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등 중견연기자의 연기가 돋보인 드라마 <고맙습니다>MBC
단발적인 자극을 통해 대상을 울리고 웃기는 일은 차라리 쉽다. 하지만 진심으로 누군가를 마음에서 행복하게 만들거나 감동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맙습니다>(극본 이경희, 연출 이재동)는 가슴 아픈 눈물로 시작하여, 행복한 웃음으로 마무리하기까지 시종일관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진심'으로 시청자를 감동시키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가 지난 10일 방송에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오랜 가족이던 할아버지(신구 분)를 떠나보낸 영신(공효진 분)과 봄(서신애 분)은 오랜 갈등을 풀고 주변 사람들과 화해하며, 결말에서 기서(장혁 분)와의 재회를 통하여 행복한 새출발을 기약한다.
지난 3월 21일 첫 방송된 <고맙습니다>는 보통 사람들의 시련과 상처, 극복의 과정을 다룬 따뜻한 휴먼드라마로 모처럼 안방극장에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재벌 2세나 조폭, 출생의 비밀, 불륜, 삼각관계 등 식상하고 과장된 설정들이 범람하는 기존 트렌드드라마의 흥행공식에 의존하지 않고도, 우리 시대 어딘가에 존재하는 소외된 이웃들의 사랑이야기로 눈길을 끌었다.
의료사고나 AIDS, 치매노인, 미혼모 등 자칫 민감하게 그려질 수 있는 설정과 캐릭터들에도, 드라마는 선정적인 구성을 최대한 배제한 채 절제된 상황묘사와 따뜻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감싸 안았다.
드라마는 인물들의 상처를 인위적인 눈물을 짜내거나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소재로만 사용하지 않고, 우리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희로애락의 한 부분으로 승화시켰다. 드라마는 치매노인이나 에이즈 환자에게도 '소중한 가족'이 있고, 남들과 다르지않는 삶의 소박한 행복을 꿈꿀 권리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푸른도라는 섬의 배경이 안겨주는 유토피아적 정서와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는 삶에 대한 낙관주의, 간간이 드러나는 판타지적인 구성 등은 때로 삶의 비극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느낌도 없지 않은 게 사실. 그러나 가족의 소중함, 인간의 존엄성, 신분과 환경을 초월한 소박한 행복에 대한 예찬 등, 요즘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설정들은 이른바 드라마의 '흥행공식'과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자극을 뺀 담백한 드라마의 매력을 과시했다.
방영 초반만 하더라도 인지도나 흥행성에서 경쟁작들에게 밀리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드라마가 중반 이후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대중적으로도 높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데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으려는 진심 어린 메시지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
군 제대 이후 오랜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장혁, 통통 튀는 신세대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한 공효진, 성인연기자들보다 더 깊이 있는 매력을 과시한 아역 서신애 등, 어깨에 힘을 뺀 배우들의 따뜻한 앙상블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원동력이었다. 또한 드라마 초반과 결말에 '특별출연'하여 짧고 굵은 인상을 남긴 최강희와 김수로, 감칠맛 나는 중견배우들의 저력을 보여준 전원주와 강부자의 호연 등도 이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그러나 <고맙습니다>에서 최고의 찬사는 역시 '미스타 리' 신구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완벽한 치매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물과 웃음을 넘나들며 '노장의 위력'을 과시한 신구의 호연이야말로 올해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전작 <열아홉순정>에서 홍영감 역할로, 고령화 시대 노인의 적극적인 삶의 유형을 제시하기도 했던 신구는, 스타만 있고 배우가 사라지는 요즘 드라마 속에 경륜있는 노장의 존재가 왜 필요한지를 연기로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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