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같은 당 후보 맞아?

[정치 톺아보기 155] 분당 위기의 한나라당, '시대정신' 대 '정체성'의 대결

등록 2007.05.10 17:35수정 2007.05.11 08:57
0
원고료로 응원
a <FONT COLOR=A77A2>동상이몽 지난 4일 오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주재로 열린 간담회에서 만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의원. 당 화합과 개혁 방안을 논의하자는 취지였지만, 두 예비주자 간 힘겨루기로 경선 룰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동상이몽 지난 4일 오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주재로 열린 간담회에서 만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의원. 당 화합과 개혁 방안을 논의하자는 취지였지만, 두 예비주자 간 힘겨루기로 경선 룰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이 경선을 치르기도 전에 '게임의 룰'을 정하는 문제 때문에 분당 위기로 치닫고 있다.

9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전격적으로 내놓은 중재안을 박근혜 전 대표가 거부함에 따라 분당의 '시한폭탄'은 이미 시계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론이다.강재섭 대표는 중재 내용을 담은 당헌·당규 개정안을 15일 상임전국위원회(79명)와 21일 전국위원회(900여명) 표결에 붙이기로 했다. 사실상의 '예비경선'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강재섭 중재안은 원칙을 저버린 강재섭 개인 의견'이라는 자세인 만큼 중재안이 표결에 붙여질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 후보는 왜 이처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것일까. 그리고 두 후보 간의 기 싸움은 끝내 어느 한쪽의 독자출마와 분당으로 치닫는 것일까.

예선이 곧 본선?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후보들

두 후보가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것은 '예선이 곧 본선'이라는 대선 승리에 대한 낙관주의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의 정치구도라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 가운데 누가 나와도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쪽으로 점쳐진다. 게다가 뚜렷한 후보군을 형성하지 못한 채 친노-비노-반한으로 사분오열된 이른바 범여권 진영이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으로 단일대오를 갖출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니 이명박 전 시장이건 박근혜 전 대표건 각자 '딴 마음'을 품을 수 있다. 특히 '본선 경쟁력'과 지지율에서 앞선 이 전 시장에겐 언제든지 독자출마를 결행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박 전 대표 또한 당이 중재안 표결을 강행해 중재안이 통과될 경우 '원칙'과 '정체성'을 내세워 당을 뛰쳐나갈 수 있다.

물론 파국이 뻔히 예상되는 표 대결이 진행되기 전에 양측이 타협할 가능성도 있다.


박 전 대표에 비해 당에 대한 기여도가 낮은 이 전 시장으로서는 중재안보다 상대적으로 더 자신에게 불리한 현행 규칙을 전격 수용해 당을 구한다는 명분을 쌓을 수 있다. 박 전 대표 또한 자신에게 불리한 '강재섭 중재안'을 수용함으로써 구당의 명분과 통큰 정치인의 풍모를 과시할 수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중재안 수용으로 이번 갈등이 봉합되더라도, 8월 당내 경선까지는 언제든지 두 후보가 당을 떠날 개연성은 열려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두 후보가 같은 당에 있지만 어떤 면에선 같은 당 후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서로 정체성과 지지계층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같은 당 후보 맞아?

a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가 1월 3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연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대선전략' 세미나에 참석한 이상돈 중앙대 교수.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가 1월 3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연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대선전략' 세미나에 참석한 이상돈 중앙대 교수.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는 한나라당 관련 인사들의 자체 분석과 보수진영 인사들의 진단에 따른 것이다. 이는 두 후보의 사생결단의 배경에는 승리 낙관주의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정통 보수'를 표방하는 이상돈 교수(중앙대 법학)는 이미 지난 1월 '한나라당 정체성과 대선전략'을 주제로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두 후보의 대결구도를 이렇게 규정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박근혜 간의 경쟁은 '시대정신'과 '정체성'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두 사람의 경쟁이 정책 경쟁을 뛰어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나라당 혁신위원장으로서 경선 룰을 만든 홍준표 의원은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양대 진영의 갈등을 "'원칙을 지켜야 한다'(박근혜)는 주장과 '시대정신에 따르자'(이명박)는 주장이 무한 대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진단은 일맥상통한다.

"원칙을 허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중재안을 들어보겠지만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6일, 박근혜)"
"지도부가 시대정신을 반영해 합리적 중재안을 마련할 것으로 본다. (6일, 이명박)"

"원칙을 완전히 너덜너덜한 걸레처럼 만들어놓으면 누가 그것을 지키겠느냐. (8일, 박근혜)"
"한나라당이 어떻게 하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 하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중재안이) 시대정신에 맞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8일, 이명박)"


박 전 대표가 지키고자 하는 '원칙'은 곧 '정체성'이다. 그런 점에서 전면전으로 치닫는 두 후보 진영의 싸움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시대정신 대 정체성의 대결'이다.

'시대정신' 대 '정체성'

요즘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시대정신'이라는 용어는 '특정한 시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 공유된 정신'을 의미한다. 그런데 보수우파 진영의 인사들은 독일의 헤겔 철학을 통해 널리 알려진 '시대정신'이, 한국에서는 주로 진보 혹은 좌파 성향의 용어로 사용된다는 데 주목한다.

이 용어의 문제를 처음 제기한 이는 '정통보수'를 표방하는 지만원 박사다. 시스템미래당 총재이기도 한 지씨는 지난 1월 초 "손학규씨 등 몇몇 사람들이 즐겨 쓰는 용어인 '시대정신'이 좌익계 용어인데, 보수 논객마저 이 용어를 별다른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씨의 창 끝은 궁극적으로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이명박 후보를 겨냥하고 있다.

이 후보의 출생기록과 병역면제 과정에 의혹을 제기해 고소당한 지씨는 이 후보 측을 맞고소하면서 지난 4월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점쳐지는 이명박 전 시장이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병역과 출생 부분을 왜곡, 미화해 예비 유권자들을 기만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출판 및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상돈 교수 역시 진보 혹은 좌파와 중도를 표방하는 정치인들이 '시대정신'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아울러 이 교수는 "반면에 좌파들이 '정체성'이란 용어를 대단히 싫어한다"고 주장한다.

"'시대정신'에는 한 국가사회에 항구적 가치가 존재함을 부정하고, 시대에 따라 어떤 것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문화적 다양성 이론과 더불어 좌파들의 주요한 개념적 도구가 되었다. 특히 무신론에 서 있는 좌파들이 그들의 변화무쌍한 궤변을 합리화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로 '시대정신'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 많은 열린우리당 의원들, 안병직 교수 등 좌익출신 뉴라이트 집단, 그리고 한나라당의 이명박씨와 손학규씨가 '시대정신'이란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명박씨는 진보, 보수 같은 이념대립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정체성 역시 불필요한 논쟁이며, 미래가 중요하다고 누차 강조한 바 있다."


반면 이 교수는 박근혜 전 대표가 자유시민연대 초청 포럼에서 보수 성향을 확실히 하면서 정체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한 점을 예로 들어 "박씨는 이 연설을 계기로 이념과 정책 측면에서 이명박씨와 완전한 차별화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두 사람의 경쟁구도를 일찌감치 '시대정신'과 '정체성'의 경쟁으로 규정했다.

서로 다른 지지계층, 축복이자 재앙

a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 교수가 주장하듯, 공교롭게도 뉴라이트 재단의 기관지가 <시대정신>이고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과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등이 '시대정신'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기호일 뿐이지, 이념의 차이에 따른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박 전쟁'을 계기로 보수진영은 한나라당의 분열을 우려하는 가운데서도 사실상 특정 후보를 지지하며 '줄서기'를 하는 양상이다.

최근 경선 룰 싸움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상임의장 김진홍)이 강재섭 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해 이 후보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나, 정통보수 세력이 정통 보수정당 창당 가능성을 언급하며 은근히 박 후보에게 힘을 실어준 것 등이 그 사례다.

이처럼 두 후보는 서로 정체성이 다를 뿐만 아니라 각자의 핵심 지지계층도 중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점은 한나라당에게 '기회'일 뿐만 아니라 '위기'를 제공한다. 두 후보가 갈라서면 지지계층도 함께 갈라서기 때문이다.

김형준 교수(국민대 정치대학원)가 한나라당 산하 여의도연구소 자료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SWOT 분석(강점(Strength)·약점(Weakness)·기회(Opportunity)·위협(Threat) 요인을 규정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기법)을 보자.

이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강점'은 한나라당 절대 호감층과 절대 지지계층이 증가한 가운데 유력 대권후보들의 지지도가 60%를 상회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후보의 핵심 지지계층이 중첩되지 않기 때문에 결합·상승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반면 소속정당보다는 인물을 선호하기 때문에 대선후보 선택 시 정당효과가 약하다는 점이 한나라당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핵심 지지계층이 중첩되지 않는 점이 한나라당의 '강점'이자 '위기'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김 교수는 이같은 분석을 근거로 "두 후보의 지지계층이 중첩되지 않는 것은 한나라당에게 축복이자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두 후보의 핵심 지지계층이 중첩되지 않는다는 것은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면 결합·상승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반대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 분리·분열효과가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이명박 #정체성 #시대정신 #SWOT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