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길러봐야 진정한 부모가 된다

오동명의 <부모로 산다는 것>을 읽고서

등록 2007.05.26 11:23수정 2007.05.2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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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 사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자식 앞에서 사랑 많은 부모로 비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잘못된 방향을 가고 있는 자식에게 매를 들면 마음에 상처가 될까봐 쉽지 않고, 잘한 일에 칭찬만 늘어놓으면 정도를 잃어버릴까봐 그도 쉽지 않다. 더욱이 자녀의 양육비 때문에 늘 쫓겨 다니는 현대판 부모들이야말로 자녀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시간마저 줄어들고 있어 문제다.

오동명이 쓴 〈부모로 산다는 것〉에는 어떻게 하면 부모와 자식이 아름답게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는지, 어린 시절부터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되기까지 자신이 겪은 숱한 사연과 감정들을 통해 헤아릴 수 있다.


“바쁜 일상으로 인해 ‘대화’를 잃어버리고 ‘함께함’에 소홀한 우리들의 가정에 ‘대화’의 귀중함을 배달하고 ‘함께함은 곧 동행’이라는 소중함이 선물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머리말)

바쁜 시간들을 쪼개 부모와 자식 사이에 동행하며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목욕탕에 같이 가는 일도 있겠고, 한강변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핸드폰을 꺼놓고 사는 날’로 정하거나 ‘인터넷을 쉬게 하는 날’로 잡는 것,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엄마와 아빠가 자전거로 학교까지 바래다주는 것, 중고등학교 자녀와 함께 농구장에 들어가서 서로가 역할을 바꿔치기하며 농구하는 것 등이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항목들이 눈에 잡힌다. 하지만 이 책이 지닌 진정성은 딱딱한 매뉴얼을 찾는 것 보다는 부자지간의 뒤틀린 끈을 찾아서 바르게 묶어 보는데 있을 것이다. 사업하는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의 오동명은 제법 부하게 살았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한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는 오직 홀로 세상을 사는 법을 익혀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성적이 잘못 게재된 일로 담당 과목선생님이 밤늦게 집으로 찾아오셨다. 이날, 선생님은 아버지께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만 모아 특별과외를 하려 한다며 제의해 오셨다. 그때 아버지는 내 의사도 묻지 안 된다고 하셨다. 나도 이내 과외 싫다고 분명하게 선생님께 말씀드렸지만 아버지가 그래도 ‘넌 어떠니?’하며 내 의사를 물어주실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셨다. 그때의 아쉬움과 섭섭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

더욱이 칠남매 중 유독 형에게만 관심을 기울인 부분도 그에게는 죽도록 싫었다. 동생인 자신이 늘 형의 그늘 속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집안의 장남이 잘돼야 모든 자식들이 잘된다고 했지만, 자신이 듣기에는 지극히 못 마땅한 소리였다. 그래서 대학도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형을 도울 수 있는 경제학과에 들어가야만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대학생 초기 때에 불현듯 밀려드는 그림과 글공부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었고, 머잖아 길을 틀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부모가 된 그는 자식들 앞에서 다함없는 부모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 까닭에 형편이 여의치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려고 하는 자식 앞에 포근하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등이 되려고 여기저기 안간힘을 기울였다.

더욱이 2008년에는 열여섯 살 아들과 함께 일본의 서쪽 나가사키에서부터 동경까지 자전거로 달릴 것까지 약속해 놓았다. 그 일들을 준비하며 기대감으로 설레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의 가정의 경제적인 책임을 져야 했던 아버지의 힘든 모습도 떠올릴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모름지기 자식을 낳아서 길러보고야 모든 자식들은 부모가 되는 법이다. 그때서야 부모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가늠하게 된다. 그때서야 어렸을 적 자신을 키우고 돌보기 위해 애쓴 부모의 마음도 깊게 헤아리게 된다. 자라면서 채우지 못한 것 때문에 부모에게 불평과 미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아버지의 투박하고 거친 손,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이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아랫입술에 남은 딱딱한 상처로 엄마의 보드라운 등과 함께 그때 일을 지금인 양 추억하는데 원망은커녕 상처를 볼 때마다 그때의 다감한 엄마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고 따뜻했던 엄마의 등을 느껴볼 수 있게 해 준다. 아랫입술의 딱딱해진 상처를 혀와 이로 더듬으며 나이 오십, 지금도 어머니를 느끼곤 한다.”

부모로 산다는 것 -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제니퍼 시니어 지음, 이경식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 2014


#오동명 #부모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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