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가 카메라 사용해 그림 그렸다?

<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

등록 2007.05.11 14:46수정 2007.05.12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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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그림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의 화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요하네스 베르메르. 그는 사후 2백년 동안 세인들로부터 잊혀졌다가 한 미술비평가의 손에 의해 극적으로 재발견된다. 정확한 생몰연대는 물론이고 길지 않았던 생애와 작품세계, 작품의 숫자마저 잘 알려지지 않은 이 화가는 그동안 신비스러운 베일에 싸여있었다. 때로는 지나치게 과장되기도 하고 혹은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괴짜 화가로 취급받기도 하면서.

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가 소개되면서 베르메르에 관한 서적도 국내에 많이 출시되었다. 베르메르의 생애와 그의 작품을 조망해보는 서적에서부터 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각색한 소설까지, 한때 베르메르가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중에서 <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이 책은 베르메르를 다룬 여느 서적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베르메르를 '있는 그대로' 평가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미화하지도 않고 평가절하하지도 않았다. 미술사가 고바야시 요리코와 저널리스트 구치키 유리코가 공동집필했다.

'거품' 걷어낸 객관적인 평가

베르메르의 생애에 관한 자료가 워낙 희박하기 때문에 베르메르의 생애가 어떠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일생동안 살았다는 것, 처가살이를 했다는 것, 델프트 화가들로 구성된 길드에서 활동했다는 것 정도이다. 이 책에서는 베르메르의 생애는 이 정도로 간략하게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 그가 남긴 작품 위주로 살펴본다.

베르메르의 작품을 보면 대부분 느끼는 것이겠지만 그 구조와 분위기는 대개 엇비슷하다. 풍경화보다는 풍속화를 즐겨 그렸다는 점, 여인을 주소재로 다룬 점, 그림 왼쪽에 창문이 있는 구조로 설정했다는 점 등이 그렇다. 베르나르 작품에는 그만의 특색이 강하게 나타나있다.

이 책에서는 베르나르 작품을 크게 5단계로 나누었다. 이야기 그림에서 풍속화로 넘어간 1650년대 중반, 델프트에 대한 오마주를 바친 1650년대 후반, 결혼하여 화가로서 독립하던 1660년대 초반, 화가로서 빛나는 절정의 순간을 보낸 1660년대, 만년에 새로운 모색을 꾀하던 1670년대로 나누었다.


<음악 연습> 1662년.
<음악 연습> 1662년.돌베개

<연애편지> 1669~1971년. 바로 앞의 문옆에 놓은 의자를 기준으로 실제 거리를 계산했을 때 문의 길이는 이것보다 더 길다는 결론이다. 이는 비현실적인 설정으로서 베르메르의 카메라 사용부정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연애편지> 1669~1971년. 바로 앞의 문옆에 놓은 의자를 기준으로 실제 거리를 계산했을 때 문의 길이는 이것보다 더 길다는 결론이다. 이는 비현실적인 설정으로서 베르메르의 카메라 사용부정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돌베개

지은이는 베르마르의 작품에 대해 줄곧 객관적이고 냉철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무조건 찬사일색의 어조가 아니라 초기작품의 어색함과 서툰 부분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1660년대 절정을 이룬 작품에 대해서는 '주옥같다는 말 이외에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화가로서 출발한 지 겨우 1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다다른 경이로운 경지였다'고 말한다.

베르메르 그림의 특징을 '카메라의 눈'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실제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바라본 것처럼 풍경의 정확한 묘사와 사실적 접근을 비유한 표현이다. 혹은 베르메르가 작업실에 카메라 옵스큐어(카메라의 전신)를 두고 이것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완성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카메라 옵스큐어 사용설'에 지은이는 반기를 든다.


베르메르 작품은 왜 자주 도난의 대상이 될까?

베르메르가 살았던 집안의 설계도를 토대로 하여 거리를 측량해본 결과 베르메르의 작업실은 카메라 옵스큐어를 두기에는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베르메르의 그림에는 카메라의 눈을 뛰어넘는 베르메르만의 회화적인 창작력이 돋보인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에서 왜곡되게 표현한 식탁, <연애편지>에 묘사된 극단적으로 위아래로 긴문, <저울을 든 여인>의 그림속의 그림과 여인의 머리부문과 저울의 위치를 보면 원근법을 배제한 채 회화적인 조작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화가의 모습이 분명히 떠오르기 때문이다. …(중략)… 모두 캔버스의 중심과 투시법의 소실점이 겹치는 구도를 사용하면서 인물, 책상, 창의 위치, 벽의 상태, 빛의 가감, 색조, 명암을 변화시켜 훌륭하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냈다. 이 작품들을 봐도 투영된 상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기만 하는 화가의 모습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155쪽)

베르메르의 작품이 숱하게 도난을 당하고 아트 테러리즘(정치적, 사회적인 목적을 위해 예술품을 매개로 하는 테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어쩌다 베르메르의 작품이 그렇게 '만만한' 대상이 되었을까. 아마도 작품의 희귀성과 유명세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확한 진위여부가 채 가려지지 않은 그의 작품 목록 탓도 있으리라는 것이 지은이의 견해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위작해 국가와 민족을 상대로 보기 좋게 속여 넘긴 희대의 위작사건도 함께 소개된다.

<버지널 앞에 앉아 있는 여인> 1675년. 아직도 진위논란이 되고 있는 작품.
<버지널 앞에 앉아 있는 여인> 1675년. 아직도 진위논란이 되고 있는 작품.돌베개
아직도 베르메르에 대한 연구는 진행 중이다. 작품 숫자도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거니와 그의 생애 역시 침묵에 쌓여있다. 이렇게 신비의 베일에 둘러싸인 베르메르인 만큼 그의 사랑과 예술 혼을 그린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그게 아무리 허구를 가미한 것이라 할지라도.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과연 어떤 화가였을까. 지은이의 명쾌한 설명 속에서 그의 모습을 다시 한번 그려본다.

'그가 살아온 자취를 더듬어봤을 때 베르메르 결코 시대와 떨어져 혼자 아틀리에 안에서 걸작을 탄생시킨 고고한 천재화가가 아니었다. 베르메르 역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시대의 아들 중 한 명이었으며 결코 걸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작품을 제작하면서까지 끊임없이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화가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119쪽)

덧붙이는 글 | 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 고바야시 요리코, 구치키 유리코 지음, 최재혁 옮김/ 도서출판 돌베개/ 13,000원

덧붙이는 글 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 고바야시 요리코, 구치키 유리코 지음, 최재혁 옮김/ 도서출판 돌베개/ 13,000원

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

고바야시 요리코 외 지음, 최재혁 옮김,
돌베개,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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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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