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88회

등록 2007.05.04 08:24수정 2007.05.04 08:24
0
원고료로 응원
그것은 능효봉의 발이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정신을 잃으며 피를 토해냈다.

터덕-----!


마치 썩은 나무토막이 떨어지듯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는데 이미 칠공에서 피를 흘리고 있어 살 길은 없어 보였다. 이미 죽었는지도 몰랐다.

타타타탁----!

순간 갑자기 무언가 부닥치는 소리가 들리며 능효봉은 강렬한 불빛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린 단혁의 수하들이 염화호목(炎火虎目)이라고 불리는 철기문의 백철등(白鐵燈)을 켠 것이다.

촤르르르----

동시에 백호각 안에서 설중행을 공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은사절편(銀絲節鞭)이 날아오고 있었다. 같이 움직였던 네 명 중 두 명을 먼저 처리한 것이 다행이었다. 이미 백호각 안에서 본 적이 있었고 단단히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백철등이 켜지자 어둠에 익숙해진 동공은 눈을 태울 듯한 백광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설중행이 왜 그리 행동에 제약을 받고 당황했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실내가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능효봉은 신형을 비틀며 사각으로 솟구쳐 올랐다. 백철등의 범위 밖으로 움직이는 것이 우선이었다. 빛에 노출되어 있으면 공격해 오는 것을 파악하기 힘들고, 반격을 가하기 어려워진다.

파파팍----!


은사절편은 능효봉이 밟고 있던 나무가 폭발하듯 산산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되었다. 이제 남은 인물은 모두 여섯이었고, 능효봉은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능효봉이 나무를 이리저리 박차며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은 공격해 온 두 명을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능효봉의 신형이 어둠을 가르며 좌측에 있는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를 타고 올랐다가 사선을 그으며 자리를 백철등을 쥐고 있는 사내를 향해 내리 꽂혔다.

"헛!"

너무나 빠른 능효봉의 움직임에 사내가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빠르게 백철등을 흔들며 능효봉의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동시에 능효봉을 향해 필사적으로 자오민심정을 뿌려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서 그것도 능효봉을 노리고 뿌려내는 것이 아니라 능효봉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는 듯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뿌려대는 것 같았다.

능효봉은 신형을 내리꽂으면서도 상대의 반격을 예상했는지 방향을 옆으로 약간 비틀어 회전을 하면서 수십 개의 자오민심정을 파하는가 싶더니 회전되어 오는 자오민심정 두 개를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잡았다. 날아오는 암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잡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어서 사내의 얼굴에 절망스런 빛이 떠올랐다.

더구나 능효봉을 노리고 날린 은사절편을 발로 튕기며 그 탄력으로 이미 사내의 눈앞으로 능효봉의 발바닥이 크게 확대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이놈---!"

허나 그 순간이었다. 노갈이 터지며 새하얀 검날이 백철등의 불빛을 반사시키며 능효봉의 등을 긋고 있었다. 능효봉은 자신을 공격해오는 검은 쾌속하고 날카로웠을 뿐 아니라 직감적으로 위험하다고 느꼈다.

'단혁인가? 제법 검을 쓸 줄 아는 자로군.'

혈간으로부터 직접 무공을 전수받은 단혁은 혈간의 독문비기인 선인천간(仙人天竿)을 완벽하게 검으로 변화시켜 펼칠 수 있는 자였다. 허나 능효봉은 몸을 회전시키면서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고 자신이 노리는 사내에게 바싹 다가들면서 사내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동시에 사내를 잡아끌면서 자신의 몸은 사내 뒤로 숨는 형상이 되면서 재차 공격해오던 단혁의 검에 방패막이로 사용한 것이다.

"억----!"

단혁은 급히 검을 회수했지만 이미 능효봉이 사내를 앞으로 밀었기 때문에 완벽히 회수하지는 못해 그의 검은 수하의 허리를 베고 지나갔고, 그 순간 능효봉의 왼손에서는 자오민심정 두 대가 단혁의 미간을 향해 쏘아졌다.

"이런 죽일 놈---!"

정말 적이 아니라면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몸놀림이었다. 자신의 검에 베인 수하는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는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잔혁은 검을 비스듬히 세우며 자오민심정을 쳐냄과 동시에 재차 순식간에 삼검을 쳐갔는데, 능효봉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 몸을 가볍게 위로 띄우며 아직까지 백철등을 쥐고 있는 다른 사내를 향해 신형을 날리려 했다.

퍼--펑---!

그 때였다. 능효봉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등에서 느껴지는 위험한 기운에 몸을 급히 뒤틀며 옆으로 비껴났지만 왼쪽어깨 부위에 맹렬한 고통이 밀려들며 정신이 아득해왔다. 그의 신형이 잠시 방향을 잃고 실 끊어진 연처럼 나무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기혈이 들끓어 오르면서 입안 가득 비릿한 핏물이 고였다.

'어떤 놈이?'

그곳에 누군가 있으리라곤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기척도 느끼지 못한 터였다. 허나 누군지 확인해 볼 틈이 없었다. 재차 위맹한 장력이 공기를 가르며 자신의 몸을 휘감아 오고 있었다. 그는 핏물을 뱉어내며 급히 나무 등걸을 박차며 몸을 뒤집으면서 옆으로 튕겨났다. 그의 동공으로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명의 황의 노인이 자신을 향해 맹렬하게 짓쳐오는 것이 들어왔다.

'철기문의 장로(長老)들이다!'

복장이나 연배가 얼마 전 혈간을 공격할 때 막아섰던 세 명의 장로들과 비슷했다. 철기문에 다섯 명의 장로가 있다더니 남은 두 명이 이번에 옥청문과 함께 들어온 모양이었다. 실수는 능효봉이 그들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두 장로는 자신을 따라온 것이 아니었다. 아마 멀찍이 자신이 향하는 방향의 앞쪽에서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자 했을 것이다. 능효봉의 의도도 파악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두 명의 수하가 죽어가는 데도 도움을 주지 않다가 결정적으로 공격권에 들어오자 공격한 것을 보면 능효봉을 절대 무시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도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이 넘보지 못할 혈간을 시해한 자들이다. 혈간이 이미 암습을 받아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또한 무리를 지어 기습을 했던 간에 자신들의 동료인 장로 세 명마저 모두 목숨을 앗아간 상대다. 혈간과 세 장로를 피살하는데 있어 아무리 운이 좋다 해도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다.

그들은 단 한 번의 기회로 능효봉의 숨통을 끊고자 했다. 최소한 중상이라도 입히고 맹렬하게 몰아붙이면 숨통을 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숨을 죽이고 결정적인 순간을 노렸던 것이다. 무위도 무시할 수 없지만 역시 노회한 경험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능효봉이 쌍장을 급히 뻗었다. 피할 시간이 없었다. 기혈이 잠시 뒤집히기는 했지만 정통으로 맞지는 않아서인지 그리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퍼--펑----!

장력이 허공에서 맞부딪치며 어깨까지 묵중한 충격이 느껴졌다. 두 장로의 장력을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자세나 내력에 있어 불리했다. 이미 일장을 맞은 왼쪽어깨에 더 큰 충격이 밀려들어 왼팔이 축 늘어졌다.

허나 능효봉은 급작스럽게 장력의 탄력을 이용해 뒤로 주륵 물러나더니 땅바닥을 박차며 방향을 틀었다. 마치 도망가는 듯싶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한동훈 표정 묻자 "해가 져서...", 이어진 기자들의 탄성 한동훈 표정 묻자 "해가 져서...", 이어진 기자들의 탄성
  3. 3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4. 4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5. 5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