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를 털고 일어 난 '순희 엄마'의 최근 모습오창경
"일거리 있으면 나도 불러. 이제 일 해도 된대."
어눌한 발음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2년 전(2005년 8월) '순희 엄마, 힘내세요!'라는 기사로 소개했던 우리 동네 김영자(51) 여사입니다.
"정말이야? 의사 선생님이 확실히 그렇게 말했어? 정말 아픈 데 없어?"
우리 윗집에 사는 순희 엄마에게 병마가 찾아 온 것은 2년 전이었습니다. 단순한 감기 몸살인줄 알았는데 '백혈병'이라는 청천병력 같은 진단이 내려지고, 순희 엄마는 무균실에서 투병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쇄골 아래 구멍을 뚫어 주사약을 넣고, 핏기 없는 얼굴로 투명 비닐커튼 안쪽에 갇혀 투병하던 순희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2년 만에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해 돌아온 것입니다.
순희 엄마는 청각 장애가 있는 장애인입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몸짓과 어눌한 발음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그녀에게 불치에 가까운 병마까지 찾아온 현실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습니다. 장애인으로서 백혈병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병마라고 여겼습니다.
일반인들에게 '백혈병'이라는 병은, 멜로드라마에서 많이 본 탓인지 걸리면 반드시 죽는 병으로 인식되어 있는 치명적인 병입니다. 때문에 순희 엄마의 생환은 달리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돌아온 '순희 엄마'
20여년 전 여고 시절에 읽었던 로맨스 소설이 생각납니다. 삼각관계로 고민하던 여주인공이 어느 날 불치병에 걸리고 그로 인해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얻지만, 결국 우아(?)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그 여자의 병 이름도 백혈병이었습니다.
감성이 고조되고 심성이 여린 사춘기에 누구나 한 번쯤 백혈병에 걸려 주변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죽고 싶다는 상상을 했을 것입니다. 작가들이 대체로 드라마나 소설의 클라이맥스에서 백혈병이라는 소재를 자주 차용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백혈병이 다른 병에 비해 환자의 상태가 깨끗하고, 골수가 죽어 핏기가 없는 모습으로 비춰져 동정심을 유발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0여년 전에는 백혈병이 치료 방법이 없어 걸리면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불치병이었지만 오늘날의 현대 의학은 '골수 이식'이라는 치료법을 찾아냈습니다. 면역력을 잃고 암세포에 의해 죽어가는 골수 대신 새 골수를 이식시키는 방법입니다. 백혈병 환자의 골수와 건강한 기증자의 골수가 거부 반응 없이 잘 맞기만 하면 백혈병은 완치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어릴 적 미국에 입양되었던 한국의 입양아가 청년이 되어 백혈병에 걸렸고 고국에서 그에게 맞는 골수 기증자를 찾아서 완쾌되었다는 미담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