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200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서민생활 안정과 양극화 문제 해결 등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식료품점을 30여년간 운영해온 이종순씨가 TV 생중계화면를 통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래도 지난한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구체적'은 아니더라도 '경향적'으로 가치와 대안에 기초한 선택기준이 있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진보'와 '보수'가 그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제도권내 정치를 통해서 전면적으로 반영되고 구체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진보'는 대내적으로 소외계층과 서민의 사회적 권리를 더욱 중시하고, 복지를 지향하며, 대외적으로 북한과의 화해를 통한 한반도 평화를 우선시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리고 '보수'는 대내적으로는 부의 집중에 관대하며 경쟁을 중시하고 성장을 우선시하며, 대외적으로 북한과의 화해보다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이런 경향적인 두가지 방향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함으로서 '진보'적 방향에 대한 동의를 표출한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동안 이런 국민의 민주적 선택을 철저하게 무시함으로서 그나마 남아있던 '경향적' 선택 기준마저 철저히 붕괴시켰다.
예산 좀 증가했다고 복지정부? 미안하다, 틀렸다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대통령은 그래도 복지예산을 몇 퍼센트 늘렸다면서 이른바 '복지정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기준에서는 영국에서 복지국가의 기반을 무너뜨렸다고 하는 대처정부도 '복지정부'가 될 수 있다. 대처 정부 아래에서도 어쨌든 복지예산은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처 정부 때도 복지예산이 증가했던 것은 실업 증가, 고령화, 전통가족 해체 등등으로 증가하는 사회적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핵심은 사회적 요구에 비해 예산 증가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노무현 정부도 복지정부가 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급속하게 진행되는 양극화·고령화· 비정규직 증가에 비해 그나마 증가했다는 복지예산의 규모는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다. 급증하는 사회적 요구에 비해 초라한 복지예산은 국민의 고통의 총량이 증가하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획기적 예산 증대가 어려웠다면 어떤 정책적 방향전환이라도 이루어 냈을까?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복지 정책'이란 고령화에 대한 유일한 대책인 국민연금을 더욱 깎고 국민의 권리여야 할 의료는 더욱 시장화시키는 것이었다. 복지정부라고 하기에는 낯부끄러운 것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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