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에서 보낸 '성년의 날'

어른으로서의 품성을 가지고 앞길을 살피는 날이 돼야

등록 2007.05.21 16:54수정 2007.05.2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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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한 날, 하늘이 도와 화창한 날씨 속에 여러분은 이제 성년이 됐으니, 성인(聖人)의 덕을 받들어 장차 가정을 꾸미고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성년의 날인 5월 셋째 주 월요일(21일) 수원향교에서는 성년의 날 행사가 있었다.
수원정보산업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13명과 여학생18명을 대상으로 치러진 이번 행사는 범국민예의생활실천운동본부(예실본) 수원지부의 역사고증을 통해 전통적인 관례의식을 그대로 따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화려한 족두리에, 비녀까지 틀고 공수자세로 앉아 큰손님의 축사를 듣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문뜩 나는 성년의 날을 어떻게 보냈나 기억을 되짚어 보게 됐다. 여기서 큰손님이란 의식을 주관하는 어른을 뜻한다.

성년의 날, 어떻게 보냈나요

누구나 성년의 날 하면 스무 송이의 장미, 향수, 그리고 연인으로부터의 키스를 떠올린다. 4년 전인, 만 20세 때 나는 위 3가지 중 1가지만 받았던 기억이 난다. 빨간 장미꽃 말이다. 그것도 서로 성년의 날을 자축하자며 친구끼리 주고받은 것이니 따지고 보면 진정 연인으로부터 받은 장미도, 향수도, 키스도, 낭만도 없었다.

그랬었다. 4년 전 성년의 날, 나는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주길 바라며 약간의 낭만을 기대했고, 좌절되자 친구들과 성년의 날 대미를 장식하는 술 파티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단, 한 가지 뿌듯함을 느꼈으니 이제는 떳떳하게 주민등록증(일명 민증)을 내밀고 술집을 들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뿌듯함(?) 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오늘 이곳에서 치러진 관례의식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은 사뭇 나와는 다른 성년의 날을 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처음에는 머리에 쪽을 틀어야 한다는 웃어른들의 말에 얼굴이 커 보인다며 투정을 부리던 여학생들도 의식이 진행되면서 이내 진지한 자세가 된다. 목화신을 신고 유건을 쓰면서 자신의 모습이 어색했는지 피식 웃던 남학생들도 이내 자세를 바로잡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이들은 이 성년례(成年禮)를 통해 장난기를 벗고 진지한 성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의식을 보고 있자니 문뜩 나도 이런 성년의 날을 보냈었다면 하는 아쉬움과 뜻 깊은 성년의 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부러움이 교차했다.

성년의 날을 맞아, 여학생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큰손님께 절을 올리고 있다.
성년의 날을 맞아, 여학생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큰손님께 절을 올리고 있다.장지혜
관례의식을 치른 여학생은 머리에 비녀를 꽂고 족두리를, 남학생들은 복두를 쓰고 있다.
관례의식을 치른 여학생은 머리에 비녀를 꽂고 족두리를, 남학생들은 복두를 쓰고 있다.장지혜

우리나라의 성년의 날, 그 의미는


우리나라가 처음 성년의 날을 시작한 해는 1973년. 그 뒤 1975년 5월 6일로 변경한 뒤, 1985년부터 5월 셋째 월요일로 정해 현재까지 기념일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의 성년의 날은 그 역사가 꽤 오래됐다.

범국민예의생활실천운동본부(예실본) 수원지부 고재열 부회장은 "우리나라의 성년의 날 역사는 중국 공자 8대 손자인 공빈이 쓴 <동의열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며 "관례의 문화는 고조선 시대 우리 선조가 만들어 놓은 전통문화다"라고 강조한다.

이날 수원향교에서 치러진 성년례는 삼가례, 명지례, 초례 순으로 이어졌다. 삼가례는 크게 3가지 절차에 따라 나뉘는데 초가례, 재가례, 삼가례가 그것이다. 초가례 때 여자는 비녀를 꽂고, 족두리를 하고 남자는 유건을 쓰고 큰손님에게 가 공수하고 인사한다. 이때 큰손님은 축사로 이들에게 답한다.

재가례에서 남자는 취포관을 쓰고 큰손님께 가 인사한다. 마지막 삼가례에서 남자는 난삼을 입고 목화신을 신고, 복두를 쓴다. 큰손님은 학생들이 삼가례까지 마치면, 이제 진정한 성인이 됐음을 선포하게 된다.

이어지는 절차인 명지례에서 큰손님은 성인이 된 남자에겐 '자'를 , 여자에겐 '당호'를 부여한다. 예실본 고재열 부회장은 "그동안 개똥이, 똘똘이 등으로 불리던 별명 대신 남자에겐 자를, 여자에겐 당호를 붙여주는데 큰 뜻을 품고 큰 인물이 되라는 의미다"라고 설명한다.

초례절차에서는 성년이 된 남자와 여자가 큰손님으로부터 술을 받아 마시게 된다. 이때 주의할 것은 술잔에서 3방울의 술을 땅에 붓고 뒤돌아 마셔야 하는데 이는 농업을 관장하는 신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방법이다.

식을 마치자 수원향교 전교인 경도호(72)씨는 "성년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며 인생의 선배로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 성년이 된다는 것은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성년의 날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자유가 생긴 만큼,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그 평범한 논리를 배우는 날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날, 내가 어른으로서 일생동안 지키며 살아가야 할 것들을 배우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겠다고 나 스스로와 약속하는 날인 것이다.
#성년의 날 #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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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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