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ISD(투자자-국가제소권) 반대는 세계화하지 말자는 것"(4월 5일 국정브리핑)
"우리 헌법 제6조 제2항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조약으로 외국인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은 법률보상주의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다."(4월 26일 국정브리핑)
정부가 투자자-국가제소권(ISD) 도입을 옹호하는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제도가 '세계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이며, 다른 하나는 '합헌'이라는 논리다. 이로써 한미 FTA 협정에 담긴 ISD의 문제점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졸지에 '쇄국주의자'가 되고, '헌법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만다. 과연 그럴까?
정부의 첫 번째 강변부터 따져보자. ISD가 '세계화'의 기초상식이라고 얘기하던 정부는 현재 진행하는 한-EU FTA 협상에서 이 제도의 도입을 협상주제로 넣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EU는 국가가 아니어서 제소를 못하기 때문"(5월 10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한미 FTA 체결지원단이 4월 30일 Q&A에 밝힌 답변에 따르면, "투자자 대 국가간 분쟁해결절차는 한-EFTA(유럽자유무역연합) FTA에 이미 포함된 내용"이다. 이것 참 이상하다. EFTA는 국가이고 EU는 국가가 아닌가?
유럽연합은 이미 공동통화를 지닌 통합단계다. 개별국이 아닌 EU만이 역외국과의 지역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 그런데 EU는 논란의 소지가 큰 ISD는 도입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이 이럴진대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EU는 국가가 아니어서 제소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EU도 도입하지 않은 ISD, '세계화'위해 도입한다?
정부의 강변이 '말 안 되는 얘기'라는 근거는 또 있다. 2005년 현재 미국이 우리나라에 투자한 투자액수는 총 1850.5억 달러로 이중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22.3%, 포트폴리오 투자(FPI)가 45.6%를 차지한다. 그런데 EU의 경우 총 투자액 1648.7억 달러 중 FDI가 38.9%, FPI가 29.8%로 직접투자의 비중이 높다.(한국은행 자료) 정상적인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미국과의 FTA보다 EU와의 협상에서 ISD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나갔어야 한다. 그런데 김현종 단장은 이번 EU와의 FTA 추진과 관련해 "ISD 같은 민감한 사안이 제외되어 조속 추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세계화'를 위해 추진해야 한다던 ISD가 이번에는 "민감한 사안"으로 탈바꿈했다.
결국 정부의 태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한미 FTA 협정 속의 ISD는 세계화를 위해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정상적인 투자자 보호를 위해 도입되는 것도 아닌 것이다.
이제 정부가 내 놓은 또 하나의 강변을 생각해보자. 우리 헌법 제23조 제3항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직접수용'의 개념이다. '간접수용'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는 엉뚱하게도 헌법 제6조 제2항을 들어 외국인의 재산권을 인정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느 누가 외국인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말자고 했나?
헌법 좀 읽어보자. 제23조 제1항은 이렇다.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ISD에서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하는가? 아니다. 헌법 제23조 제2항은 이렇다.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ISD를 통한 소송이 공공복리에 적합한 소송이 될 것인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ISD 소송의 예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여기에 제3항, '직접수용'까지 우리 헌법은 ISD 도입의 여지가 없는 체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