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그림자 지원'... "호남 민심은 대통합"

[4·25 재보선] 무안·신안에서 열흘간 홍업씨 선거지원... 민주당 "DJ 망신줄 순 없다"

등록 2007.04.25 09:13수정 2007.04.2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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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ont color=a77a>박지원의 '지원'도 계속되고... 2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가 전남 무안군 무안읍 장터를 찾아 김홍업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다. 박지원 실장과 김 후보가 이씨를 배웅을 하고 있다.

박지원의 '지원'도 계속되고... 2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가 전남 무안군 무안읍 장터를 찾아 김홍업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다. 박지원 실장과 김 후보가 이씨를 배웅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저, 박지원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비서실장으로 다시 '동교동' 일을 시작한 박지원(64)씨는 조용히 움직였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56)씨가 출마한 전남 무안·신안 재보선 유세장. 단상에 올라 지원유세를 하거나 후보자와 함께 손을 치켜들고 노골적인 선거운동을 할 순 없었지만, 군민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악수와 함께 이같이 인사했다.

사람들은 그를 대부분 알아봤다. "고생했다"며 그가 내민 손을 잡아 주었다. 길가 좌판에서 찐빵도 사먹고 외톨이로 앉아있는 어르신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는 서민 행보를 보였다.

박 실장은 2003년 6월 대북송금 사건으로 구속된 뒤 지난 2월 사면되었지만, 복권까지 된 것은 아니어서 피선거권이 없고 따라서 내놓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의 말처럼 발은 풀렸지만 입은 묶인 셈. 하지만 'DJ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박 실장은 그 출연만으로도 선거운동의 효과를 갖는 정치적 메시지가 큰 인물이다.

이희호씨를 비롯해 동교동계가 총출동한 이번 무안·신안 선거에서 박 실장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병원 진료차 잠시 서울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곤 지난 14일부터 열흘간 이 지역에 머물렀다. 선거운동이 끝나고 투표일인 25일에야 상경했다. 개표 결과는 동교동에서 지켜볼 터.

묶인 입, 그러나 그의 발은 바빴다


이 곳 선거는 후보 개인의 당락을 넘어 DJ의 정치적 생명줄을 쥐고 있는 사뭇 전국 선거의 양상을 띠었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24일, 무안·신안 총동원령이 내려진 민주당. 이들의 지지 호소는 으름장에 가까웠다.


박상천 대표는 "DJ의 마지막 정치적 명예를 훼손하고 전국적으로 망신주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고 말했고, 이낙연 의원은 "DJ의 영향력이 여기서 끝날 것인가 계속될 것인가, DJ가 좀더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말했다.

김홍업씨가 낙마한다면 다음날 조간신문의 기사제목은 '김대중, 호남에서 끝났다'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캠프 내에서도 공공연하다.

a <font color=a77a2>민주당 지도부도 총출동했지만... 24일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김홍업 후보 지원유세에 나서  "DJ를 전국적으로 망신주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며 "고향에서 명예를 지키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총출동했지만... 24일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김홍업 후보 지원유세에 나서 "DJ를 전국적으로 망신주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며 "고향에서 명예를 지키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작년 가을 북한 핵실험 사태 이후 강연, 인터뷰 활동을 줄기차게 벌여온 김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한반도 평화와 관련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2007 대선과 관련해선 범여권의 통합 주문이다. 또 두 사안은 서로 시너지를 내는 폭발력을 지녔다. 홍업씨의 당락은 아버지의 이같은 행보에 결정타를 날릴 게 뻔했다.

박지원 실장의 호남 외출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무안 체류를 포함해 박 실장은 지난 20여일간 호남을 돌았다. 지난 5일 전주 방문을 시작으로 광주 5·18 묘역을 방문하고, 목포·신안을 거쳐 자신의 고향인 진도까지 전라남북도를 훑었다. 그리고 DJ의 고향 선거에 올인한 것.

'권력 세습'이라는 비난여론이 거셌던 홍업씨의 출마에 대해 박 실장은 "합법적인 공천이었다"고 말했고, 이권청탁 사건으로 실형을 살았던 비리 전력에 대해서도 "조작 날조된 사건으로 억울함이 있다"는 인식을 보였다.

"홍업씨 비리전력, 조작날조된 사건"

a 박 실장은  지난 11일부터 무안 지역 등에서 머물며 김홍업 후보를 측면지원했다. 그는 지역민들을 만나 "반갑습니다" "박지원 입니다"라며 인사를 나눴다.

박 실장은 지난 11일부터 무안 지역 등에서 머물며 김홍업 후보를 측면지원했다. 그는 지역민들을 만나 "반갑습니다" "박지원 입니다"라며 인사를 나눴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박 실장을 어렵게 만났다. 인터뷰는 한사코 피했다. 선거운동이 마무리될 즈음, 후보자 사무실에 들른 그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그가 진단한 호남 민심은 이랬다.

"호남 사람들은 대통령을 두 번(김대중·노무현) 배출했고, 역대 선거에 지원을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대통합을 이뤄서 대한민국이 바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정치에 대한 말할 자격이 없어서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정치인만 모르는 것을 국민들은 더 현명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여권은 또 여권대로 큰 통합을 해서 선의의 경쟁 벌여라, 그럼 국민이 선택할 것이다'라는 것이 굉장히 강하게 들렸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쪼개진 여권이 통합을 이루고, 한국 정치가 양당 구도로 가야 한다는 김 전 대통령의 주장과 닿아있는 얘기다.

당대당 통합이 어려우면 먼저 후보단일화를 하고 나중에 통합신당을 하면 된다는 식으로 김 전 대통령의 훈수 정치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지만, 박 실장은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정치개입을 하지 않으시니깐 나도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홍업씨 선거 지원 활동에 대해서는 "대통령 내외분을 끝까지 모시는 것이 제 소명이 아닌가, 인간적인 도리다"며 "복권이 안 되었기 때문에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내 이름대로 마음의 '지원'만 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후보자에게 시종일관 "유권자를 하늘처럼 생각하고 겸손한 자세로 선거운동을 해달라"는 점을 강조했다. 노구를 이끌고 세 번이나 지역에 내려온 이희호(84)씨가 마지막 지원유세를 마치고 차에 오르면서 남긴 말도 이와 같았다.

DJ, 끝날 것인가 계속될 것인가... 호남은 '말'이 없다

김홍업 캠프의 선거기획을 맡고 있는 한 인사는 "무안·신안 선거에 없는 세 가지"라며 '술' '방' '말'을 꼽았다.

선거운동에 '돈'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고, 서울서 지원차 내려온 인사들로 투숙할 여관'방'이 없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정작 현지 유권자들은 '말'이 없다. 김홍업 후보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이유을 속시원히 토해내지 않았다. '전략적 선택'에 익숙한 호남인 특유의 정서일까? DJ측에서 '겸손 또 겸손'을 강조하는 이유다.

무안·신안의 선거 결과는 DJ에 대한 호남의 충성도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 같다.

a <font color=a77a2>호남은 아직 말이 없다 24일 전남 무안군 무안읍 장터에서 무안·신안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유세를 무심히 듣고 있다.

호남은 아직 말이 없다 24일 전남 무안군 무안읍 장터에서 무안·신안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유세를 무심히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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