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DJ, 대리전에서 한목소리로?

같은 날, '여권 통합' 촉구 뉘앙스 발언... 통합 물꼬 틀까

등록 2007.05.20 18:45수정 2007.05.2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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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행사장을 나오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자료사진).
2003년 2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행사장을 나오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자료사진).2005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범여권' 또는 '비한나라당 진영'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DJ), 두 명의 대부가 있다. 아직까지 범여권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이들을 뛰어넘는 대선주자가 없고, 두 사람은 범여권의 진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고 있다.

DJ는 범여권 통합문제에 대해 줄곧 "전통 지지세력 회복", 즉 흩어져 있는 범여권의 대통합을 주문해왔다. 이는 애초 '잘못 갈라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다시 합치고 이를 중심으로 자신이 집권했던 방식인 'DJ-JP연합', 즉 '호남과 충청 연합'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상대방의 분열 없는 호남-충청의 지역연합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자세를 유지해왔다. 그러면서 국민통합을 내걸었던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차이가 "범여권의 통합은 사실상 DJ와 노 대통령의 대리전이며 이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같은 날 지지부진한 범여권의 통합논의에 물꼬를 틀 수 있는 발언을 했다.

[장면 1] 19일 오전 무등산 노 대통령 "대의 중요하지만 대세 거역하지 않겠다"

노 대통령이 19일 무등산을 등반하는 시민들의 인사에 화답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19일 무등산을 등반하는 시민들의 인사에 화답하고 있다.청와대브리핑
노 대통령은 이날 노사모 등 지지자들과 무등산을 등반한 자리에서 "지역주의 통합 반대가 대의지만, 대세를 잃는 정치를 하면 안 된다"면서 "제가 속한 조직의 대세를 거역하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산행 뒤 광주지역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함께한 오찬에서도 "대의와 대세가 상충될 때 대세에 따르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통합 논의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청와대는 "대통령께서는 '지역당 회귀 반대'라는 '대의'와 '대통합 수용'이라는 '대세' 사이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원칙과 대의는 우리가 옳지만 열린우리당 해체라는 판을 깨는 수준으로 갈 수는 없다, 최후의 상황에서는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지지자들을 설득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광주에서, 자신의 핵심지지층이자 대의를 중시하는 노사모 회원들에게 고충을 토로하고 설득했다는 것.

동시에 노 대통령의 발언은 '대통령은 대선에서 패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통합을 전면 반대한다'고 보는 시각들이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두 사람의 발언에 대해 "대통합 지지"라며 즉각 환영하고 나왔다. 정세균 당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은 평화민주개혁세력이 분열하지 말고 대통합해야 한다는 것이고, 노 대통령의 말씀 역시 열린우리당의 대통합 추진에 대해 다시 인정한 것"이라고 평했다.

서혜석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전·현직 대통령과 국민의 요구가 대통합에 있는 것이 확인된 만큼 박상천 민주당 대표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면 2] 19일 오후 인천공항 귀빈실의 DJ "국민이 바라는 것 해야"

김대중 전 대통령(자료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자료사진).오마이뉴스 이종호
독일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DJ는 인천공항으로 환영 나온 중도개혁통합신당의 신국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협상을 시작한다"고 말하자 "좌우간 내가 바라는 것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DJ가 줄곧 "국민이 바라는 것은 양당제도"라면서 "올 하반기로 가면 결국 양당대결로 압축될 것"이라고 말해온 것에 비쳐보면, 19일 말한 '국민이 바라는 것'은 "큰 틀에서 통합해서 한나라당과 양당구도를 만들라"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DJ는 이른바 '박상천 살생부'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제론'으로 당내에서도 비판받고 있는 박 대표에게, 적지 않은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DJ는 지난 4월 4일 박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예방 자리에서도 단일정당을 강조해, 대선직전 후보단일화를 말한 박 대표와 차이를 드러낸 바 있다. DJ가 방송인터뷰 등에서도 '후보 단일화 뒤 통합'을 말한 것으로 보도됐으나, 동교동 관계자에 따르면 "단일정당이 최선인데, 정 안 되면"이라는 조건이 붙은 말이었다.

민주당 분당문제에 대해서도 "민주당도 '나가려면 빨리 나가라'고 했기 때문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지적해, 박 대표가 "누가 현직 대통령더러 나가라고 했겠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또 이날 DJ는 최인기 의원이 "약간 좌편향, 우편향된 사람도 생존책으로 중도를 말하더라"고 하자 "말이라도 같으면 됐지, 얼마나 다른지에 집착하지 마라"고 꼬집기도 했다. DJ의 생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DJ, 같은 이야기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앞으로는 통합 논의에 대한 비판을 중지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말이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DJ는 적극적으로 통합을 주문하고 있는데 비해, 노 대통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인정하겠다는 '소극적, 현실적 수용'이라는 것이다. 이는 최종상황에서는 인정하겠지만, 현재는 통합이 진행과정이므로 대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말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아직 통합논의가 끝난 것도 아니고, 통합주체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통합의 방향과 성격도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노무현 #김대중 #범여권 통합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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