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 너의 세상살이도 녹록치 않구나 (1)

- 우리 집 또 하나 식구 카사 이야기

등록 2007.05.28 10:19수정 2007.05.29 16:4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카사가 장독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카사가 우리 집 식구가 된 지 그새 만 3년이 조금 지났다. 3년 전, 그동안 30여 년 살았던 서울 집에 남매를 남긴 채 불쑥 안흥으로 떠나온 뒤, 아들은 갑자기 닥친 적적함 탓인지 카사를 데려와 길렀다. 집안에 동물 기르는 걸 무척 꺼려했던 아내가 몇 차례나 전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말하였고 아들은 그러겠다고 대답은 하였으나 끝내 돌려주지 않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더니, 곧 아내가 포기해 버렸다. 아내가 애완동물 기르기를 꺼려하는 까닭은 그들의 털 공해와 배설물 처리 때문이요, 더 큰 이유는 유정물을 키우다가 인연이 다할 때의 애틋한 정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몇 차례 집에서 개를 기르다가 마음 아프게 연(緣)을 다한 일이 있었다.

아들은 애초 약속대로 자기 방에서만 몇 달 기르더니, 그해 연말 안흥으로 내려올 때 데려와 슬그머니 떨어트려 두고 갔다. 말인즉, 아침에 출근한 뒤 늦은 밤에 귀가하니까 낮 시간 동안 카사를 혼자 두는 게 여간 미안치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동물을 좋아하지 않은 녀석은 없을 테지만, 그 녀석도 무척 좋아했다.

a

카사가 뒷산 숲에서 멧새들을 바라보고 있다. ⓒ 박도

초등학교에 입학한 얼마 뒤 학교 앞 노점에서 병아리를 사 와 자기 방에다 라면박스로 둥지를 만들어 길렀다. 그 뒤 어느 날 아침, 녀석의 서러운 울음소리에 놀라 우리 내외가 방문을 열자 일주일여 정성 들여 키우던 병아리가 소리도 없이 누워 있었다. 그 놈을 내려다 보면서 눈자위가 붓도록 울고 있는 그 녀석을 두고 애는 애다고, 나중에 제 부모 죽으면 그리 섧게 울겠느냐고, 우리 내외는 말을 주고 받았다. 그 녀석은 아침도 먹지 않은 채 삽을 들고 가서 집 뒷산인 북한산 기슭에다 아주 정성껏 죽은 병아리를 묻어주었다.

아들이 데려온 고양이는 '러시아 블루'라는 혈통으로, 여간 정갈하고 성격이 고약한 놈이 아니다. 여간해서 제 마음은커녕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먹이는 제 먹던 사료만 먹고, 용변도 꼭 제 화장실에서만 보고, 하루 종일 틈만 나면 제 몸단장을 하는 아주 깨끔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 놈은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밖으로 나가려고 몸부림이었다. 어쩌다 방심한 사이 이 놈을 놓치고는 다시 잡아들인다고 여간 속을 썩이지 않았다.

아무튼 이 놈 때문에 한여름에도 문도 열지 못하고 지냈고, 이 놈이 수시로 창문이나 나들문 곁 벽지를 찢어놓은 바람에 아내는 창호지, 풀비, 풀그릇을 늘 곁에 두고 살았다.

a

카사가 뒤꼍에서 잣나무 위의 멧새를 바라보고 있다. ⓒ 박도

누군가 환생으로 우리 집에 왔을지도

함께 사는 세월이 길어지자 놈은 차츰 눈길도 주고, 어느 때는 슬그머니 다가와서 무릎 위에 앉기도 한다. 서로가 몇 마디씩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한밤중에 일어나면 이 놈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기에 제 밥값은 한다고 기특히 여겼다.

그런데 가장 큰 고역은 털 공해였다. 무시로 이 놈 몸에서 빠지는 털은 진공청소기로 아무리 빨아들여도 실내 공기를 흐리게 하였다.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지병인 비염이 있는지라 겨울철이면 이 놈이 떨어트린 털 때문에 더욱 고통이 심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다른 이에게 분양하려다가 아들 녀석에게 사정을 말하자 아들이 내려와서 데려갔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분양하거나 전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제가 키우고 있었다.

그런 내 처사를 아내가 몰인정하다고 몹시 나무랐다. 카사는 이미 사람들에게 한번 배신당했는데 우리가 또 배신할 수 없다면서 그가 이 세상에 사는 날까지 우리가 거둬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카사는 누군가 환생으로 우리 집에 왔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다.

a

카사가 뒤뜰 나무 등걸 위에서 몸단장을 하고 있다. ⓒ 박도

나는 그 얘기에 충격을 받았다. 그가 내 어머니의 환생인지도, 아버지의 환생인지도, 한국전쟁 직후에 어린 나이로 불쌍하게 이승을 떠난 누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그 놈을 쫓을 궁리만 했던 내가 몹시 죄스러웠다. 이 세상에 숱한 사람, 집 가운데 왜 하필 우리 집에 왔을까? 그것도 반려동물을 기르기 꺼려하는 하필 우리 집에 말이다.

그 놈은 분명 우리 식구와 인연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한 어머니의 환생인지도, 네 살에 세상을 떠난 누이의 환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짓눌렀다. 그래서 서울 가는 길에 카사를 슬그머니 안흥으로 다시 데려왔다.

지난해 여름 이곳 횡성지방에 장마비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이 내렸다고 했다. 산골 내 집에도 거실까지 물이 찼다. 그러자 냉장고 밑의 오래된 먼지가 나온 바, 대부분 고양이 털이었다. 그때부터 고양이 털 공해에서 벗어나며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지난 겨울 아내는 이제와는 달리 올 봄부터 밖에다가 기르자고 결론 내렸다.

이제까지 가둬 키웠는데 과연 그 방법이 성공할지 불안했지만 설사 실패하면 그것은 그 녀석의 운명이라고 아내는 단정했다.

a

카사는 때때로 땅바닥에 누워 애무해 주기를 기다린다. ⓒ 박도

너 이제 밖에서 살아!

올 4월 초순, 아내가 나들이 간 사이 나의 실수로 나들문을 잠그지 않았더니 그 순간을 노려 카사란 놈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먹이로 유혹하며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았다. 해거름 때에 들어온 아내는 그만 이 참에 아예 밖에서 키우자고 그의 밥그릇, 물 그릇, 침대, 의자. 화장실까지 밖으로 옮겼다. 그날 저녁 이 놈이 집안으로 들어오겠다고 문을 긁으며 밤새 울부짖었다.

"언제는 나가겠다고 발버둥이더니 이제는 들어오겠다고... 너 이제 밖에서 살아!"

a

보일러 실의 벽에 창틀을 새로 만들고 식탁도 마련해 주었다. ⓒ 박도

아내는 매정하게 자르고는 방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그 뒤, 이삼일 동안 집안으로 들어오겠다고 울부짖고, 용케 집안에 들어온 놈을 다시 밖으로 쫓자 그제야 제 놈도 이제는 밖에서 살아야 되는 줄 알아차리고는 더 이상 보채지 않았다.

영구적으로 살 제 집을 마련해 주는 일이 급했다. 개 집 같은 곳은 강원 산골의 겨울 추위를 이겨낼 수 없을 게다. 마침 지난 가을에 새로 만든 심야전기보일러실이 안성맞춤 같았다. 사방을 패널로 막았기에 보온도 잘 되고, 겨울철에도 온수통 열기로 춥지 않을 게다.

다만 사방을 막았기에 실내가 어둡고, 여름철에는 덥고 환기도 되지 않을 것 같아, 창틀 집에 부탁하여 방충망도 곁들인 창문을 내주고,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탁자도 내가 직접 만들어 주었다.

카사도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했다. 이른 아침 문을 열어달라고 보채면 문을 열어주고, 8시에 아침밥을, 정오 무렵 참으로 우유를 한 차례 마시고, 저녁 7시면 저녁밥을 먹은 다음 제 집에 들어가도록 일과표를 정해, 제 놈도 거기에 맞추게 했더니, 아주 신기하게도 그렇게 잘 따랐다.

a

3년 전, 카사가 안흥으로 내려와서 실내에서 지낼 때 모습. ⓒ 박도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박도 기자의 안흥 산골이야기가 <안흥산골에서 띄우는 편지(지식산업사)> <그 마을에서 살고 싶다(바보새출판사)>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박도 기자의 안흥 산골이야기가 <안흥산골에서 띄우는 편지(지식산업사)> <그 마을에서 살고 싶다(바보새출판사)>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고양이 #반려동물 #러시아 블루 #환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AD

AD

AD

인기기사

  1. 1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2. 2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3. 3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4. 4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