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 부족 마을의 입구김성호
김광석과 같이 떠나는 여행은 한 때는 식민지배에 몸서리쳤지만, 지금은 내전과 빈곤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미래의 땅들이다.
내가 이미 여행했던 에티오피아는 2차 세계대전 이전 한때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았고, 역시 에리트레아와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하는 소말릴란드는 이탈리아령으로, 제일라(세일락) 항구의 소말릴란드는 영국령, 지부티 항구는 프랑스령 소말릴란드로 이미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아프리카의 뿔' 지역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이른바 블랙아프리카 지역도 제국주의의 상처가 할퀴고 간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미 1차 세계대전 이전 케냐와 우간다는 영국령 동아프리카로 넘어갔고, 탄자니아와 르완다, 부룬디는 독일령 동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은 벨기에령 콩고, 모잠비크는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가 되었다.
말라위(옛 니아살란드)와 잠비아(북로디지아), 짐바브웨(남로디지아), 보츠와나(베추아날란드)는 영국령 중앙아프리카로, 남아공(남아공연방)은 영국령 남아프리카로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었다. 나미비아는 독일령 서남아프리카, 인도양의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령으로 넘어갔다.
1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가짜 주인끼리 바뀌었을 뿐 아프리카에 독립은 찾아오지 않았다. 독일의 패배로 독일이 갖고 있던 아프리카 영토만 영국 등 연합국 소유로 바뀌었을 뿐이다. 독일령 동아프리카였던 탄자니아는 영국령으로 편입되고, 르완다와 부룬디는 벨기에의 위임통치로, 독일령 서남아프리카였던 나미비아는 남아공연방의 위임 통치로 넘어갔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한참이 흘러 1960년 마다가스카르에 이어 대륙에서는 탄자니아가 1961년 독립을 찾고, 마지막으로 1990년 나미비아가 완전 독립을 하게 된다. 내가 여행하는 이들 나라 중 에티오피아와 케냐, 탄자니아 등은 소말리아, 부룬디와 함께 세계의 따뜻한 손길을 가장 필요로 하는 지역이다. 가뭄과 내전으로 굶어죽는 어린아이들이 속출하는 최대 기아국가이다.
아프리카 언어에 남아 있는 아픈 상처들
그들이 쓰는 공식 언어에도 식민지배의 흔적이 살아 있다. 에티오피아만 고유의 암하릭어를 쓰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케냐와 우간다, 말라위, 짐바브웨, 잠비아, 보츠와나, 남아공, 나미비아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프랑스어권인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르완다는 프랑스어,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모잠비크는 포르투갈어, 프랑스 식민지였던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자 잡았다.
다만 탄자니아와 케냐만이 영어와 함께 자신들의 전통 말인 스와힐리어를 사용하지만, 문자 표기에는 영어 알파벳을 빌려 쓰고 있다. 르완다와 말라위, 보츠와나도 자신들의 전통적인 말을 공용어로 함께 사용하나 영어가 이미 압도적인 말이 되어 버렸다. 식민지배의 흔적은 이처럼 언어를 통해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언어라는 것은 그 자체가 고유의 전통이면서 문화인데, 아프리카의 고유 언어는 사라지고 영어와 프랑스어, 포르투갈어가 공용어가 되어 버린 아픈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참 막막하다.
대하장편소설 <혼불>을 쓴 작가 최명희는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고 모국어는 모국의 혼"이라고 말했다. 가까운 근세에도 만주족은 만주어를 잃으면서 사실상 역사에서 사라져버렸고, 이스라엘이 나라가 망한 뒤 수천 년이 흐른 뒤에도 단일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유대교라는 종교 뿐 아니라 헤브라이어라는 자신들의 언어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정체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세계화시대에 영어가 국제어로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용어를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물론 아프리카가 자신의 말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가 없다보니 식민지 지배 이전에 통일된 언어체계를 갖지 못한 데다, 각각의 말을 사용하는 수십 개의 부족으로 이뤄지다보니 하나의 부족의 말을 공용어로 사용하기 어려운 현실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아프리카에서 고유의 언어가 아닌 미국과 프랑스에서 들을 수 있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들어야 하는 것은 여행 내내 가장 가슴아픈 일중의 하나였다.
나는 김광석과 함께 오늘 저녁 우간다를 거쳐 체 게바라를 만나러 콩고로 간다. 콩고에서부터 다시 남아공과 나미비아, 마다가스카르까지 우리 셋이서 함께 하는 여행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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