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게 없는 중국... 위조지폐를 보다

제남 천불산 구경, 순임금 흔적 가득한 곳

등록 2007.05.30 15:04수정 2007.05.30 15:45
0
원고료로 응원
제남의 허름한 빈관(賓館)에서 하룻밤을 잤다. 이튿날 일찍 눈이 떠졌다. 5월 19일이었다. 숙박비에 아침밥까지 포함된다고는 하였지만 아침 여덟 시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짐을 챙겨서 여관을 나왔다. 간단히 요기할 곳을 찾았지만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연 상점은 보이지 않았다.

a 천불산 입구

천불산 입구 ⓒ 조영님

천불산에 올라가다 보면 뭔가 요기할 것이 있으려니 생각하고 그냥 올라가기로 하였다. 천불산에선 이미 많은 시민들이 아침 운동을 하고 있었고, 부지런한 사람은 벌써 정상에 도착하였는지 큰 함성소리도 들렸다.


천불산(千佛山)은 제남의 삼대 명승지 중의 하나다. 천불산은 옛날에는 '역산(歷山)'이라고 하였는데, 상고시대 순임금이 일찍이 역산 아래에서 밭을 갈았다고 지금의 이름이 붙었다. 제남에서는 '순정가(舜井街)', '순옥로(舜玉路)', '순경(舜耕)중학' 등과 같이 순임금과 관련된 지명을 쉽게 볼 수가 있다.

천불산 입구에서부터 거대한 18나한 조각상이 좌우에서 우리를 반겼다. 나한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이다. 나한의 얼굴 표정이 재미있다. 좀 더 올라가서 길이가 10m, 무게 50톤이 되는 와불(臥佛)을 만났다. 오른팔로 머리를 받치고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누워 있는 부처님이다.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이목구비가 크고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a 천불산의 ‘와불’

천불산의 ‘와불’ ⓒ 조영님

와불 옆에는 제남시와 우리나라 수원시의 자매도시체결 10주년을 기념하고 두 도시의 교류증진을 위해 수원화성을 상징화한 '우정의 문' 기증 바위글이 있었다. '우정의 문'이라고 쓰인 건축물도 있었다.

솔직히 좀 기분이 상했다. 수원시에서 2003년에 기증하였다고 하는데 바위는 쩍쩍 갈라지고, 바위에 새겨진 글씨체는 촌스럽다. 수원화성을 닮았다고 하는 '우정의 문'은 너무 왜소하여 초라하기까지 하였다. 중국의 천불산에서 우리의 흔적을 만난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지만, 이렇듯 초라한 모습은 없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선한 아침 공기가 폐부에까지 스며드는 것 같다. 조금 올라가니 관음보살을 모셔둔 '관음원(觀音園)'이 있다. 입장료 15원을 내고 들어가 보았다. 분수처럼 물이 솟아오르는 연못에 한 손에 약병을 든 관음보살이 정면에 우뚝 서 있다.


사방의 연못에 크고 작은 관음보살들이 노란 가사와 붉은 가사를 걸친 채 정좌하고 있다. '허원수(許願樹)'라고 하는 나무에는 소망을 담은 붉은 천이 마치 빨간 붕대처럼 감겨져 있다. 중국의 속담에 '집집마다 미타가 있고, 집집마다 관음이 있다'고 할 정도로 중국에는 관음사상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천불산은 높이가 해발 285m 정도 된다. 비교적 높지 않지 때문에 케이블카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올라가기로 하였다. 돌계단이 이삼백 개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이미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단체로 등반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산이 높지는 않지만 걸어 올라갈수록 숨이 턱턱 막히고 다리가 흐느적거리는 것 같아 자꾸 쉬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아들은 힘이 나서 돌길을 팔팔 뛰어다녔다.


a 천불산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기에 같이 하산하였다. 멀리 제남 시내가 보인다.

천불산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기에 같이 하산하였다. 멀리 제남 시내가 보인다. ⓒ 조영님

천불산의 흥국선사와 역산원

정상으로 올라가는 팻말도 보이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이쯤에서 하산하는 것 같아 우리도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수나라 개황 연간에 창건하였다고 하는 '흥국선사(興國禪寺)'를 관람하였다. 수나라 개황(開皇) 연간에 창건될 당시에는 '천불사'로 불렸다가 당나라에 와서 '흥국선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IMG@사원 안에는 대웅보전 관음당, 미륵전, 천불애, 용천동, 극락동, 대화정 등의 건축물들이 있었다. 사원 한편에서는 한창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어지러이 물건들이 널려 있고, 분향하기 위해 태운 향 연기로 경내가 자욱하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바위에 새겨진 수많은 불상들이었다.

수(隋) 문제(文帝) 양견(楊堅)이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바위 위에 많은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 산을 '천불산'이라고 하고, 불상을 새긴 벼랑은 '천불애'라고 하였다. 천불애에 조각한 불상들은 수, 당의 석각 예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a 여신도가 흥국선사에서 분향을 하고 있다.

여신도가 흥국선사에서 분향을 하고 있다. ⓒ 조영님

흥국선사를 나와서 바로 앞에 있는 '역산원(歷山院)'으로 들어갔다. 역산원이라고 쓴 세 글자는 건륭 황자의 글씨를 집자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역산원에는 요, 순, 우 임금을 모신 '삼성전(三聖殿)'과 순임금을 모신 '순사(舜祠)'가 있고 또 '일람정(一覽亭)'이라는 작은 정자도 있다.

또 문창제군(文昌帝君)을 모신 '문창각(文昌閣)'이 있다. 문창제군은 문장을 주재하는 신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같이 대학입시에 목을 매는 학부모들이 숭배할 만한 신인 것 같다. 태산의 여인인 벽하선군을 모셔둔 곳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천불산이야말로 유, 불, 도가 혼재되어 있는 곳 같다.

다시 송, 원 때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 '노반사(魯班祠)'에 들렀다. 노반은 춘추시대 노나라의 인물인 공수반(公輸般)으로, 뛰어난 장인이었다. 그는 운제(雲梯)와 같은 많은 새로운 기계를 발명하였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그를 신격화하여 사당에 모시고 있다고 한다. 공수반이 노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곳에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

a 수나라 양견이 어머니를 위해 조각하였다고 하는 불상이다.

수나라 양견이 어머니를 위해 조각하였다고 하는 불상이다. ⓒ 조영님

천불산 중턱엔 소망을 담은 대형 자물쇠가 놓여져 있다.

우리는 천불산을 등산하였고 또 천불산의 주요한 관광지를 둘러보았기 때문에 하산하는 것은 좀더 편한 방법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케이블카를 탈까, 활도(滑道)를 탈까 망설이다가 아들의 제안대로 활도를 탔다. 활도는, 어색하지만 우리말로 옮긴다면 '미끄럼틀길' 정도가 될 것 같다.

아들을 앞에 태우고 뒤에 바짝 붙어서 잠시 전진, 정지 등의 기능을 연습해 보고 바로 출발했다. 브레이크를 놓으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할 것 같아 속도를 늦추면서 천천히 가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어릴 때 비료 포대를 엉덩이에 깔고 눈이 온 비탈길을 달렸던 기억도 스쳐지나갔다.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자동차로 질주하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쾌감을 맛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중국의 위조지폐를 만나다

신나게 활도를 타고 내려왔다. 목이 말라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가게에 들어갔다. 물과 음료수를 사고 50원짜리 지폐를 상점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상점 주인은 지폐를 받아 들고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지아더(假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음료수를 내려놓고 옆의 가게로 가서 다시 그 돈을 주었더니 역시 가짜 돈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런! 가짜 돈이라니!"

참으로 황당했다. 중국에 와서 이상하게 여겼던 것 중의 하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주면 상점 주인들이 꼭 돈을 비쳐 보는 것이었다. 중국에는 위조지폐가 굉장히 많이 있어서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세상 천지에 없는 게 없는 곳이 중국이라고 하더니만 가짜 돈까지 있네.'

화가 치밀어 '도대체, 중국이란 나라는!'이라는 말을 내뱉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위조지폐를 만든 범인들이 잡혔다느니 하는 뉴스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 중국은 수십 억이 사는 나라니까 별별 사람들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접어두기로 하였다.

아들을 데리고 천불산을 내려오는데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타는 곳이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아들은 이것저것 타고 싶어 하였다. 우선 문어 그림이 그려져 있는 놀이기구를 하나 탔다. 상하좌우로 마구 흔들어대는 놀이기구 안에서 아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들은 재미있다고 하면서 이번에는 회전목마를 타자고 하였다. 말을 타는 아이들이 아주 많았다. 3분에 10원이었다. 주머니에서 100원을 꺼내 주었더니 잔돈이 없다고 하면서 100원짜리 지폐 밑에 접혀진 50원짜리를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건, 가짜 돈인데요'라는 말이 내 입에서 새어 나오기도 전에 아저씨는 내 손에 있는 구겨진 50원을 가지고 갔다. 그리고 뭐라고 할 틈도 없이 거스름돈 30원을 받아 들고 말에 뛰어 올랐다.

가짜 돈을 발견하고서 속으로 중국인들을 싸잡아 욕을 하다가 가짜 돈을 슬그머니 다른 사람에게 넘겨 준 셈이 되었다. '아이구,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아저씨에게 미안해서 말을 계속 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들의 사진을 찍어준다는 핑계로 말에서 내렸다. 천불산을 내려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아저씨도 나처럼 가짜 돈임을 알고 분노할 것이 분명할 텐데 말이다.

a 중국 지폐 50원.

중국 지폐 50원. ⓒ 조영님

나중에 조선족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위조지폐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첫째, 지폐를 15정도로 기울여서 작게 '50'이라고 쓴 숫자의 색깔이 변하는지 본다. 둘째, 한 장의 지폐를 양쪽에서 똑같이 마주 보게 하였을 때 지폐 끝에 있는 그림의 도안이 일치하는지 본다. 셋째, 지폐의 뒷면에 모택동의 그림이 비치는데 이목구비, 특히 눈이 선명한지를 확인한다. 위와 같이 될 경우 진짜 돈이라는 것이다. 물론 위와 같은 방법은 100원과 같은 다른 지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명심보감에 '한 가지를 경험하지 않으면 하나의 지혜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위조지폐 때문에 위조지폐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중국여행 #제남 #위조지폐 #천불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3. 3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연도별 콘텐츠 보기