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에서 바라본 바닷가 마을 하헤이의 전경정철용
우리는 언덕을 다 내려와서 차를 타고서 이리저리 하헤이의 골목 골목을 기웃거렸다. 정원을 잘 가꾸어 놓은 작은 집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는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여느 바닷가 마을과 다름 없는 평범한 풍경이었다.
그래서 그냥 떠나려고 했는데 길가에 세워 놓은 사진 갤러리 표지판 하나가 내 시선을 잡아 끌었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그냥 가자는 딸아이와 아내를 설득해서 잠깐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이런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의 작품은 과연 어떤 것일까 또한 일반 가정집 내에 마련되어 있는 갤러리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경사진 정원의 계단을 올라가 집으로 들어서자 마치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이든 백인 할아버지가 우리를 반겼다. 갤러리 구경을 하러 왔다고 하니까 그는 우리를 집 안쪽의 창고 비슷하게 보이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가 닫혀 있던 철제문을 올리자 두세 평 남짓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는 스위치를 올려서 전등을 켰다. 우리가 갤러리에 온 오늘의 첫 손님이란다. 뭐라고? 벌써 12시가 다 되어가는데….
조금 실망스런 마음으로 둘러본 갤러리의 벽에는 다양한 크기의 사진 20여 점이 걸려 있었다. 사진들은 안개 낀 바다의 풍경을 담은 사진 두세 점을 빼놓고는 그다지 뛰어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명제표에 제목과 함께 붙어 있는 가격표의 숫자는 만만치 않았다.
당신이 찍은 사진이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아니라고, 자기 아들이 찍은 사진들인데, 지금은 그가 집에 없다고 대답했다. 판매도 하니 천천히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으면 한 점 사 가라면서 그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갤러리 안을 다 둘러보는데 채 5분도 안 걸렸지만 우리는 선뜻 나가기가 민망했다. 우리는 그가 오전 내내 기다려서 맞이한 첫 손님이 아닌가!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고 또 보았다. 한쪽 구석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벽에 전시되어 있지 않은 다른 사진들을 담고 있는 카탈로그도 뒤적거리면서 10분 정도를 더 머물렀다.
밖으로 나오니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게 다가섰다. 구경 잘했다고 말하면서 내가 손을 흔드니 그는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것 봐, 그냥 가자고 했잖아. 도망치듯 차로 내빼는 나의 옆구리를 아내는 쿡쿡 찔렀다.
민망한 갤러리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핫 워터 비치로 곧장 향했다. 핫 워터 비치는 코로만델 반도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바닷가 모래밭에 온천처럼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기 때문에 온천욕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즐겨 찾기 때문이란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돈 한 푼 내지 않고 자기 손으로 만든 즉석 온천을 즐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아무 때나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지는 않는다. 바닷물이 가장 멀리 빠져나가 있는 간조를 전후해서 두 시간 동안만 이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도 전날 묵었던 숙소에서 간조 시간을 미리 알아두었던 것인데, 그날은 오후 1시 33분이 간조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후 12시 30분 이전에만 그곳에 도착하면 오후 2시 30분까지는 마음껏 온천을 즐길 수 있을 터였다. 더군다다 평일이니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을 터였다. 이렇게 지레 짐작했기에 나는 하헤이에서 사진 갤러리를 구경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12시 30분 조금 못 미쳐 도착한 핫 워터 비치의 주차장은 벌써 차들로 꽉 차 있었다. 나는 집에서부터 싣고 온 삽 한 자루를 트렁크에서 꺼내 들었고 아내는 돗자리를 챙겼다. 우리는 점심은 일단 미루고 바닷가로 먼저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