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80회

등록 2007.04.24 08:02수정 2007.04.2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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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의 돌발적인 반격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중년인도 떨어져 내리는 신형을 멈추거나 방향을 틀지 못하고 황급히 장풍을 날리며 마주쳐 가자 가죽북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퍼--펑---!


그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며 풍철한과 반효가 뛰어 들어온 것은 동시였다. 그리고 회의의 사내의 몸이 중년인의 장풍과 마주쳐 그 여파로 방바닥에 떨어지는가 싶더니 용수철처럼 튕겨 오르며 창문을 향해 쏘아나간 것도 역시 눈 깜작할 새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풍철한의 뒤로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곧 바로 모습을 보였는데 반효는 이미 창문을 넘어 도망간 회의의 사내를 뒤쫓아 나간 뒤였다. 풍철한은 방안에 검은 도포를 입은 사내를 보고 오히려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의외로 혈녹접이 뾰쪽한 목소리로 발했다.

“둘째오라버니....!”

검은 도포를 입은 중년인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좀 멋있게 나타나 놀래주려 했는데 어디서 온 자식인지 자꾸 방을 기웃거리는 바람에 영 모양이 이상하게 되었군. 그동안 잘 계시었소?”


생사판(生死判) 종문천(鍾門天). 소유향이 둘째오라버니라고 부를 인물은 중원사괴 중 둘째인 그 밖에 없다. 그는 풍철한에게 포권을 취하더니 함곡과 그의 옆에 서 있는 선화에게까지 예를 차렸다.

“어찌된 거야?”


풍철한이 정신을 차린 듯 퉁명스럽게 묻자 종문천이 느긋한 표정으로 나머지 사람을 쭉 훑으며 말했다.

“아무리 식사를 해도 그렇지 밖에서 기웃거리는 놈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으면 어떡하오? 좋은 뜻으로 기웃거리는 것 같지는 않아 보여 장난 좀 쳤소.”

그의 시선이 창쪽을 향했는데 어느새 그곳에는 철금강 반효가 다시 창문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무지하게 빠른 놈이오. 희끗하더니 아래쪽으로 사라졌소. 도대체 그 놈이 누구요? 더구나 형님은 여기에 갑자기 웬일이구…?”

“내가 오면 안 되냐?”

종문천이 반효를 보며 웃자 풍철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기는 어떻게… 왜 들어온 거냐구?”

풍철한이 울화가 치밀어 오른 듯한 표정을 보이자 종문천이 찔끔하며 입을 열었다.

“아… 사실 들어오지 않으려 했는데… 들어올 수밖에 없는 일이 터지는 바람에 할 수없이 들어왔소. 거… 사정도 모르면서 소리부터 지르지 맙시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함곡과 선화에게 시선을 던졌다.

“모두 다 형님을 위한 일 때문이오. 우리 형제에게 의리 빼면 뭐가 남겠소? 형제를 위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잖소?”

“모두 같이 죽자구…?”

기껏 퇴로나 만들어 놓으라고 해놓았더니 아예 들어와 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풍철한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종문천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어차피 의형제가 되면서 그랬지 않았소? 같은 날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죽는 것은 같은 날 죽자구… 그리고 죽기는 왜 죽소? 이 우제는 형님이 장가가기 전에는 죽을 마음이 없수….”

종문천의 넉살좋은 말에 풍철한은 하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지금 농담할 때인가? 뭔 일 때문에 하라는 준비는 하지 않고 이곳에 뛰어들었는가 말이다. 더구나 자꾸 힐끗거리며 함곡과 선화를 보는 종문천의 눈길이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빌어먹을… 너는…?”

“야단을 치려거든 조금 있다가 치슈. 두 끼를 굶었더니 배가 등에 붙었수. 식사하는데 끼어볼까 했는데 그 자식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종문천의 태도로 보아 이곳에 들어온 것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듯 했다. 그것은 천천히 들어도 될 일이었다.

“헌데 그 자식이 누구야?”

“내가 알겠소? 이곳에 왔는데 이곳 주위를 여기저기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는 놈이 하나 있지 않겠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좋은 뜻을 가진 놈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먼저 방 안으로 들어왔더니 이 아이가 있지 않겠소? 헌데 마침 그 자식이 이 아이를 노리기에 일단 제지해 본거요. 이 아이가 누구기에 그 자식이 목숨을 걸고 데려가려 하는 거요?”

종문천이 홍교를 보며 묻자 풍철한이 고개를 저었다.

“청룡각 쪽 시비 아이인데 뭔가 사건에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데려다 놓았다. 그러고 보니 그 자식… 못 보던 놈인데 오늘 추태감을 따라 들어온 놈인가?”

“자네 말이 옳을 것 같군. 아마 삼재팔번인가 하는 인물 중 하나겠지.”

함곡이 한 발 나서며 말을 받았다. 종문천은 걸음을 옮겨 창틀에 박힌 두 개의 물체를 진력을 사용해 서서히 빼내고 있었다. 창문틀에서 빠져나와 종문천의 손바닥에 올려진 것은 동전 두 문이었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 보이는 동전을 갈무리 하더니 다시 방안 구석으로 떨어진 동전 하나를 마치 귀중한 보석을 갈무리하듯 품에 넣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무척 중요한 아이 같은데 그런 아이를 밥 먹겠다고 그냥 혼자 놔두었단 말이오?”

그것은 종문천의 지적을 받지 않아도 지금 일어난 상황을 보고나서 실수라고 느끼던 터였다. 아무리 혈도를 짚어 움직일 수 없도록 해놓았다지만 이리도 허술하게 내버려 두었을까? 풍철한과 함곡은 입맛을 다셨다.

“아주 중요한 아이죠. 그녀가 누군지 안다면 매우 놀랄 거예요.”

말과 함께 소유향이 생글거리며 홍교에게로 다가갔다. 홍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유향의 시선을 피했다.

“나는 네가 누군지 알아.”

홍교의 앞으로 걸어간 소유향이 나직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허나 그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고, 홍교에는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굉음으로 들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게다가 귓가의 머리를 살짝 쓸어 올리는 소유향의 손길이 마치 뱀이 지나가는 듯한 섬뜩함을 주고 있어 그녀는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주위의 시선이 모두 소유향에게 쏠렸지만 그녀는 먹이를 문 뱀처럼 아주 천천히 삼키려는 듯 느긋한 모습을 보였다.

“도대체 그 아이가 누군데 그리 뜸을 들이는 거야?”

참다못한 풍철한이 소리를 질렀다. 허나 소유향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홍교의 귀밑에 대고 입김을 불었다.

“호오… 나는 네가 누군지 무척이나 궁금했거든. 너무나 궁금해 식사를 할 수 없더라구… 아마 더 시간이 지났으면 궁금증으로 인해 나는 미쳐버렸을지도 몰라.”

“……?”

“이년 전 상양현(常陽縣)의 현감이었다가 강소(江蘇)의 지부대인이 된 감삭진(甘朔振)이 부임한지 석 달 만에 피살된 사건이 있었지. 그 오 개월 뒤 안휘성(安徽省) 합비(合肥)의 현감 역시 죽음을 당했어. 사인은 모두 침상에서 복상사 한 것이라고 판명되었어.”

소유향이 식사를 하면서 딴 생각을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였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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