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 사무실을 점거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 일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불구'일 경우 '낙태가 용납될 수밖에 없'다고 한 발언이 연일 논란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에 거의 동시에 이 전 시장의 발언을 옹호 내지는 대신 '변명'해주는 기사가 실렸다.
"그렇다면, 여기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 만일 지금 당신의 2세가 출산 전인데 검사 결과 장애아로 판정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선뜻 낳아서 잘 키워보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특히 나와 같은 장애인들은 2세가 지금 뱃속에 있는데 장애인이라면 자신 있게 낳아서 키울 수 있는가 말이다.' (<오마이뉴스>)
장애인으로 태어나 36년 간 '타인의 시선과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박준규 기자의 주장에 비장애인인 나는 마땅히 반박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는 그의 말에 발목이 잡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모두 가식적인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이런 사정은 이명박 전 시장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생소할 수 있다. 산전 검사를 통해 아이가 조금이라도 장애를 안고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곧바로 낙태 시술을 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이자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전 시장의 '불구 낙태' 발언도 이런 한국 사회의 일반적 상식을 반영한다." (<프레시안>)
과학전문 기자로 황우석 사태 당시 사건의 핵심을 제대로 짚은 몇 안 되는 언론인으로 이름을 날린 강양구 기자가 "연간 35만 건의 낙태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는 통계와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장애가 있는 태아를 낙태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일반적 상식"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에도 고개가 끄덕여질 뿐이다.
낙태 대신 장애아 출산 택하는 '비상식적' 산모를 기억해야 한다
나 자신은 장애인이 아니기에 장애인이 겪는 고통에 대해 아는 바 별로 없고, 장애나 낙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게 아니기에 기술적인 반박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반박의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게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장애를 안고 산다는 건 비장애인인 나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큰 고통임에는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모들은 자기 뱃속의 태아가 장애를 안고 있다는 게 판명되면 '한국 사회의 일반적 상식'에 따라 낙태 시술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같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상식'적인 산모가 낙태를 선택할 때, 낙태가 아닌 장애아 출산을 선택하는 비상식적(!)인 산모도 분명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이며,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일 역시 얼마나 큰 고통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생명의 존엄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 바보(!) 같은 산모가 있기 때문에 장애와 낙태에 대해 그리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뱃속의 아기가 장애를 안고 있는 것을 뻔히 알고도 출산을 선택한 그 산모들은 아이가 자라는 동안 가족과 이웃에게 갖은 비난의 소리를 듣게 된다고 한다. 아이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 줄 게 분명한데 왜 미련하게 출산을 선택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픈 건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자기 아이에게서 '왜 저를 낳으셨어요'라는 원망 섞인 말을 들을 때라고 한다. 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자녀에게 평생 죄책감을 느끼면서 산다고 한다.
박준규 기자는 묻는다. "당신의 2세가 장애아라면, 자신 있게 낳겠는가"라고. 대답하지 않겠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지만,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 질문은 자기 뱃속의 생명 하나 떨어뜨리지 못해서 평생을 죄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의 부모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과 다름없다(질문하는 이의 형편이 장애인이라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안 그래도 받지 않아야 할 고통과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그들에게 그렇게 가혹할 필요가 무어란 말인가.
소수자 존재에 눈 감고 상처 들쑤신 이명박, 지금이라도 용서 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