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노조, 개혁 동반자이지만 변화는 필요"

정진경 부장판사, 강도 높은 법원노조 비판글 두 번째 게재

등록 2007.05.21 14:32수정 2007.05.21 14:32
0
원고료로 응원
정진경 부장판사(자료사진).
정진경 부장판사(자료사진).오마이뉴스 조경국
지난 18일부터 현재까지 법원 내부 게시판(코트넷)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발단이 된 것은 서울 북부지방법원 정진경 부장판사의 글이다.

5월 18일 정 판사는 '전국의 법원 가족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통해 법원공무원노동조합의 일부 임원을 겨냥하며 "자신들이 민주투사인양 행세하는 소수의 극렬 과격분자들과의 투쟁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비판하고 "다수 조합원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노조가 과격해진 가장 큰 이유는 행정처(대법원)의 무원칙한 타협 때문"이라는 등 강도 높은 발언을 했다.

노동법을 전공하고 법원에서 줄기차게 사법개혁을 외쳐온 정 판사가 노조를 공격한 까닭은 무엇일까. 더구나 정 판사는 1999년 법원노조의 전신인 공무원직장협의회(직협) 시절부터 법원노조에 관심을 보인 몇 안 되는 판사 중 한 명이라 노동조합을 포함한 법원 내부에서 느끼는 강도는 더 컸다.

정 판사는 21일 오전 법원 내부게시판에 '법원노조에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글을 올리게 된 배경을 설명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애정을 품고 지켜본 내가 악역 담당할 수밖에 없다"

정 판사는 이날 올린 글에서 "직협 시절부터 법원노조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던 사람으로서 오래전부터 이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해왔다"며 "법원노조의 출범부터 애정을 품고 지켜보았던 제가 악역을 담당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글을 쓴 배경을 밝혔다.

이어 "법원 노조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고 노조에 아는 사람도 많은 제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망설여졌"다면서 "지금까지 많은 글을 쓰면서도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몇 번이나 글을 올릴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였습니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정 판사는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일부 노조원이 아닌 노조 전체를 비판한 것에 대해 "노조는 지금까지 조합원의 자격으로 인신모욕의 정도에까지 이른 글을 공개적인 게시판에 게시해도 견제를 한 일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소수 강경파의 눈치를 보고 그들에게 끌려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며 노조 책임론을 제기했다.

정 판사는 법원행정처가 조합비 일괄공제로 노조의 편의를 봐주고 있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 "노조가 다수 조합원의 의사와 유리되어 소수의 강경파에 의해 좌우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조합비를 직접 납부하게 하면 강경파에 좌우되는 현재 노조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원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재판 업무"라고 전제한 뒤 "재판부 내에서 합리적인 업무분담을 전제로 한 것이며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참여관(법원직원)이 2년 이상 한 재판부와 호흡을 같이 해야 함에도 노조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 판사는 "(법원공무원의) 현재의 근무조건이 더 개선되어 나가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우리(판사와 법원공무원)가 가진 것은 인정하여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정 판사는 "저는 노조가 법원 발전과 사법민주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동반자로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제가 지금까지 제 인생 전부를 바쳐 그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법원이 모든 구성원의 신명나는 일터가 되기를 진정으로 원하기 때문에 고언을 드린 것"이라며 "제 글이 아픔을 넘어 노조가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정 판사는 끝으로 "제 글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가급적 이 문제가 법원 내에서 논의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정 판사의 강도 높은 비판, 어떤 의도였나

정 판사가 두 차례 장문의 글을 올린 의도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크게 2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째, 건전한 토론문화 정착이다. 작년 초 필자와 한 인터뷰에서 정 판사는 이런 말을 했다.

"1998년 미국연수를 마치고 (법원에) 돌아와서 보니 법원 게시판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아무도 글 올리는 사람이 없더라. 나만 여러 가지 의견을 올렸다. 처음엔 나보고 '이상한 사람이다', '이제 그만 하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지금은 자유로워졌다. 토론문화를 이끄는 데 내가 어느 정도 기여는 했다고 본다."

선의로 해석하자면 정 판사는 내부에서 판사나 직원들이 발언을 꺼리던 과거와 달리, 오히려 일부 노조 임원들의 강한 의견 때문에 토론문화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격적인 글을 게시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수의 극렬조합원이 법원 내 게시판을 장악하고" 있다는 표현을 쓴 것은 최근 관리자를 강도 높게 비판한 한 노조 간부의 글 내용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제는 노조의 발언권이 커진 만큼, 비난보다는 정상적인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정 판사가 지적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둘째, 정 판사의 글은 공무원의 노동기본권도 상당 수준 올라왔으므로 법원노조도 그에 따른 의무를 다하라는 지적으로 보인다. 공무원노조 법률이 통과된 시점에서 1980년대식 노동운동이 법원에는 맞지 않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 판사가 "현재 그들(일부 노조원)은 법원 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면서 "법원의 특성상 조직화된 노조는 약자일 수 없으며 그에 걸맞은 신중한 처신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 판사는 통화에서 "제가 많은 사람들의 욕을 얻어먹어가며 어렵게 쓴 글이 합리적으로 조합을 운영하고자 하는 현재의 조합 집행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서울법원종합청사에 내걸린 법원노조의 현수막(자료사진).
지난해 7월 서울법원종합청사에 내걸린 법원노조의 현수막(자료사진).김용국

"성실히 노조 활동해온 사람에게 심각한 상처"

하지만 노조 임원을 비롯한 법원 직원들은 정 판사의 지적을 수긍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어느 직원은 "법원노조를 두고 '반민주적인 조직', '철저한 직역이기주의', '거대 세력이 되어버린 노조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등의 표현을 쓴 것은 정 판사의 평소 성품으로 보아 이해하기 힘들다"며 "순수하고 성실히 노조활동을 해온 사람들에게 아픈 상처가 됐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직원은 "정 판사가 그 글을 올리게 된 배경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조합비 일괄공제 같은 민감한 문제까지 건드린 것은 지나쳤다"며 다만 "이번 일이 판사와 직원 간의 갈등으로 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정 판사의 의도처럼 이번 사건이 법원 내에서 건전한 토론문화를 형성하고 노조가 법원 전체 구성원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갈등의 골이 생기는 상처가 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정진경 판사, 누구인가

정진경 부장판사는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2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89년 판사로 임용됐다. 서울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듀크대학교 로스쿨에서 연수했다.

1989년 대전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수원지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서울중앙지법 판사, 광주지법·고양지원 부장판사를 거쳐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다.

정 판사는 1990년대 말부터 "법관 서열제는 신라 시대의 골품제 같은 제도", "사법부는 모든 법관에 대한 임명권과 보직권을 가진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철저히 관료화돼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대통령의 무차별적인 사면권에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가 하면 대법관 인선 과정에서 대법원의 경직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정 판사는 2003년 "현역병 입대를 피하기 위해 몸에 문신을 했다"며 기소한 사건에 대해 "문신 크기로 병역 등급을 정한 현행 병역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으며, 2005년에는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있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아파트를 분양한 건설업체에 대해 "주민들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 김용국
#정진경 #법원노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한동훈 표정 묻자 "해가 져서...", 이어진 기자들의 탄성 한동훈 표정 묻자 "해가 져서...", 이어진 기자들의 탄성
  3. 3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4. 4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5. 5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