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샨티
미국 조지 워싱턴대 환경 역사학 교수인 린다 리어가 쓴 <레이첼 카슨 평전>은 바로 이 역사적인 청문회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인상적인 도입부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제 말씀해 주시지요"라는 상원 의원의 요청에 마치 자신이 응하기라도 하듯이, 린다 리어는 레이첼 카슨의 생애를 750쪽이 넘는 책에 꼼꼼하게 펼쳐놓는다.
아무리 역사적인 인물이라고는 해도 60년이 채 안 되는 삶을 살았던 한 여성의 평전치고는 분량이 좀 많다고 여겨질 정도이다. 사실, 이 책은 레이첼 카슨에 관한 전기적 사실 말고도 그녀의 삶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인물들의 배경까지도 시시콜콜하게 밝혀 놓고 있어서 필요 이상으로 치밀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10년에 걸친 꼼꼼한 자료 조사와 공들인 집필로 레이첼 카슨의 생애를 거의 완벽하게 복원해 놓고 있어서, 그녀의 삶에 대해서 궁금함을 많이 가지고 있던 독자들에게는 이 책만한 것도 없을 듯 여겨진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평전들에서는 흔히 그들의 성취에만 주목해서 그러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 그들이 희생시켜야만 했던 인간적인 면모가 무시되거나 조금만 다루어지는 경향이 많은데, 그러한 함정을 잘 비켜나가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최고의 과학저술 작가라는 화려한 명성 아래에서 레이첼 카슨이 겪어야 했던 삶의 그늘까지도 균형감있게 잘 그려내고 있다.
즉, 거대 화학 회사들이 고소를 걸어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쉽사리 떨쳐내지 못한 질병(유방암)으로 인한 절망, 숨기고 싶은 가족 및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어린 조카와 늙은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부담감 등으로 레이첼 카슨은 자신의 대표작 <침묵의 봄>을 집필하고 출판하는 내내 마음이 평온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평전들에서는 그러한 성취가 오직 그 사람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인 양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레이첼 카슨이 남다른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많은 사람들의 역할과 영향 관계가 매우 치밀하고도 선명하게 나타나 있어서, 역사를 바꾸는 힘은 결코 위대한 개인 한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이를 위해서 이 책의 지은이 린다 리어는, 레이첼 카슨의 일기뿐만 아니라 그녀가 여러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들도 참조했으며 또한 그러한 사람들 중 생존해 있는 이들과 일일이 인터뷰를 하는 등 치밀한 추적과 취재를 했다고 한다.
이렇듯, 지은이 린다 리어의 놀랄 만한 열정과 헌신, 그리고 객관적이고도 치우침이 없는 균형 잡힌 시선에 힘입어 마치 살아있는 이를 마주하듯이 우리 시대에 레이첼 카슨을 다시 만날 수 있음은 이 책을 읽어나가는 크나큰 기쁨이다. 그리고 이 책의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그 기쁨에 소중한 깨달음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될 터이다.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이 위대한 여성도 사실은 인간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고 좌절도 했으며 상처도 입었고 결국은 평범한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병마에 시달리다 삶을 마쳤다는 것을. 우리가 특별하게 여기는 모든 위대함의 원천은 사실은 이렇게 평범함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그녀의 평범함을 위대함으로 이끈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간직하면서 추구했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자 했던 그녀의 오랜 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레이첼 카슨의 삶이 성취로 여겨지는 것은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중 한 사람으로 그녀의 이름이 올라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세계를 대표하는 100인의 석학들이 선정한 '20세기를 움직인 10권의 책' 중에 그녀의 대표작 <침묵의 봄>이 4위에 올라있기 때문도 아니다.
레이첼 카슨의 성취가 진정으로 성취인 것은 평생 꿈꾸었던 자신의 꿈을 마침내 이루었기 때문인 것이다. 레이첼 카슨은 자신의 꿈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미국 시민들과 지구상의 인류, 더 나아가 지구의 생태계에까지 봉사하는 삶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레이첼 카슨 평전>은 꿈꾸는 삶의 소중함을 내게 다시 가르쳐주었다.
5월 27일은 레이첼 카슨 탄생 100주년
책을 다 읽고 나니,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녀를 가질 수 있었음이 축복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녀는 벌써 오래 전에 망자가 되었지만, 그녀가 죽은 날을 기억하기보다는 그녀가 태어난 날을 기억함이 오히려 더 나아 보인다. 예수의 탄생일을 우리가 기억하고 축하하듯이. 부처님 오신날을 우리가 기억하고 축하하듯이.
그녀가 태어난 날이 1907년 5월 27일이니 이번 일요일(5월 27일)이 그녀가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그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는 여러가지 행사도 펼쳐지고 메릴랜드주를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는 5월 27일을 '레이첼 카슨 데이'로 공포하여 첫 기념행사를 가질 예정이라고도 한다. 뒤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태어난 지 100년이 지나서 다시 태어나는 레이첼 카슨의 꺾이지 않았던 꿈과 그 꿈에 충실했던 그녀의 삶은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누리고 있는 이 대자연을 다시 새롭게 바라보게끔 할 것이다. 또한 그 대자연 속에서 누려야 마땅한 우리의 삶이 지금 어디에 머무르고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꿈이 무엇이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를 곰곰히 자문하도록 할 것이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린다 리어가 쓴 <레이첼 카슨 평전>을 읽는 것은 쉽게 답하기 어려운 그 물음의 답을 찾는 현명한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레이첼 카슨 평전>
ㅇ린다 리어(Linda Lear) 지음
ㅇ김홍옥 옮김
ㅇ도서출판 샨티
ㅇ2004년 11월 1일 초판 1쇄
ㅇ값 28,000원
이 기사는 인터넷서점 예스이십사의 독자리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레이첼 카슨 평전 -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
린다 리어 지음, 김홍옥 옮김,
샨티,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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