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오영교 총장의 대학구조조정 논란

독문·북한학과 폐과 등 인원 축소 발표...해당 학과 교수·학생 반발

등록 2007.05.10 09:22수정 2007.05.1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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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4월 25일 독어독문학과 학생들은 오영교 총장의 '21세기 리더십' 특강이 열린 동국대 문과대 건물 앞에서 '폐과 반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4월 25일 독어독문학과 학생들은 오영교 총장의 '21세기 리더십' 특강이 열린 동국대 문과대 건물 앞에서 '폐과 반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동국대 독어독문학과

동국대학교가 시끄럽다.

논란의 중심에는 대한무역공사 사장과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내고 올해 최초로 외부영입인사로 동국대 총장에 취임한 오영교 총장과 그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학제개편이 있다.

'개혁전도사'로 불리며 기업형 CEO에서 총장으로 변신한 오 총장은 취임일성으로 "대학을 기업보다 더 효율적이고 스피디한 경영을 실천하는 곳"으로 바꾸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경쟁과 효율 우선'이라는 학교운영원칙도 강조했다.

그에 따라 추진한 연봉제와 성과급제 시행, 팀제개편, 단과대 분권화 추진 등의 구체적 정책들은 각종 경제일간지에서 대학경쟁력강화 방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오 총장의 구상을 종합해 동국대 발전방안으로 제출된 것이 바로 '108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동국대 교무팀은 '2008년 학제개편 및 정원감축안'을 기획해 4월 20일부터 학제개편방안과 정원감축 등을 대상 학과에 통보했다.

'2008년 학제개편 및 정원감축안'에 따르면 독어독문학과와 북한학과 폐과, 철학과와 윤리문화학과 통폐합 후 정원감축, 사회학과 정원감축 등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예고돼 있다.

일방적 학제개편에 반발하는 동국대 구성원들

a 학교 당국의 문과대 학제개편 기획안.

학교 당국의 문과대 학제개편 기획안.

a 사회과학대 학제개편 자료.

사회과학대 학제개편 자료.

그러나 교원 인사 '개혁' 후 오 총장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학제개편안은 학제 개편 대상학과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번 학제 개편안에서 폐과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독어독문학과의 경우, 기획안을 통보받은 후 학과장 교수가 총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했고, 과 학생회에서 1인 시위와 졸업동문들의 총장실 항의방문 등을 통해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

독어독문학과는 "교무팀에서 폐과기획안을 낼 때까지 학과 구성원과 논의한 적이 없다는 절차적 문제와 함께, 폐과 근거로 학교에서 제시하고 있는 전과율과 재학률 등의 근거에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이번 폐과 기획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독어독문학과 학과장인 황혜인 교수는 과 학생총회 자리에서 "독문과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주한독일대사관과 논의했으며 주한독일대사관에서 불교 연구의 유럽 지역 전파, 독문과 학생들의 어학연수 및 독일 상공 관련 단체 취업 지원 등 4가지 사항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이러한 학과의 노력에 주목하지 않은 채, 학교당국이 사회적 수요만을 잣대로 독문과를 폐지하려는 것은 인문학 죽이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독일어 배우러 왔는데 2달 만에 폐과라니"
[인터뷰] 독어독문학과 07학번 장미정씨

▲ 장미정씨

- 이번 학제개편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피 말리는 고3 입시 경쟁을 뚫고 들어온 동국대에서 단기적인 지원금에 눈이 멀어 학문적 다양성을 파괴하고 독어독문학과 같은 기초인문학 관련 학과를 폐과하려는 것에 경악했다.

무엇보다 기획안을 만들 때까지 구성원들과 한 차례도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 해당학과 학생으로서 항의 행동을 하고 있다.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무엇보다 학제개편 추진과정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학생들이 많다. 물론 너도나도 경쟁력을 외치는 사회에서 돈이 안 되는 학문이 점점 설자리를 잃는 것은 어찌 보면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동국대에 들어왔는데 입학한지 2달 만에 내 의사와 상관없이 폐과 위기에 처했다고 이야기하면, 누구나 일방적인 학제개편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대학구조조정의 비정함이자 비민주성이라고 생각한다." / 이동철
학생들도 이번 학제개편안과 관련, 학교 측의 일방적인 태도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5월 4일 총학생회가 주최한 '학제개편에 대한 자유토론회'에서 학생대표들은 "오 총장 취임 초기에 걸었던 기대가 이번 학제개편 과정의 비민주성으로 인해 실망으로 바뀌었다"며 "구성원과 합의하지 않고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이번 학제개편은 독선과 아집의 산물"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학제개편의 직접적 대상이 되는 문과대 교수들 역시 반발하고 있다. 임호일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학내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세칭 인기학과로 몰릴 수밖에 없는 동국대의 불합리한 전과 제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전과율만 놓고 특정 학과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동국대학교 교수회(회장: 이종옥 정보관리학과 교수)도 기초학문과 대학의 연구기능을 경시하고 취업과 경쟁만을 위한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쟁과 효율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하겠다는 오 총장의 학제개편 의지는 확고하다. 4월 25일 동국대에서 열린 '21세기 리더십' 특강에서 오 총장은 "사회적으로 수요가 적은 비인기학과를 유지하면 상대적으로 기회비용 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학제개편은 불가피하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한 바 있다.

동국대 학제개편, 대학구조조정의 가늠자

a '21세기 리더십' 특강에서 학제개편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던 오 총장이 강의를 마치고 자신의 차에 올라타는 모습.

'21세기 리더십' 특강에서 학제개편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던 오 총장이 강의를 마치고 자신의 차에 올라타는 모습. ⓒ 동국대 독어독문학과

동국대는 지난해 교육부에서 특성화 구조조정 선도대학으로 선정돼 73억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이에 따라 입학정원을 110명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실시하도록 돼 있었다. 즉 '지원금에 따른 정원감축 의무'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학교는 5월 30일까지 정원감축 대상 110명을 확정해 교육부에 보고하게 돼 있는 것.

문제는 구조조정에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다. 오 총장이 선택한 전략은 시장이 요구하는 인력 배출과 연구가 가능한 경영 중심의 학문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비인기학과로 수요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드는 철학과, 독문과, 사회학 등 기초인문사회과학을 배제하는 전략이다.

그뿐 아니다. 오 총장이 학제개편안에서 내년부터 실시하겠다고 밝힌 트랙제(일종의 심화된 학부제로, 학생들에게 학부로 입학해서 본인이 선택한 영역을 수강하게 하는 방안)도 문제다. 전체 학문영역에서 트랙제를 실시하면, 교수의 신분 보장이 어려워지고, 학생 자치 활동 전반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학제개편안에 따르면, 학교 당국은 장기적으로 2단계 BK21 사업을 추진할 목적으로 올해뿐 아니라 내년에도 정원을 150명가량 더 감축하는 등 2012년까지 500명 정도 정원을 줄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학교당국은 해당 학과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은 물론 사전협의도 진행하지 않았다. 학교당국에서 자체적으로 세운 기획안이라는 형태로, 교육부 보고 시점을 한 달여 남겨두고 해당학과에 통보했을 뿐이다.

독어독문학과 학생회는 졸업한 동문들과 함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학제개편 철회, 학과 폐지 반대' 서명운동과 항의 시위 등을 벌이고 있다. 또한 문과대학과 사회과학대학은 교수총회를 열어 학교 당국의 학제개편안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조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독어독문학과 학생들뿐 아니라 각 단위 학생회에서 이번 학제개편의 비민주성을 지적하며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이들은 학교 내부적으로 학제개편안이 최종적으로 조정·결정되는 5월 14일 즈음 여론화 작업 등을 통해 학제개편을 적극적으로 저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김가을 기자는 동국대 독어독문학과 재학생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동철·김가을 기자는 동국대 독어독문학과 재학생입니다.
#동국대 #대학구조조정 #오영교 #독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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