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화도 어민과 갯벌이강길
갯벌만큼 인간에게 편안하면서 풍요로운 대자연이 또 있을까?
맹수도 없고 성가시게 달려드는 곤충도 없고, 낙상이나 익사 위험도 없이, 규칙적인 밀물 썰물만 염두에 두고 있으면 어린 아이라도 마냥 뒹굴며 갯것들을 들여다보고 놀 수 있다. 갯벌 구석구석을 알고 있는 어민들과 함께 있다면, 안전할 뿐만 아니라 돌아오는 길에 신선하고 다채로운 조개까지 한 짐 가득 얻어올 수 있다.
인류는 바닷가에서 살았던 호모 아쿠아리우스(Homo aquarius)가 맞는 듯싶다.
이강길 감독의 <어부로 살고 싶다-살기 위하여>(Save Ours Saemankum-to Live, 2006)가 인디포럼과 서울인권영화제, 그리고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다.
새만금 갯벌에서 어민들의 눈높이로 영화를 찍어온 이 감독의 <어부로 살고 싶다> 연작의 최근 작품이다. 갯벌과 함께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온 계화도 어민들이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겪게 되는 변화, 그들이 속속들이 알고 있고 생명으로 넘실대던 그 갯벌이 겪는 상처를 그린다.
새만금 사업을 막기 위한 힘겹고 긴 싸움. 갯벌에서 맨손어업으로 조개캐던 어민들이 가진 힘은 바로 그 맨손의 생존권에서 나온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존권을 당당하게 말하고 갯벌을 살리기 위한 행동을 두려움 없이 기획하는 어민들의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갯벌을 살리기 위한 바닷물 유통보다 정부와의 협상에서 보상을 더 받기 위해 언론플레이에만 관심을 가지는 선주들은 정부 눈치를 살피며 직접행동을 차일피일 미룬다. 주류 언론은 어민들의 이야기를 철저하게 외면하며, 서울의 큰 환경단체는 책임졌다가 나중에 덤터기 쓸까봐 발을 뺀다. 마지막 4공구에 돌무더기가 들이부어지는 무심한 풍경과 어민들의 쓰라린 마음이 교차되며, 결국 갯벌에는 물이 끊기고야 만다.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간척사업의 경제적 가치를 말하는 자본도,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정부도, 방조제 완공 소식에 태극기를 휘둘러대는 언론도 아닌 정말 일어났던 우리의 당대사다. “백합조개를 살려 주세요”, “도요새를 살려 주세요”, “갯벌을 살려 주세요”라고 했을 때조차 언급되지 않았던 어민들의 이야기다.
젊은 남성인 영화감독은 시종일관 갯벌 여성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신뢰를 보낸다. 주인공이 정해져있지 않은 영화지만, 그래도 주인공격이라 할 수 있는 ‘갯벌 여전사’들이 하는 말은 생생하고도 묵직하다. 관객들은 이 여성들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고, 감정을 이입하게 되면서,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 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가슴 아픈 반전을 보여준다. 수십 년 동안 매일 나가 그레질을 해왔기 때문에, 어디가 단단하고 어디가 무른지 어디쯤 어떤 조개가 많이 나는지 속속들이 아는 그 갯벌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아래 문단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보러 갈 독자는 건너뛰기 바란다. )
끝물막이 후 바다와 분리되어 말라가는 갯벌은, 남은 바닷물을 빼기 위해 가끔 농촌공사가 배수갑문을 열 때만 바다와 연결된다. 어민들은 배수갑문을 언제 열 것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하지만, 농촌공사는 공지하지 않는다.
어렵지도 않은 배수갑문 일정 공지를 농촌공사가 해주지 않아 어민들은 갯벌에 불안한 마음으로 다닌다. 늘 배수갑문을 열어 물을 빼내기만 했는데, 어느 날은 갑자기 물을 들여보내고, 이를 알지 못한 어민 한 명이 갯벌에서 물에 휩쓸려 세상을 뜬다. 새만금 갯벌에서 벌어진 일들을 영화에서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면 놀랍고 참담한 기분이 든다. 이미 알고서 보는 관객도 다시 한 번 가슴이 저린다.
영화는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희망, 다시 올 새만금의 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를 어떤 경로로 보게 되었든, 영화가 끝나면 다들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먹먹해진 상태로 감독과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된다. 상영관을 나서면 갯벌 배움터 ‘그레’에 대한 후원부스가 차려져 있다. 여기서 영화 속과 영화 밖이 연결된다.
이 영화는 ‘도대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진지한 답이기도 하다. 서울과 서울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시간 내어 그 답을 들으러 오길 바란다.
<어부로 살고 싶다-살기 위하여> 상영안내
5월 18일(금) 낮 12시30분 상암CGV 6관 (서울환경영화제)
5월 19일(토) 오후 8시30분 서울아트시네마 (서울인권영화제)
5월 22일(화) 오후 2시30분 서울아트시네마 (서울인권영화제)
5월 23일(수) 오후 3시 상암CGV 3관 (서울환경영화제)
갯벌 배움터 그레 후원 페이지
http://nongbalge.or.kr/gre/member/memberjoin.php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일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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