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삭혀 정성껏 빚은 이야기 하나의 힘

3년만에 <바람의 나라> 23권 선보인 김진 작가

등록 2007.05.22 11:50수정 2007.05.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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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만화 <바람의 나라>

만화 <바람의 나라> ⓒ 김진


“책은 나올 때가 되면 나오죠. 기다리면 나오는 거죠.(웃음)”

팬들의 기다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람의 나라> 단행본 23권과 스페셜 에디션 작업을 이제 막 마친 김진의 소회는 그저 담담하다.


비록 책으로 엮여 나오진 않았지만 웹사이트(WE6)를 통해 계속 연재중이어서인지도. 현재 27권 분량까지 진행돼 있는 연재분은 속속 책으로 묶여 다시 팬들을 찾아올 계획이다.

만 3년만의 재간행. <바람의 나라>는 호동과 사비의 혼인과 본격적인 로맨스를 기반으로 클라이막스인 ‘낙랑전’을 향하고 있다. 재간행에 맞춰 기존에 출간된 22권까지의 책들도 새로운 몸을 입게 됐다.

1992년 순정만화잡지 <댕기>를 통해 선보인 이래 16년째 연재중인 <바람의 나라>는 유리왕부터 대무신왕, 민중왕 및 호동 왕자에 이르는 고구려 개국 초기 3대의 가족사를 다루고 있는 작품.

사료에 근거를 둔 구성의 치밀함, 탄탄한 연출력과 빼어난 그림 등으로 원작의 인기는 물론 그에 힘입은 OSMU의 걸출한 모범사례를 자랑한다. 특히 10년 전, 세계 최초의 머드게임으로의 변신을 빼놓을 수 없다.

a 김진 작가

김진 작가 ⓒ 홍지연

“어느날 넥슨에서 찾아왔어요. <바람의 나라>를 게임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최초의 머드게임’, 그때만 해도 아무도 걸어본 적 없는 길이었다. 주변의 만류도 많았지만 “반짝거리는 눈빛이 마음에 들어” 기꺼이 자신의 작품을 맡겼다.


이후로 동명의 소설과 뮤지컬이 차례로 탄생했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인기리에 상연중인 뮤지컬은 ‘뮤지컬에서 만화로’, ‘만화에서 뮤지컬’로 폭넓은 마니아층을 낳고 있다. 이 작품은 김진 자신이 직접 대본을 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의 입장에서 보다 솔직해지자면 자신의 작품이 다른 형태로 퍼져 나가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다. ‘손을 떼야 하는 부분’과 ‘같이 가야 하는 부분’을 염려해야 하고, 늘 어떤 모습이 나올지 조바심쳐야 한다. 그리고 섣불리 해결하기 어려운 과정상의 ‘충돌’도 줄잇는다. 그렇게 숱한 경험을 통해 그가 얻은 대원칙은 “콘텐츠를 보호할 수 없는 연재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장 나쁜 것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머천다이징 등 부가상품을 미리 예단하는 거예요. 요즘은 아예 계약 때부터 부가상품과 연계한 연재 제안도 많죠. 그런데 뭘 근거로 ‘미래’를 적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작품이 나간 후 미래가 생기는 거죠. 그러나 조금 더 기다리면 (이런 분위기도) 곧 정리가 될 거라 생각해요.”

사반세기가 넘는 시간 한 길만을 걸어오면서 그 중에서도 3분의 2가 넘는 시간을 <바람의 나라>에 쏟아왔다. 오래 곰삭히며 생각하고 느릿하게 걷는 동안 이야기는 더욱 분명해지고 김진만의 색 또한 뚜렷해졌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역사적 사실의 진위를 파악하고 작품 속에 그것을 녹여 넣기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널뛰듯 바뀌는 역사이론은 사실 한 줄을 적어넣기도 두렵게 했다. 그 자신도 “한사군의 낙랑을 배웠지 최리 낙랑을 배우지 않았”다.

“정말 많이 조사했는데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기본적인 정서도 머릿속에 다 있고, 내가 생각했던 것이 들어가는 건데도 그것을 역사 안에 넣어야 했으니까요. 당시 돈으로 140만 원짜리 한국민족대백과사전을 샀는데 딱 한 페이지 건지기도 했죠.(웃음)”

그러나 지난 16년, 돌이켜보면 그를 진짜로 힘들게 한 건 ‘연재’ 자체보다도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이었다. 스스로의 능력을 벗어나는 문제가 닥칠 때면 마음도 여러 번 다쳤다. 표절 문제로 현재 2심이 진행중에 있는 드라마 <태왕사신기>는 대표적인 사례.

“작가들 스스로가 자신을 값싸게 만들면 안 된다고 봐요.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고 지켰을 때, 잘 익어서 숙성했을 때 뭔가 나오죠. 지금도 데뷔초처럼 밤마다 무너지지만 그래도 씨앗만은 순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길을 갑니다.”

조심스럽고도 치열한 걸음. 그의 이러한 집념은 <바람의 나라>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무한히 뻗어나가고 있다. 그 끝을 앞으로도 지켜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바람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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