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창살을 통해 방문객 일행을 바라보는 소녀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양주승
난민촌 아이들은 방문객들이 지나가도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할 뿐 먹을 것과 돈을 달라며 따라붙는 아이들은 결코 볼 수 없었다. 과거 6·25 한국전쟁 이후 우리 아이들이 미군들에게 초콜릿과 껌을 달라며 따라다녔던 것을 생갹하면 비교되는 상황이다.
이곳의 한 가정은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 손자 등 9식구가 살고 있었는데 아들은 외출했는지 보이지 않고 여덟 식구가 허리도 펼 수 없는 2층 방에 앉아서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난민촌이라고 해서 항상 찌든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루에 앉아 열대 야자열매를 잘게 썰어 가족과 함께 먹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IMG@8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말이 학교이지 열대야자나무 잎으로 가린 지붕,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창문, 삐걱거리는 마루바닥에서 1학년부터 전 학년까지의 아이들이 집단으로 버마어, 수학, 영어 등 교육을 받고 있다.
방문단은 2005년부터 올해까지 난민촌 안에 있는 야뭉나 유치원을 세 번째 방문했다. 2000년에 설립된 야뭉나 유치원은 난민촌에 거주하는 카렌족의 5세 미만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지난해 홍수로 교실이 잠겨 파손된 이후 영국의 한 인권단체의 지원으로 인근 땅에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50여평 남짓한 운동장도 새로 만들고 교실도 튼튼하게 새로 지었다.
정치범 자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고아들을 위한 학교 등 다양
난민촌 밖, 메솟시에 있는 일부 학교는 여건이 조금 낳은 곳도 있다. 메솟시 변두리주택가에 위치한 세타나 유치원은 2003년 8월에 개원했으며 우포초 교장을 포함한 4명의 자원봉사자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유치원의 특징은 모든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특징인데 주로 버마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는 자녀들이 다니고 있다.
최근 메솟시 주택가 인근에 중·고등 교육을 위한 'MINMAHAW'라는 학교가 캐나다에서 온 두 명의 외국인 자원봉사자에 의해 설립·운영되고 있었는데 여타 단체에서 운영하는 학교보다 시설과 환경면에서 쾌적했지만 가장 힘든 것은 학교 경영에 필요한 예산으로 방문단에게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가장 눈여겨 볼만 한 학교가 메솟시 외각에 있는 학교다. 버마에서 40여년간 고등학교 교사를 지낸 카잉 우 마웅씨가 버마를 탈출해 전쟁고아와 갈 곳이 없는 무의탁 학생들을 위해 1994년 BHSOH학교를 건립했다. 자원봉사자를 포함한 13명의 교사가 5세부터 21살까지의 어린이와 청소년 200여명을 가르치고 있다.
@IMG@9카잉우 마웅 교장은 "이들 학생 중 고아와 무의탁 학생 등 40여명은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지원해오던 단체의 후원이 끊겨 금년 5월 이후에는 운영자금이 없다"며 "국제 NGO 단체에 후원을 요청했지만 반가운 소식은 없다"고 말하면서 부천에서 온 방문단에게 현황을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번 방문단이 찾아간 학교는 메솟 난민촌에 있는 야뭉나 유치원, 난민촌 밖 메솟시에 있는 세타나, BLSO, 뉴데이, KED 초등학교, 메타오 고등학교, MINMAHAW 중·고등학교, BHSOH 학교 등 총 8개 학교였으며 이중 야뭉나 유치원과 세타나, 뉴데이 초등학교에는 후원금을, BLSO, KED 초등학교에는 우물 설치, BHSOH 학교에는 학용품 등을 전달했다.
난민촌 5가구 25명 국제이주기구단체가 호주로 데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