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작은세계’시리즈, 1991Martin Parr / Magnum Photos / 유로포토-한국매그넘
사진, 사진, 사진, 또 사진이다. 한국사진은 지난 2003년도 이후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사진전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화랑과 미술관이 10여개로 늘어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가들의 대규모 회고전도 자주 개최되고 있다.
지난 3월 29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세계적인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대규모 회고전이 개최되고 있는 것을 비롯해 지난 3일부터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마틴 파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마틴 파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199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진가이다.
이번 마틴 파 회고전에서는 30년에 걸친 대표작 200여점이 4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전시되고 있다. 첫째 방은 1970년대 사람과 장소에 관한 초기 흑백 작업이며 둘째 방은 ‘마지막 휴양지(The Last Resort) 와 ’삶의 비용(Cost of Living) 등 신화로 남을 만한 시리즈, 셋째 방은 지구촌 관광산업을 다룬 기념비적인 ‘작은 세계(Small World)가 중심을 이루고 마지막 넷째 방에서 설치작업 ‘상식(Common Sense)’으로 끝을 맺는다.
그 가운데 250장의 사진으로 만든 놀랍고 독창적인 설치작업 ‘상식(Common Sense)’은 마틴 파가 유럽에서 중요한 컨템퍼러리 사진가로서 결정적인 평가를 받도록 한 작품이다.
사진은 기록의 수단이나 회화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발명 되었다. 그중에서도 기록으로서의 사진은 사회. 문화적인 현실에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1936년에 <라이프>(LIFE)지가 창간된 이후부터는 포토저널리즘의 전성시대라고 일컬어졌을 만큼 다큐멘터리사진의 사회적인 비중이 커졌다. 20세기 초반부터 1970년대까지 사진의 대명사는 다큐멘터리 사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은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텔레비전이나 비디오와 같은 동영상매체의 발달로 인하여 그 기능이 축소되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객관적이고 공론적인 시각으로 기록하고 전달하는 저널리즘 사진과 사적인 시각으로 특정한 사회적인 상황과 사건을 표현하는 퍼스널 다큐멘터리사진으로 구분되어진다.
퍼스널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표적인 예가 1958년에 발표된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이다. 그로부터 20여년 후에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다른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추구하는 새로운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마틴 파이다.
마틴 파는 1952년 영국 북부의 소도시 서레이(Surrey) 출신으로, 어린 시절은 지루할 정도로 평범하고 모범적으로 보내었다고 회고한다. 이후 일상적인 영국 사회의 모습은 그의 작품에서 계속 등장하는 관찰과 기록의 대상이 된다. 1960년대 유럽 전역에 일어났던 문화적 격동과 팝 아트의 움직임 속에 엄격했던 고교교육에도 예술, 연극, 음악 등 보다 열린 교육이 도입되면서 마틴 파는 연극과 연출, 희곡에 심취하게 된다.
마틴 파는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할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사진과 친숙했다고 한다. 당시 영국으로서는 거의 유일했던 사진 전문잡지 <창조적 카메라(Creative Camera)>를 구독하던 고교 미술선생님의 영향으로 1970년대 맨체스터 기술학교(Manchester Polytechnic)에 진학하게 된다. 졸업후에는 교사와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 한다.
마틴 파는 현대인들의 삶과 문화를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비평한다. 현대인들이 휴가지에서 휴가를 보내는 풍경, 대형 쇼핑센터에서 쇼핑을 하는 모습, 관광지에서 관광을 즐기는 모습을 통하여 그것에 내재되어 있는 여러 모순된 모습들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그것들이 그가 발표한 <마지막 휴양지 (The Last Resort)> (1986), <삶의 비용 (The Cost of Living)>(1986-1989), <작은 세상 (Small World)> (1995) 시리즈 등이다.
조금은 어색하고 모순된 모습으로 휴가를 즐기는 현대인의 행태, 본래의 의미가 퇴색된 관광여행 그리고 대량소비 시대의 기형적인 현대인들의 소비생활을 상징적인 모습으로 표현 한다. 그의 작품은 감각적인 컬러로 제작되어 메시지를 좀 더 강하게 던져준다. 또한 그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다른 매그넘 사진가들이나 선배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공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특별하고 공적인 현실을 기록한 것과는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마틴 파는 다큐멘터리사진 에이전시 매그넘 소속의 사진가이지만 잡지보다는 미술관이나 상업화랑에서 더 선호할 수 있는 작품을 발표한다. 매그넘의 창설자들 중 한 사람인 로버트 카파는 평생 전쟁이라는 특별하고 공적인 상황을 통하여 한 시대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그가 창설한 매그넘의 후배 사진가 마틴 파는 전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동시대인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표현대상으로 삼아 감각적인 컬러사진으로 현대성을 반영하고 있다. 후기산업사회는 문화의 주체가 거대단체나 사회에서 개인으로 변화되고 있다.
따라서 사진가들의 관심도 거대 담론이나 사건, 사고 등 뉴스 중심에서 일상과 개인으로 옮겨지고 있다. 그 결과 다큐멘터리 사진의 사유화가 더욱 더 심화되어 순수사진과의 경계가 모호해 지고 있다. 바로 마틴 파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그것의 대표적인 예이다.
마틴 파는 현대사회의 문화와 삶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비평한다. 동시대인들의 소비생활과 문화생활이 얼마나 가식적 이고 기괴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자본에 의해서 어떤 식으로 왜곡되고 있는지 누구나 보면 이해 할 수 있게 보편적인 영상언어로 이야기한다.
이번 마틴 파 대규모 회고전은 사진 애호가들과 대중들이 다큐멘터리 사진의 의미와 현대다큐멘터리 사진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마틴 파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진이 다른 영상매체와의 차별화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교과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