시연하고, 그 사회도 외국인이 한국말로 하는 것은 글로벌시대인 요즘이라도 눈에 익지 않은 모습이다. 주말이라도 바쁜 사람의 걸음은 허투루 머무는 법이 없는데, 노란머리 아가씨가 가야금을 조심스럽게 한 줄 한 줄 타가는 모습에는 절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이 모습은 올해로 3회를 맞는 김해시가 주최하는 가야문화축제의 서울홍보행사인 김수로왕서울행차로 21일 열린 외국인가야금교실의 장면이다. 가야금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악기 중 하나인 것이야 새삼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것이 신라에 의해 정복당해 역사를 잃어버린 가야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 또한 아주 생경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현재의 김해, 부산, 마산 등이 옛 가야의 영토였다. 지금 김해시 시민 200여명이 서울로 대거 올라와 알리고 싶은 옛 가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아이콘 가야금의 흔적은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없지는 않다. 김해시가 지자체로서는 드물게 시가 지원하는 가야금단체를 운영하는 것도 단지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을 것이며, 전대의 가야금 명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강태홍이 만년을 부산에 의탁해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 사실도 가야지역이 가진 의미로 꼽을 수 있다.

옛 수로왕과 인도부인 허황옥의 가장 행렬
옛 수로왕과 인도부인 허황옥의 가장 행렬김기
가야는 김수로왕과 머나먼 인도에서 온 허황옥의 결혼으로 역사를 열게 된다. 이로써 김씨의 일파와 허씨가 생겨나게 되는데, 요즘 양성을 함께 쓰는 모습도 보게 되지만 고대 작은 국가에서 아내의 성을 병기 정도가 아니라 별도로 일가로 만들게 한 수로왕은 어쩌면 패미니스트의 시조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가야의 문화가 융성했다는 것은 아주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굳이 분명한 유물, 유적이 아니더라도 아내 혹은 이국의 여인에게 베푼 파격적인 태도만 보아도 가야의 문화는 현대인조차 상상키 어려운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볼 수 있다.

이날 열린 외국인가야금교실은 또 한 번 가야의 자유로움을 새기게 하는 이벤트였다. 전라도 영암의 왕인축제도 그렇고, 몇몇 지역에서 설화에 기반 한 축제를 열고 있지만 김해의 가야문화축제는 일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취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 가야 그 자체가 다국적 왕조로 시작된 까닭이다.


가야금 너무 어려워요. 실제 연주한 시간은 불과 30분 남짓 손가락에 옅은 물집이 잡힌 프랑스 여성은 힘들다는 말과는 달리 눈과 입가에는 만족한 즐거움이 떠나지 않았다
가야금 너무 어려워요. 실제 연주한 시간은 불과 30분 남짓 손가락에 옅은 물집이 잡힌 프랑스 여성은 힘들다는 말과는 달리 눈과 입가에는 만족한 즐거움이 떠나지 않았다김기
독일인 여성이 유창한 한국말과 영어로 진행을 보고, 한국종합예술학교 전문사 과정인 이혜진이 지도를 하고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에서 한국을 방문한 4명의 외국인이 어쩌면 많은 한국인이 평생 한번도 무릎에 올려보지 못하는 가야금을 한 땀 한 땀 연주해갔다.

연주라 하기보다는 그저 시키는 대로 가야금 열두 줄 위에서 열심히 번호를 찾는 것에 불과했으나 그런 속사정이야 무대 밖에서는 알 도리가 없는 것이고 지켜보던 한국인들은 '외국인들도 저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 거면 우린 더 잘하겠는데...' 하는 모습들이었다.


외국인가야금교실을 연 가야문화축제 김진묵 예술감독의 의도 역시 거기에 맞춰져 있었다. 그렇다면 교실이라면서 교실이 아닌 도심 한복판에서 연 가야금교실의 목적은 충분히 거둔 것으로 보였다. 우리 것인데 남이 하면 대견하면서도 동시에 샘도 나는 것이 인지상정.

1시간 남짓 가야금교실에 참가하고 무대를 내려온 프랑스인 여성은 "가야금 너무 어려워요. 그래도 보기만 하다가 직접 연주해서 기쁘고 행복해요"라고 소감을 말한다. 이 말은 푸른눈의 외국여성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입에서 나올 말이다.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 한동안 가야문화축제의 외국인가야금교실은 계속해서 한국인들의 질투심을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

질투는 때로 상상치 못한 긍정의 힘을 발휘하게 되죠. 외국인들이 가야금을 쉽게 배우는 모습에 우리 한국사람들이 샘내게 되믄 가야금의 대중화 그리고 가야문화의 홍보는 저절로 이루어질 거라 생각합니다..하는 김진묵 가야문화축제 예술감독
질투는 때로 상상치 못한 긍정의 힘을 발휘하게 되죠. 외국인들이 가야금을 쉽게 배우는 모습에 우리 한국사람들이 샘내게 되믄 가야금의 대중화 그리고 가야문화의 홍보는 저절로 이루어질 거라 생각합니다..하는 김진묵 가야문화축제 예술감독김기
가야문화축제 수로왕서울행차는 5월의 본 축제에 앞서 서울홍보성격을 띠고 있어서 가야문화축제추진위원회는 이밖에도 다양한 문화행사를 인사동 거리에 풀어놓았다. 이 행사 자체가 수로왕 행차인 바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가장 행렬은 그중 꽃이라 할 수 있고, 김해 시민들이 대거 상경한 목적도 이 가장 행렬을 꾸미기 위함이었다. 흑마백마가 이끄는 두 대의 마차를 필두로 가락오광대, 풍물패 등 200여명이 뒤를 이었다. 도심에 등장한 말과 마차에 시민들의 눈이 쫒아갔다.

또 가야금교실 다음으로 이어진 인도 랑골리 행사는 가장 많은 사진 세례를 받았다. 랑골리는 매일 아침마다 인도여성(귀족에 국한한다고 한다)들이 행하는 명상적 수행의 하나로 실내외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한다. 랑골리의 가장 큰 특색은 정갈하게 쓸어낸 마당 혹은 거리에 색색의 가루로 인도 특유의 문양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가루로 그린 그림이기에 굳이 강한 바람이 불지 않는다 해도 행인들에 의해서라도 머지않아 사라지게 된다.

마치 칼로 물을 베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종교의 나라 인도 여성들의 랑골리는 보는 이의 마음을 문득문득 숙연케 하는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딸로 이어지는 여성 3대가 꽃수술 등을 활용해 인사동 길바닥에 수놓은 랑골리는 그 자체로 이색적이었고 마치 그 옛날 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의 아침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이후에도 김해시장과 종로구청장, 인도 대사 등이 참석한 개제식과 넌버벌퍼포먼스 그리고 김해 오광대놀이, 음악공연 등이 늦도록 이어졌다. 저녁 무대에는 앞서 말한 강태홍 가야금명인과 유사한 면을 많이 가진 유대봉 명인의 유일한 맥을 이은 백인영 선생이 나와 그만이 할 수 있는 가야금과 아쟁연주를 보여주었고, 김해시 가야금합주단과 인도 사로드 연주자 그리고 퓨전국악밴드와 타악퍼포먼스까지 다양하게 펼쳐졌다.

인도모녀 3대가 인사동 거리에 펼쳐놓은 인도 고유의 명상의식 '랑골리' 꽃과 색가루로 연출된 랑골리는 가야에 배인 인도의 흔적을 연상케 해주었다
인도모녀 3대가 인사동 거리에 펼쳐놓은 인도 고유의 명상의식 '랑골리' 꽃과 색가루로 연출된 랑골리는 가야에 배인 인도의 흔적을 연상케 해주었다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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