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한미FTA, '한미무역협정'이라 부르자!

등록 2007.05.04 21:20수정 2007.05.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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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고, 알고나면 빠져든다는 'FTA' 홍보 홈페이지. '에프티에이가 뭐죠?' 묻는다면 어떻게 답을 할까.
아는 만큼 보이고, 알고나면 빠져든다는 'FTA' 홍보 홈페이지. '에프티에이가 뭐죠?' 묻는다면 어떻게 답을 할까.yesfta.or.kr

어제(3일)와 그제(2일), 사람들을 만나는 곳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화두였다.

그저께 한 식당에서 아는 분과 저녁을 먹고 있는데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미FTA'에 대해 열을 내며 토론을 하고 있었다.

"한미에프티에이는 우리나라 경제에 도움이 된다니까 그러네."
"도움은 무슨 도움? 반도체 살리고 농촌 죽이면 그게 도움이냐? 에프티에이는 허구야."

이들의 대화는 우리나라의 손익계산을 놓고 서로 주장을 거듭하며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 때였다.

"한미에프티에이가 뭐에요? 뭔데 그렇게 시끌시끌해요?"

구석에서 홀로 식사를 하던 사람의 질문에는 소란 때문에 짜증이 섞인 듯했다. 남루한 옷차림이나 다소 궁색한 외모로 봐서 막일을 하는 노동자처럼 보였던 이 사람의 질문은 순간 회사원들의 대화를 끊었다. 잠시 어색한 정적이 감돈 뒤, 한 회사원이 답변했다.

"예, 그게 한미에프티에이는 한국과 미국의 무역 협상을 말하는데요, 프리 트레이드(Free Trade)…(동료들을 쳐다보며) 에이는 뭐였지?”"
"어그리먼트(Agreement)!"


"아, 그러니까 그 에프티에이가 뭐냐고요?"
"프리 트레이드 어그리먼트, 자유무역협정이라고 하는데, 이 협정이 우리나라에 좋은지 나쁜지 따지는 중이에요."

어제는 여러 사람과 함께 회의를 마치고 간단한 뒤풀이를 하는 도중 한미FTA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한미에프티에이에 대해 정태인 전 청와대비서관이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권투를 하는데 헤비급인 미국과 경량급인 한국이 글러브를 벗고 시합을 한다 이거에요. 근데 이번에는 중량급인 EU가 잘됐다며 또 맨주먹으로 우리와 붙는다는 겁니다."
"세계무역 흐름상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요? 쇄국무역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프티에이 안 하더라도 이미 우리는 맞을 만큼 맞았어요. 이것저것 자유무역 안 하는 건 별로 없어요. 그런데 맨 주먹으로 세계최강인 미국과 시합이 되겠냐 이거죠."

한참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을 때, 문득 그제의 일이 생각이 나서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렇게 제안했다.

"에프티에이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자유무역협정'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요? 에프티에이는 5음절이고, 자유무역협정은 6음절인데 굳이 영문약자를 쓸 필요가 있나 싶어요. 신문에서야 지면제약 때문에 여섯 글자 대신 세 글자인 FTA로 쓸 수 있지만, 방송이나 시위현장에서는 자유무역협정을 써야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을 거예요."

에프티에이는 신자유주의 전략이라며 강하게 비판하던 한 분은 내 말을 이렇게 받았다.

"영문 그대로 자유무역협정이 맞기는 하지만, 이 '자유'라는 게 상당히 좋게 느껴진다는 문제가 있어요. 자유~자유~봐요, 좋잖아요.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한데, 자유 대신 다른 말을 써야 될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 협정 내용을 떠나서 'FTA' 자체를 모르던 사람들을 종종 봐 왔다. '프리 트레이드 어그리먼트'라는 단어를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미국이 자신들의 언어인 영어의 머리글자로 FTA를 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굳이 미국식으로 머리글자를 쓸 필요가 있을까. 더군다나 한국과 미국의 국익이 걸린 협정인데, 미국의 표현을 따라가는 데서부터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한미에프티에이 대신 '한미무역협정'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한미무역협정'이 잘못돼 우리나라가 손해를 본다네요"라고 하면 식당에서 질문했던 그 사람이나, 논에서 벼를 심고 계신 까막눈의 어르신들도 단번에 알아들으시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언론에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을 DJ, 김영삼을 YS로 하는 것은 한 글자를 줄이기는 했지만, 발음을 해 보면 와이에스는 김영삼보다 1음절이 길고, 디제이는 김대중과 음절이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미에프티에이 말고 한미무역협정을 쓰는 게 낫지 싶다. 자유는 강제가 아닌 바에야 의미가 없으니 빼도 충분하다. 단어가 생각을 규정한다는데, 쉬운 단어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언론에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을 DJ, 김영삼을 YS로 하는 것은 한 글자를 줄이기는 했지만, 발음을 해 보면 와이에스는 김영삼보다 1음절이 길고, 디제이는 김대중과 음절이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미에프티에이 말고 한미무역협정을 쓰는 게 낫지 싶다. 자유는 강제가 아닌 바에야 의미가 없으니 빼도 충분하다. 단어가 생각을 규정한다는데, 쉬운 단어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미FTA #한미자유무역협정 #한미무역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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