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떠난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농촌에서 살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등록 2007.04.23 11:26수정 2007.04.2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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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좋은 봄날이다. 이런 날은 자락자락 내려앉는 햇살을 받으며 산과 들을 헤매고 싶다. 헤매다 아무 곳에나 누워 꿈도 없는 잠을 한없이 자고 싶다.


할머니 산소에서 고래실 쪽으로 내려오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한참 현호색 꽃밭에서 싫도록 구경을 하고, 사진도 한껏 찍은 뒤끝이라 마음이 더없이 넉넉해진 참이다.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의 여리고도 아름다운 모습이 산길을 내려오는 내내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산길을 거의 내려오자, 이제는 흉물처럼 버려져 있는 축사가 놓여 있다. 한때는 제법 많은 사슴을 길렀던 곳이다. 사촌 동생은 엘크 사슴을 여러 마리 길렀었다. 한창 사슴이 수입이 좋아 살 만한 것 같았다.

그래서 보조금에 대출까지 받아 큰 축사를 지었다. 그러나 이내 사슴 경기가 떨어지자 수익을 낼 수가 없었다. 결국 사슴을 다 팔아버리고, 농사를 작파하고 도시로 떠나버렸다.

a 현호색, 축사 위로 지천으로 피어 봄을 밝히고 있었다.

현호색, 축사 위로 지천으로 피어 봄을 밝히고 있었다. ⓒ 최성수

농사꾼이 떠나버린 축사 주변으로는 사람 키보다도 큰 잡초만 우거진 채 몇 계절이 지나갔다. 한때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축사 주변의 연못과 뜰도 흉물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축사를 바라보며, 농사꾼이 제 힘으로 살 수 없게 되어버린 농촌 현실을 씁쓸하게 되새김질했다. 대출 받은 돈을 갚아야 하는 동생도 허리가 휘겠지만, 보조금도 그냥 헛되게 날려버린 꼴이 되었으니, 국가 재정은 또 얼마나 손해이겠는가.


우리나라의 농업 정책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지 싶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언 발에 오줌 누듯, 당장 눈에 보이는 단물만 제공하는 식이다.

농산물 수입 개방이니, 한미FTA니 하는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그저 대출 금리를 인하하느니, 얼마를 보조하느니 하며 사탕발림으로 넘어갈 뿐, 농사꾼이 근본적으로 살 수 있는 바탕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보조나 좀 해 주다가, 농민이 다 농촌을 떠나게 되면 그걸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겠느냐는 식이 아닌가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든다.

a 물 속의 도롱뇽에게도 봄이 왔을까?

물 속의 도롱뇽에게도 봄이 왔을까? ⓒ 최성수

축사를 지나다 웅덩이를 들여다보니 맑은 물이 고여 있다. 하긴 축사 위로 인간의 손때 탈 아무것도 없으니 맑은 물이 고인 것도 당연하리라. 물은 속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다. 그런데, 솔잎이 떠 있는 사이에 무언가가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롱뇽이다.

앞뒤 발이 귀엽게 나 있는 것이 재미있고 귀엽게 생겼다. 나는 도롱뇽을 보며 문득 자기 삶의 터전인 농촌을 떠나 낯선 도회지로 옮겨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경상도 어느 도시로 떠나 공장 노동자가 된 청년, 밤도망을 해 행방조차 묘연해진 아저씨, 도시 사는 아들을 따라 춘천인가 어디로 가 그리운 마음만 보내온다는 어느 할머니, 그런 고향 마을의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어쩌면 계곡의 맑은 물을 떠난 도롱뇽 같은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낯선 환경에 내던져져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도롱뇽 말이다. 대체 누가 그 도롱뇽들을 냇물에서 몰아낸 것일까?

a 제 물을 떠난 도롱뇽은 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제 물을 떠난 도롱뇽은 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 최성수

웅덩이 속 도롱뇽 곁에 실 같이 긴 것이 꿈틀댄다. 어릴 때 실뱀이라고 부르며 징그러워했던 놈이다. 막대기로 건져내 보니 정말 뱀처럼 몸을 뒤튼다. 정말 실뱀일까? 자료를 뒤져보니, 뱀이 아니라 '연가시'라는 놈이란다.

연가시는 유충일 때 풀에 붙어 있다가 사마귀나 메뚜기가 풀을 뜯어 먹을 때 몸 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 뒤 그들의 몸 속에서 자라는데, 길게는 1미터가 넘는 놈도 있을 정도란다.

숙주의 몸 속에서 다 자란 연가시는 숙주의 신경을 조종하여 메뚜기나 사마귀를 물가로 유인, 물에 빠지게 한 후 숙주의 몸 밖으로 나와 물 속에서 알을 낳는단다. 연가시는 햇빛에 노출되면 금방 죽기 때문에 물 속으로 숙주를 유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a 연가시. 도롱뇽을 등 떠민 세상의 연가시는 무엇이었을까?

연가시. 도롱뇽을 등 떠민 세상의 연가시는 무엇이었을까? ⓒ 최성수

농민이 농촌을 떠나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든 '연가시'는 과연 무엇인가? 날마다 들려오는 수입 개방 압력에, 모든 것을 경제 논리로만 따지는 현실 속에서, 농민은 필연적으로 연가시에 조종당하는 사마귀가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진정 전체 사회에 경제적 이득이 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 일 때문에 희생당해야 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따스한 마음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허망한 일일까?

한미 자유 무역 협정에 이어 EU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 FTA 협정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그 일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이득이 될지 나는 짐작할 수 없다. 다만, 경제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인간의 삶의 소중한 부분이 이 세상에 있다고 나는 믿기 때문에,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 살던 개울물을 떠난 도롱뇽이 되어야 이 가혹한 경제 전쟁은 막을 내릴까? 이미 고향의 개울을 떠난, 그 수많은 도롱뇽들은 이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봄 햇살은 저리 맑고 투명한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을 비롯한 저의 더 많은 글과 사진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 http://cafe.naver.com/borisogol.cafe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비롯한 저의 더 많은 글과 사진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 http://cafe.naver.com/borisogol.cafe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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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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