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교육 이제는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이야기 26] 통일 말하기 대회

등록 2007.05.18 15:18수정 2007.05.1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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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말하기 대회

드디어 ‘통일 말하기 대회’시간이 되었습니다. 동석이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발표할 내용의 순서는 정하였지만, 중간에 잊어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칠판에다 큼직하게 ‘통일 말하기 대회’라고 썼습니다.

그 글씨를 보니 동석이의 가슴이 더 두근거렸습니다. 다리도 가볍게 떨려서 발을 이리저리 옮겨 보기도 하였습니다. 상철이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수런거리던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상철이는 친구들을 휘휘 둘러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말하였습니다. 동석이는 처음부터 기가 질렸습니다. 상철이의 자세, 목소리, 표정이 너무나 능숙하였기 때문입니다. 상철이의 웅변은 동석이의 귓가에서 윙윙거렸습니다. 동석이의 입 안이 자꾸 말라 갔습니다.

“그러므로 첫째도 힘, 둘째도 힘, 셋째도 힘을 길러 북한 공산당을 이기는 것이 통일의 길이라고 이 연사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상철이는 불끈 쥔 두 주먹을 높이 쳐들고 목이 터져라 외치며 웅변을 끝냈습니다. 친구들은 박수를 쳐 댔습니다.

“다음은 동석이.”

선생님이 동석이의 이름을 부르자, 친구들은 웅성거렸습니다. 동석이가 교탁 앞에 섰을 때에도 역시 웅성거렸습니다. 동석이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발표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북한에 계십니다. 지금 살아 계신지 돌아가셨는지도 모릅니다. 할머니께서는 한 번도 할아버지 생신을 잊은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생신이 되면 할아버지를 위해 맛있는 반찬과 밥을 차려 놓으셨습니다.”

동석이의 말이 계속되자,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한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올해 할아버지 생신을 맞지도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얼마 전에 할머니께서는 북한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텔레비전 뉴스를 듣고 북한 방문 신청을 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죽기 전에 할아버지의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밤잠도 설치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북한을 방문할 수 없게 되자, 실망을 한 나머지 병이 나서 돌아가셨습니다.”

동석이는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한 핏줄이라면서 서로 싸우고 자기 주장만 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는 동안 저희 할머니는 병을 얻어 돌아가셨습니다.”
동석이는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았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었습니다.

“저는 상철이와 생각이 다릅니다. 얼마 전 북한이 다른 나라와 축구 경기를 할 때 저는 북한이 이겼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남북이 서로 돕고 이해할 때에 통일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석이는 절을 꾸벅 하고는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힘차게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와, 동석이 대단한데!”

“진짜 잘 한다.”

친구들은 동석이를 바라보며 모두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지영이는 동석이에게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였습니다.
/ 이중현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통일 말하기 대회'라는 글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통일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만큼 우리나라는 통일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다. 그런 우리나라 사람들을 기쁘게 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 지난 17일 일어났다. 바로 몇 십 년 동안 달리고 싶었던 달릴 수 없었던 철마들이 북쪽 땅을 향해 잠깐이나마 힘차게 달려본 것이다.

지도상에 남과 북을 반으로 가르며 그려진 금이 조금씩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싹트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지도상에 그려진 금이 너무나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아 또 다른 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금은 바로 이산의 아픔을 직접 겪지 못한 세대들이 북한을 점차 멀게만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그 금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교육이 제대로 그 금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위 교과서 속 이야기에서 상철이와 동석이라는 아이가 나온다. 상철이는 ‘북한 공산당을 무찌르자!’며 소리를 높인다. 이게 현실성이 있어 보일까? 난 초등학교를 93년도에 졸업했다. 이미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머지않아 한 번 더 바뀔 것이다.

그 당시 웅변 학원을 다니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종종 반대표나 학년 대표로 웅변대회에 나갔다. 그리고 북한 공산당 얘기를 하며 무찌르자고 외쳤던 것은 3학년 때인 89년도가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는 웅변대회라는 이름도 ‘나의 주장 말하기 대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어갔고, 내용도 점차 온건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인 97년도에 학교 대표로 통일에 관한 ‘나의 주장 말하기 대회’에 갔을 때는 단 한 명도 북한 공산당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서로가 한 민족이니 돕고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10년 전에도 통일 말하기 대회를 한다고 해도 북한 공산당 얘기가 나오지 않았는데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여전히 북한 공산당 얘기가 나오고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 속 얘기가 점차 아이들에게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야기 속 동석이 할머니들이 급격하게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데 있다. 남과 북이 갈린 지 이미 반세기가 넘었다. 인간의 수명이 아무리 길게 연장되었다고 하지만 강산이 한 번 더 바뀌면 이산가족의 아픔을 절실히 느끼는 이가 몇 명이 될까 싶다. 통일의 가장 절실한 이유였던 연결 고리들이 점차 세상을 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큰 문제다.


생각해보라. 한 부모 밑에서 두 형제가 태어났다. 그런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형은 저 먼 아프리카 국가에서 살게 되었고, 동생은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 그렇게 얼굴 한 번 못 보고 자란 형제가 몇 십 년이 지나 만났다. 그렇다면 얼씨구나 하면서 같이 한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서로 남처럼 인식하고 있기에 쉽지가 않다.

게다가 형은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고, 동생은 굉장히 풍족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한 집에서 살게 되면 동생이 형을 위해 적지 않은 돈을 부담해야 한다면 같이 살고 싶을까, 아니면 그냥 따로 떨어져 살고 싶을까? 만약 그렇게 둘이 만나게 되면 핏줄보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는 상황이 더 많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만약 형이 아버지, 할아버지와 같이 아프리카 쪽에 동생이 할머니, 어머니랑 같이 미국 쪽에 살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되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만났다 하더라도 둘이 한 집에서 살 이유는 보다 명확해진다. 그 둘을 묶는 연결 고리가 확실하기에 약간의 갈등은 있을지언정 ‘한 집에 꼭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보다 강해진다.

지금 우리나라 입장이 그렇지는 않은가? 길을 가다가 젊은 세대를 잡고 물어보면 ‘통일을 꼭 해야 한다’고 하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어려서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듣고 부르고, 끊임없이 말하기 대회만 열렸다 하면 통일 얘기를 하면 자라온 나부터도 절실히 다가오지 않는다. 이산의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지만 통일 되면 좋고, 안 되도 큰 일 나는 것은 아니지 라는 솔직한 내 심정이다.

그러나 그래도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이산가족이 상봉하면서 오열하는 장면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리고 자라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분단의 아픔을 절실히 느끼게 하고 들려줄 수 있는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사라지고 있다. 10년 후 교과서에도 동석이 할머니 얘기가 나오면, 지금 북한 공산당 얘기를 보고 시대가 어느 때인데 하는 나처럼 ‘요새 이런 사람이 어디 있어?’하고 냉소적 시각으로 보는 아이들도 분명 생길 것이다.

그리고 통일을 하면 통일 비용이 얼마나 들며, 경제적 파급 효과가 무엇인지를 따지며 통일의 득실을 냉정히 계산할 줄 아는 이들이 사회의 기둥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한 민족 간의 통일이라는 것은 아무리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해도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 마음 속 깊은 곳에 ‘우리는 한 형제’라는 생각이 있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언젠가는 통일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이산의 아픔을 겪은 이들이 점점 없어지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들이 모두 다 떠나버리기 전에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국제 관계 등 여러 관계를 고려하면 통일이 그렇게 쉽게 단 기간 내에 이루어질 것처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 남과 북을 한 형제로 느끼게 해주었던 이산가족들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통일에 관해 말하는 초등학교 교과서 이야기도 보다 현실적인 상황에 맞추어 조금씩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 때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끊임없이 동석이 할머니를 등장시켜야 할까? 나는 그보다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같은 상황을 활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남과 북의 병사들이 형제처럼 지내다가 갑자기 적으로 돌변해야 하는 상황은 지금 젊은 세대나 자라나는 세대에게 보다 확실히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을 보다 깊이 심어줄 수 있는 길이다.

이처럼 이제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통일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키울 준비를 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들에게 보여줄 교재를 만들고 가르치는 이들이 더 이상 그 시기를 미루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세상의 많은 부분을 초등학교 교과서로 보고자 연재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세상의 많은 부분을 초등학교 교과서로 보고자 연재하고 있습니다.
#통일 #말하기대회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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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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