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다, 표 얻으러 광주 가자"

[5·18묘역의 추억] 광주로 몰리는 정치권, 무릎꿇고 참배하지만

등록 2007.05.15 22:47수정 2007.05.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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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ont color=a77a2>5월 광주, 몰려드는 정치권... "5월이 정치사교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인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는 5월 묘역.

5월 광주, 몰려드는 정치권... "5월이 정치사교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인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는 5월 묘역. ⓒ 오마이뉴스 이종호·안현주

"인자 5·18을 누구도 부인하지 안응께 좋기는 하지만…. 정치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느닥없이 '오월정신' 어쩌니 하면서 표 달라고 하는데 맘이 좋지만은 않제."

"오월정신이여, 우리를 지지해 달라"는 정치권의 '합창'에 대한 김용남(61·방림동)씨의 반응이다. 5월 광주로 몰려드는 정치권을 향한 다소 언짢은 마음이 묻어난다.

'오월정신'과 '오월영령'을 입에 달고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표를 달라"며 과도한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에서 느끼는 허전함 때문이다.

매년 5·18광주민중항쟁 기념일이 되면 정치인들은 국립5·18민주묘지(이하 5·18묘역)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경쟁하듯 "광주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선거가 있는 해에는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더 잦아지고 그 방문 규모도 커진다. 이미 '정치적 통과의례'가 된 듯 하다.

"오월은 나의 것" 합창하는 정치권... 눈물흘리고 무릅꿇고

a <font color=a77a2>민주당은... 지난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둔 5월 한화갑 당시 민주당 대표 등이 묘역을 둘러보다 무릅을 꿇고 상념에 잠겼다.

민주당은... 지난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둔 5월 한화갑 당시 민주당 대표 등이 묘역을 둘러보다 무릅을 꿇고 상념에 잠겼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a 지난 2004년 4월 5일, 3일째 3보1배를 한 추미애 당시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묘지에 이르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선대위원장을 맡아 공천 물갈이를 시도했지만, 이른바 '옥쇄전쟁'에서 패한 후 3보1배에 나섰다. 여기에 탄행역풍까지 맞았다.

지난 2004년 4월 5일, 3일째 3보1배를 한 추미애 당시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묘지에 이르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선대위원장을 맡아 공천 물갈이를 시도했지만, 이른바 '옥쇄전쟁'에서 패한 후 3보1배에 나섰다. 여기에 탄행역풍까지 맞았다. ⓒ 안현주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최근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난 13일 5·18묘역을 참배했다. 대선 공식선언 후 지역 방문으로 첫 방문지가 광주였다.


그의 뒤를 이어 17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시작으로 한명숙 전 총리, 박근혜 전 대표, 김근태 전 의장, 정동영 전 의장 등 대권주자들은 물론 각 정당 대표 등도 광주를 방문할 예정이다.

5·18 관련 단체 한 임원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고, 언제 온들 막을 사람도 막을 이유도 없다"면서도 "그런데 너무 정치적 수사만 있고 도가 지나칠 때는 좀 그렇다"고 말했다.


정치인에게 정치적 행보를 한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지역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행위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칠 때는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 광주의 5월이 그렇다.

5·18묘역을 찾아 "사죄한다"며 눈물을 떨구고 무릎 꿇고 묘역을 청소하면서도, 지역주의에 기댄 선택을 강요하거나 역사의식을 의심받을 만한 행동과 비난성 막말을 해 상처를 줬다.

한참 동안 '빨갱이'들이나 찾았던 곳이 이제는 "정치 사교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지역 정치권 한 인사는 "경쟁하듯 머리를 조아린다고 액면 그대로 마음으로 인정해주는 시민은 없을 것"이라며 "호소만 하고 있는 정치권의 행보는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행보가 '광주정신'과 부합할까

a <font color=a77a2>한나라당은...  두 번의 대선 패배이후 한나라당은 적극적인이고 예전에 비하면 파격적인 행보를 꾸준히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5월 80여명의 당직자들이 묘역 정화작업을 벌이는 모습.

한나라당은... 두 번의 대선 패배이후 한나라당은 적극적인이고 예전에 비하면 파격적인 행보를 꾸준히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5월 80여명의 당직자들이 묘역 정화작업을 벌이는 모습. ⓒ 안현주

a 2006년 8월 당 대표 취임1달 기자간담회를 광주에서 연 강재섭 대표는 "과거에 호남민에게 고통을 준 것에 사과한다"고 했다.

2006년 8월 당 대표 취임1달 기자간담회를 광주에서 연 강재섭 대표는 "과거에 호남민에게 고통을 준 것에 사과한다"고 했다. ⓒ 안현주

정치권은 "너무 지나친 정치적 해석은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열린우리당·민주당 등의 억울함은 과거의 민주화운동 이력과 그 전에도 방문해 왔음을 그 이유로 든다. 한나라당측에서는 과거에 대한 사과의 뜻이라며 "그 진정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달라"는 이유에서다.

한나라당은 두 번의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호남 두 자리 수' 지지율 확보를 큰 과제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2003년 이후 '호남에서 처음'이라는 수사가 한 동안 따라 다녔다. 과거 전신 정당들의 호남 소외에 대해서도 우회적으로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그런 탓인지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은 많이 수그러진 것도 사실이다.

한나라당 한 의원은 "김영삼 정권 때 5월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호남과 화해하려는 노력으로 봐달라"고 했다.

그러나 김용갑 의원의 '광주 해방구 발언'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 논란과 관련, 한나라당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같은 역사의식과 행태가 '광주정신'과 조우할 수 있을까.

이른바 범여권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비전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채 사분오열돼 막말 정치만을 보여주고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서로 "5월의 적자"라는 목소리를 높일 뿐이다.

열린우리당 소속 한 지방의원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해 민심이 왜 등을 돌렸는지 책임있게 따져물어야 한다"면서 "그렇게 지지를 해줄 때 어떤 개혁을 시원하게 해본 적이 있느냐"고 했다.

그는 "최근 '친노'니 '반노'니 하면서 청와대와 대권주자들이 으르렁거리고, 민주당은 2004년의 패배를 금새 잊어버리고 또 한번의 선택을 강요했다"면서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호남' '광주정신'만 외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진정성? "정책과 행동으로 보여달라"

a <font color=a77a2>열린우리당은... 2004년 3월 묘역을 둘러보던 중 당시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대통령 탄핵을 막지 못했다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구고 있다. 이해 4월 치러진 총선에서 탄핵역풍과 민주당의 불공정 공천 등으로 열린우리당은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3월 묘역을 둘러보던 중 당시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대통령 탄핵을 막지 못했다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구고 있다. 이해 4월 치러진 총선에서 탄핵역풍과 민주당의 불공정 공천 등으로 열린우리당은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 안현주

박석무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지난 2005년 5월 CBS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치권을 향한 일갈은, 정치권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그 때 발포자는 누구였나? 죽은 사람, 행불자가 이렇게 나와 있는데, 누구였냐? 이런 것들이 제대로 드러나게끔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호남에 방문하지 않고, 5·18묘역에 오지 않더라도 '아, 이 사람들이 진정으로 5·18에 대해 뉘우치고 있고 이것에 대해 진실을 밝히려는 의미가 있구나' 이렇게 보면 저절로 화합으로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여망'에 '오월'을 담지말고 '오월정신'에 그들의 여망을 담으라는 주문으로 읽힌다. 정치권이 머리를 조아리는 '오월영령의 뜻'도 그러지 아닐까.

"5월이여 우리에게 힘을 달라"... 2007년, 정치권의 호소
국립5·18민주묘지 참배 방명록과 광주 방문 발언 등

- "약무호남시무국가를 지금에 맞추면 '약무호남시무민생' '약무호남시무개혁'이다."
(14일 천정배 의원).

- "5·18민주화운동이 미래 대한민국의 화합 번영의 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13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방명록).

- "영령들이여! 중도개혁세력 대통합에 민주당이 앞장서겠습니다"
(3일 박상천 대표 등 민주당 플래카드 글귀).

- "5월의 정신으로 선진평화의 미래를 열어가겠습니다"
(1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 방명록).

- "광주정신의 적자는 김근태다. 호남이 승인해달라"
(4월 18일 김근태 전 의장).

- "오월의 정시으로 민주개혁진영이 성공하는 2007년을 만들겠습니다"
(3월 28일 정세균 전 의장 방명록).

- "광주는 부패하고 타락한 수구세력들의 손을 잡아서 안된다... 한나라당 지지, 통탄스럽다"
(3월 11일 정동영 전 의장).

- "역사의 고비마다 보여주었던 숭고한 희생정신을 국민화합으로 승화시켜달라"
(2월 27일 박근혜 전 대표).


a <font color=a77a2>그러나 묘역 밖에서는...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기념식에 참석했던 5월 18일 오전 묘지 정문에서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시위가 벌여졌다.

그러나 묘역 밖에서는...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기념식에 참석했던 5월 18일 오전 묘지 정문에서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시위가 벌여졌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a 취임 후 미국을 방문한 노 대통령은 학생들의 시위로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후문'을 통해 기념식장에 들어갈 수 있다. 이후 이라크파병 3보1배단 등이 노 대통령을 맞기도 했다. 2007년은 한미FTA체결과 관련 광주전남 농민들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일 것으로 예상돼 긴장감이 돌고 있다.

취임 후 미국을 방문한 노 대통령은 학생들의 시위로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후문'을 통해 기념식장에 들어갈 수 있다. 이후 이라크파병 3보1배단 등이 노 대통령을 맞기도 했다. 2007년은 한미FTA체결과 관련 광주전남 농민들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일 것으로 예상돼 긴장감이 돌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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