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문
지난 5월 22일 오전의 일입니다. 제가 다니는 방송통신대학교에서 한 수업을 마치고, 동료 학생 몇 명은 바람기가 돌아 인사동 행 버스를 탔더랬습니다. 더우면 못 가니 지금 가야 한다는 주동자분의 은근한 협박은 사실 즐거운 유혹이었습니다. 방송대의 특징이지만 이번 나들이 동행인들의 나이 차이는 격심합니다(?).
그러나 학교 안도 장시간의 산책과 나들이하기에 좋은 곳임을 먼저 말씀드리고 인사동 나들이를 소개하겠습니다.
학교 뒤 후문으로 향하는 외길에는 숲 울타리 역할을 하는 쥐똥나무 덤불이 쭉 이어져 있습니다. 지난 해 겨울까지 한껏 시꺼먼 열매를 달고 있더니, 이제 푸른 잎새 사이로 은근한 향기 내뿜는 정말 자잘한 흰색 꽃들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 은근한 향내 때문에 한 아주머니가 그곳 앞에 앉아 식후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학교 안은 나무마다 꽃잎마다 온통 녹색 물이 짙게 배어 있어, 손만 대면 묻어날 것 같습니다.
진달래가 늑장 부린다 싶었는데 진달래인 줄 알았던 철쭉도 다 지고, 철쭉인 줄 알았던 붉은색 연산홍도 거의 지고 있는 학교 마당엔 녹색만이 마치 5월의 색인 양 위엄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 흔한 장미도 출입허가증이 없는지 학생증이 없는지 좀처럼 보이지 않네요. 겨우 한 그루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날개가 둘 달린 시과가 특징인 단풍나무만은 가을의 색을 담지하고서 은근히 붉은 끼를 발휘하며 가을을 기다립니다.
감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교수 1동 뒷 뜨락에 있는 감나무가 작년 감을 주렁주렁 매달더니, 그 팝콘 모양 같다는 노르스름한 감꽃을 드디어 매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이 개화시기거든요. 저는 올해 처음 보았습니다.
동화를 읽고 알았지만, 정말 떨어진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놀았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잎 사이로 빈 공간이 있거든요.
중앙도서관 앞에 독야청청 서 있는 느티나무(제가 듣기론 느티나무라고 하는데 영 미덥지가 않습니다)를 옥상에서 자주 만납니다. 잎사귀를 가끔 만지작거리는데, 신기하게 잎사귀 위에 팥알 크기만한 것들이 돋아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잎사귀 위에 마치 부종 같이 말입니다. 무슨 나무인지 아시나요?
이런 주변의 늦봄 분위기 속에서 실컷 떠들며 수업을 하고서, 무언가 허전한 듯 우리는 맛난 것을 찾아 떠났습니다. 인사동에 '土房(토방)'이라는 음식점이 있다는 것을 주동자분께서 애써 알아오신 거죠.
버스는 원남동 사거리를 지나, 예전에는 고가도로가 있어 위태위태하게 좁은 고가를 버스가 지나가던 길, 창경궁과 종묘 담 사이의 길을 지나 안국동으로 향합니다. 동행인 중 한 분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지나가는 길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안국동 주변은 어릴 때 놀던 곳이고요. 그렇게 추억을 되살려주는 기회가 되어 좋았습니다.
인사동과 안국동 주변은 제게도 훤한 동네입니다. 안국동 옆으로 이름도 아름다운 가회동도 사랑스럽구요.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웠으니 인사동 옆 조계사에는 오색 연등이 지붕이 되어 수를 놓고 있겠지요.
점심시간 무렵이라 그런지 인사동 골목이 분주합니다. 데이트나 나들이 나온 젊은이들도 많았습니다. 미술관이 즐비한 곳이니, 화가나 미대생들에겐 안마당 같은 곳이겠지요. 외국인 많은 거야 당연하고요. 인사동 입구의 한 빵집은 아예 벽과 창이 되는 미닫이 문을 완전히 열어제치고 영업을 합니다.
'土房'을 찾아갔습니다. 샛골목으로 들어갈 필요 없이 중앙 길 상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토담집 같은 식당 내부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딱 제 때의 점심 시간이기도 했지만,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그런 식당이구나 싶었습니다. 할 수 없이 인사동을 잠시 누비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인사 아트센터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층마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곳 로비 중앙에는 사방이 투명유리로 된 멋진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그 엘리베이터를 감싸며 놓여 있는 나무 계단을 오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보면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5층의 전시장 그림은 그저 그랬습니다. 그때,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좋은 시간 보내고 있네요" 하고 말을 꺼내서 인사동 나들이를 더욱 '합리화' 시켰습니다. 예, 그날이 제 생일이었습니다. 부처님보다 이틀 먼저 태어났다고 자랑하곤 합니다.
그런데 4층의 전시회 덕분에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하는 날 그 나들이가 더욱 빛과 열을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