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모판에 물을 주고 있는데 장화까지 신은 영주 녀석이 논두렁으로 다가왔습니다.송성영
"아자씨? 물주고 있지…."
"왜요?"
"어린 벼들이 목마르다구 하니께."
"왜 목마르다 해요."
"물이 없으니께, 너두 물 안 마시면 목마르지?"
"예."
우리 동네에서 학교도 가지 않고 유일하게 빈둥빈둥 노는 꼬맹이, 영주 녀석은 유치원을 한 달도 채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었습니다. 유치원에 가면 형아들과 누나들이 꼬집고 때리고 자꾸만 괴롭힌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주 녀석은 종종 우리 식구들을 친구 삼아 놀고 있습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집 아이들 역시 녀석과 친구처럼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영특한 녀석은 작년에 비해 생각이 부쩍 컸지만 여전히 나보다는 생각이 훨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 또한 녀석과 생각 없이 노는 것이 좋습니다.
녀석은 늘 그랬듯이 논두렁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이것저것 참견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어댔습니다.
"사진은 왜 찍어요?"
"그냥 벼가 자라는 것을 찍어 놓으려구, 근디 어제께는 거머리 있었는디 다 어딜 갔지?"
"거머리가 뭐여요?"
"거머리? 그거? 다리에 붙으면 피 빨아 먹는다."
피를 빨아먹는다는 무시무시한 말에 녀석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말꼬리를 돌립니다.
"인효 형아하구 인상이 형아는 어디 갔어요?"
"학교 갔지."
"왜요?"
"글쎄? 공부하러 간다고 하지만 그건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그냥 학교 갈 때가 됐으니께 가는 거구, 그리구 또 학교에 가면 같이 놀 친구들이 많으니께, 그래서 간 거 같다."
줄곧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영주 엄마가 저만치 집 마당 앞에서 뭐라고 그럽니다.
"예? 뭐라구요!"
"송 선생님하고 영주하고 그러고 있으니까 그림 같다고요! 보기가 너무 좋아요."
영주 엄마는 내가 논일을 하고 있으면 시원한 물이나 커피를 타 주고 때로는 참외도 깎아다 주곤 합니다.
"농부 아자씨! 우리 아저씨 집에 가서 놀아요."
"그려? 그러자! 형아들 올 때도 됐으니께. 형아들 마중 나가자."
나는 일손을 놓고 생각 없이 영주 녀석의 손을 잡고 논두렁을 걸어 나왔습니다. 영주는 우리 집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영주와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서로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서로서로 놀 상대가 녀석들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