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읍성의 짐대와 장승김선태
2007.5.15. 스승의 날. 그 말썽 많은 날, 국립민속박물관의 자원봉사자들은 박물관 측에서 제공한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부안으로 향했다. 부안은 우리 민속박물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곳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제1관에 들어서면 전시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디오라마 기법으로 전시된 세 번째 전시물인 '죽막동 제사 유적'이 있다. 이 죽막동 유적지가 발굴된 현장이 바로 이 부안의 바닷가에 있다. 부안읍에서 불과 20여분 거리에 있는 수성당이라 불리는 당집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번에 부안 지역을 찾아서, 부안 읍성과 당간, 짐대 등을 보고, 채석강, 수성당<죽막동>, 내소사를 둘러보는 것으로 체험활동을 마치기로 되어 있다.
부안읍성을 보기 위해서 군청 마당에 차를 대자 이곳의 문화해설사 한분과 전주대학 교수이자 이 고장 유물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가의 해설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읍사무소에서 불과 100여m 거리에 있는 남문 밖에 세워졌던 짐대부터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읍내 한복판에 자리 잡았던 초등학교가 어찌된 영문인지 폐교가 되고, 그 커다란 학교 건물의 교실과 운동장, 시설 들이 모두다 그대로 방치 되어 있었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 이렇게 좋은 학교가 방치되고 있는 것일까? 어디에도 그 까닭을 알리는 글도 게시판도 없으니 교육에 몸담았던 사람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이었다.
이 학교 교실에서 10m도 안 되는 자리에 이 돛대가 세워져 있었다. 읍성의 남문 밖에 세워졌던 짐대(솟대를 여기에서는 짐대라고 주장하였다)는 여태까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보통 솟대는 나무로 만들어 세운 장대 위에 가로 막대를 얹고 그 위에 기러기나 새를 만들어 올려 앉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세워진 돛대는 마치 배의 돛대처럼 끝이 뾰족하게 세워져 있었다. 다만 위 부분만은 돌 한 개로 모두 완성을 할 수가 없었던지 다른 돌로 깎아 만들어 붙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부안 읍성의 남문 밖에 돛대를 만들어 세운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어서였다.
이 곳의 풍수지리학상의 지형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 지역을 보호하는 '비보 입석'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 모양이다. 다시 말해 부안이라는 곳이 지형 상으로 봉황산을 선미로 하는 배 모양의 지형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곳은 저습지이어서 안정을 찾으려면 무거운 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디론가 떠내려갈 듯한 이 지형을 단단히 고정 시키기 위해 무거운 돌로 만든 말뚝을 박아서 고장하려 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배 모양의 지형에 돛대를 세워서 흘러가더라도 바로 갈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는 지도 모른다. 이렇게 돛대를 세워 놓고 동, 서 양 쪽의 문 밖에는 장승을 세워서 모든 잡것들의 성안 출입을 막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서 장승이란 마을 입구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온갖 것들을 감시하고 검열하여서 나쁜 것, 사한 것들의 출입을 막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장승의 얼굴이 코믹하게 만들어 놓은 것은 그 본령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한다.
장수가 웃는 얼굴을 하면 어떻게 엄하게 지휘를 할 수 있으며, 나쁜 것을 쫓아 낼 수가 있겠는가 하는 해설자의 말은 어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장승의 이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