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에 사용된 안경과 안경집의 모습입니다. 왼쪽의 하얀 점박이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상어나 가오리의 가죽으로 만든 어피 안경집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그것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최형국
아마도 당시의 안경은 동전 크기만 한 안경알에 안경테는 금으로 장식했고, 휴대하기 편하도록 좌우의 안경알이 접어지는 형태였을 것입니다. 거기에 이미 어느 정도 광학기술을 접목하여 돋보기 형태로 글씨가 크게 보이기까지 했으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물건이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안경이었기에 조선후기에는 마치 안경이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허리춤에 안경집을 곱게 메달아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안경집 중 최고의 가치를 상징하는 것은 바로 거북이 등껍질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상어 가죽인 어피에 옻칠을 해서 매화꽃 문양이 나는 형태로 마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는 조선시대에 칼집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당시 최고의 세공기술이 있어야만 그 귀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정조, 아침에 일어나 안경을 찾다
이렇게 안경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자, 임금님도 안경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록상 조선시대 임금 중 안경을 사용한 임금은 정조가 처음입니다. 정조는 억울하게 뒤주 속에 갇혀 승하한 아버지 사도세자(장조)의 한을 풀고 부강한 조선을 만들기 위해 어느 역대 임금들보다도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특히 정조는 '초계문신제'라고 하여 이미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에 등용된 사람들에게 직접 공부를 가르치고 시험을 보아 승진을 시키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미 과거급제한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했으니 얼마나 피나는 공부를 했는지는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스물다섯 살에 왕위에 오른 후 눈알이 빠져라 책을 보았으니 시력은 갈수록 떨어졌고 나이 마흔이 넘자 안경 없이 글을 보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나빠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예법으로는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정사를 살피는 자리에서는 안경을 쓰지 않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이러한 예법은 당시 안경이 너무도 귀했기에 신분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만 쓰는 것으로 인식되었기에 요즘처럼 아무 때나 안경을 쓰는 것은 말 그대로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취급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